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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한다고 굶어야 하나요?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23_서울청정넷5기 문화분과 성문경

청년예술인은 왜 가난해야 할까? 


저는 원래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시각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알아보니 한국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열악한 편에 속하더라고요. 알아보고 나서 이 조건으로는 힘들겠다 싶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꿈이라면서 돈 때문에 포기해?”라고 호통칠지도 모를 일이지만, 저희 집 가정 형편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 정도 보수를 받고, 먹고 살기는 힘들겠다고 판단했어요.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포기하고 나니까, 현실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왜 내가 원했던 그 직업은 합당한 대우를 누리지 못하는 걸까?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게 문화예술계의 정책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죠. 처음으로 예술복지, 예술인 복지와 같은 문화 정책을 공부하게 됐어요.  


마침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의 문화분과 활동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멤버로 들어갔죠. 문화분과에서는 주로 현재 시행되는 문화예술계 정책들을 모니터링하고 개선점을 찾는 활동을 했어요. 예를 들면 서울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최초 예술인 지원 정책'이라는 게 있는데요. 이 정책에 쓰이던 예산이 갑자기 반 정도 줄어버린 거예요.  작년 '청년의회'에서 그 부분을 지적했죠. 의회가 끝난 뒤엔 서울시 공무원분들과 간담회를 열었는데, 거기서 사업 규모를 다시 원래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을 받았어요. 올해 서울시 뉴스에서는 예산 규모가 다시 올라온 걸 확인할 수 있었고요.  



젊은 작가를 '무사히' 중견 작가로 만들기  


문화예술인 당사자분들을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하기 위해 새로운 모임을 열어보기도 했어요. 모임이름은 '서울에서 청년으로 예술하기”. 


한국은 사회에 처음 진입하는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을 지속하기가 꽤 어려운 편이에요. 젊은 작가가 중견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경제적인 안정성이 어느정도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정책적 지원 없이는 그게 힘든 게 사실이죠. 예술로 도을 벌려면 작품을 팔아야 하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한 젊은 작가들이 고객을 확보하기가 어렵잖아요. 아르바이트 같은 별도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소득이 거의 없게 되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더 복잡한 문제들이 많아요. '서울에서 청년으로 예술하기'모임을 진행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예를 들면 작업실과 전시 공간 문제. 사실 서울에서 작업실을 구하는 것 자체가 여러운 일이잖아요. 작업실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으면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러면 또 문제가 생겨요.


 예술인들의 전시공간이 거의 서울에 몰려 있거든요. 작업실 비용을 위해 지역으로 이동하면 작품 전시가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생기죠. 서울에 따로 전시공간을 구했다고 쳐도 문제에요. 작품 운송비가 만만치 않은데 대부분의 경우 작품 운송비는 전시 주최 쪽이 아니라 예술인 개인이 부담하거든요. 한 푼이 아쉬운 청년예술인들에게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죠.  


물론 이런 상황들을 방지하기 위한 지원 정책들이 현재 없는 건 아니지만 공급을 늘려야 될 필요도 있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문제도 남아있죠.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서류를 구비해서 어딜 찾아가고 해야 되는 게, 실제 예술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런 과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꽤 있더라고요. 청년정책네트워크 문화분과에서 '최초 예술인 지원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정책 개선을 제안했던 이유에요.  



“그런데, 예술인을 왜 지원해야 해?” 


그런데 예술인을 지원한다고 하면, “너희가 선택한 길인데 감당해야지”라고 말하는 분들도 물론 있어요. 혹은 예술 하면서 돈을 벌고 싶으면 지원을 바랄 게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 상업적인 예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죠.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얘기라 생각해요, 저도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동의할 순 없어요. 그렇게 '돈이 되는' 것만을 해야 한다면, 그래야만 예술인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대체 예술이란 분야에서 어떤 의미 있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나요? 애초에 예술에는 정답이 없을 뿐 더러, 더 다양한 표현이 활발하게 나와야 더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설치예술 같은 분야를 예로 들어보면요. 설치예술의 경우 굉장히 철학적인 예술이고, 작품을 사려는 사람이 애초에 드문 분야에요. 상업성이 필요하다는 잣대만을 들이밀면 애초에 필요 없는 예술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이게 정말 '필요 없는 예술'일까요?  


보통 어떤 예술인이 유명하고 권위적인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거나, 꼭 상업적이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 유명세를 타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죠. 그런데 그런 예술인이, 그런 작품이 더 많이 나오기 위해선 그(것)들을 육성할 수 있는 인프라가 중요해요. 저희가 예술인 지원 정책을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죠. 더 좋은 예술을 바라는 사회가 그 인프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면 모순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발버둥치려고요. 누군가는 “대체 예술인을 왜 지원하냐”고 묻고, 또 누군가는 “돈 되는 예술이나 하라”고 말해도요. 한명이라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더 다양한 예술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들을 지원해야한다고 발버둥 치다보면, 언젠가 그 필요성을 느낀 다른 사람도 와서 같이 발버둥 쳐 주겠죠. 그렇게 한명, 두명. 이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모이다보면, 변화는 바로 그 때 일어난다고 봐요.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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