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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강생각 Apr 24. 2023

감정에 '선'을 더하기

상대성에 절대성 더하기

심리상태

무드보드는 분위기를 표현한다. 감성 스타일을 표현하는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실제 스타일링 디자인을 하기 전 콘셉트 설명에 활용한다. 이미지, 사진, 칼라, 형상 등을 보드에 수집하여 연출 방향에 대해 전달하는 목적이다. 이미지 맵 또는 콘셉트 보드라고도 한다. 디자인 분야와 업무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명칭은 다르다. 하지만 목적은 유사하다.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기 전의 프리뷰와 같다.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디자인 디렉션을 느낄 수 있다.

그럼 디자인을 완성한 후 디자이너의 심리 상태도 무드보드로 표현하면 어떨까? 자신의 결과물과 다른 이의 결과물을 동시에 평가받는 현장 속으로 가보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우월과 열등은 하나의 감정선

디자인은 비교를 당한다. 태생이 작품이 아니었기에 다른 대상과 경쟁이 숙명이다. 선택을 받느냐 외면받느냐의 기로에 수시로 부딪친다. 디자인 안의 선택은 결국 사람의 선택이다. 어떤 디자이너의 제안이 좋은지 공개 평가를 한다. 디자인 사이트에선 익숙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디자이너란 타이틀은 경쟁의 라운드에서 빛을 발한다. 개인플레이를 하던 팀 플레이를 하던 이때만큼은 진짜 플레이어라 지칭함이 맞겠다. 하지만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판정의 순간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 그 현장 속 디자이너의 감정을 무드보드로 표현하면 두 가지로 나뉜다. 흔히 승자의 미소와 패자의 씁쓸함으로 비유한다. 승자의 자랑스러움과 패자의 아쉬움이다. 조금 더 밑바닥의 솔직함으로 말해보자. 우월감과 열등감이다. 선택받은 자와 외면받은 자의 심정을 대표하는 '감성' 키워드다.

우월감, 역시 나야
열등감, 난 안되나 봐

두 감정은 일시적 여운일 뿐 오래 간직할 필요는 없다. 되뇔수록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느 쪽이던 감정에 취해 깊이 빠져들면 위험하다. 우월 또는 열등 콤플렉스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감정과 콤플렉스는 구분을 해야 한다. 


심리학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은 정상적인 심리상태라 한다. 개인심리학의 대가 아들러는 누구에게나 우월감과 열등감이 있다 한다. 이 두 감정은 개인의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의 성질이 있다. 과하지 않다면 긍정의 효과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반면에 콤플렉스는 위험하다. 보통 우월감, 열등감을 콤플렉스와 동일 시 한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다르다. 열등 콤플렉스는 가능성조차 부정하는 패배주의와 같다. 실패와 비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 상태를 말한다. 우월 콤플렉스는 열등 콤플렉스에서 발전된다고 한다. 열등 콤플렉스에 사로 잡힌 나머지 스스로를 남보다 우월하다 여기는 거짓 우월성에 빠지는 현상이다. 자기 왜곡 상태다. 그래서 우월 콤플렉스와 열등 콤플렉스는 동전의 양면 같다고 한다. 행동양식이 달라질 뿐 같은 감정선상에 있다. 우월 콤플렉스는 곧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허세 일뿐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함을  자랑하는 것은 결국 열등함에 사로잡혔음을 알리는 행위다. 우월감이 솔직한 감정의 자만이라면, 우월 콤플렉스는 자신을 속이는 기만이다. 우월과 열등은 표현이 다를 뿐 같은 감정선상에 있다. 무엇이던 콤플렉스로 발현되지 않도록 감정선을 다스려야 한다. 


상대성과 절대성

우월감과 열등감은 상대성에 기인한다. 스스로의 가치 평가 기준을 타인의 결과에 맞추게 된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 자기 제어가 약해지며 감정의 변화에 휘둘리는 상황에 빠진다. 악순환이다. 타인의 결과와 시선으로 자생되고 확장한다. 감정선이 무너지면 판단력도 흐려진다. 축하는 시기로 격려는 비난으로 오해한다. 왜 그럴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지 않던가.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는 매번 실망감만 안겨준다. 반복되고 되풀이된다.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열정은 식어가고, 디자인 과정의 목적성은 잊어버린다. 냉철함을 잃게 된다. 감정의 정상 범위를 넘어 콤플렉스와의 경계에 가까워진다. 이때 감정선을 받쳐줄 다른 선이 필요하다. 경계를 넘기 전에 과정을 되돌아보는 기민함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결과물이 스스로의 기준값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한다. 과정 또한 기준을 위해 달려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다른 선은 절대성의 정립이다. 절대성은 자신만의 '가치 기준_선'이다. 스스로의 평가를 말한다. 감정의 주체는 '자신'이다. 가치 부여도 '자신'이다. 상대 비교의 대상도 나의 디자인 결과물이다. 나의 디자인에 대한 절대 가치 부여는 전적으로 디자이너 본인의 몫 이어야 한다. 절대성은 나에 관한 평론이다. 평론은 기준이 있어야 가능함을 되새겨 본다.


더 나은 디자이너

샤덴프로이데
놀부심보

'샤덴프로이데', 독일어로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한다. 우리의 '놀부심보' 같다. 동서양 모두 감정의 변화 양상이 같나 보다. 그러나 결코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없다. 우월과 열등에 심취되선 안 된다. 성공의 희열과 패배의 아픔 또한 동전의 양면이다. 단언컨대 한 면만 나올 리 가 없다. 손자병법은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고 알려 준다. 전쟁의 환경이 바뀌는 상황에서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디자이너도 수많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 경쟁을 앞둔 압박감 또한 상대성을 신경 쓴 부작용이다. 절대성 정립은 압박감을 줄여 준다. 가치 기준은 자신감과도 같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허세도, 허언증도 아니다. 과정에 임하는 탄탄한 준비 자세를 말한다. 자신감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절대성, 가치 기준은 선택과 탈락에 감정보다 '이성'으로 접근하게 해 준다.


우월과 열등이란 감정축에 이성의 키워드를 세워 보자. 자신만의 키워드가 무엇이든 냉철한 판단을 견인할 것이다. 절대성은 자신만의 가치 영역이다. 이곳에선 타인의 평가 따윈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본인의 목적 달성에 대한 자평만 있을 뿐이다. 나의 기준이 분명하다면, 상대성에 빗대어 약해지지 않는다. 


많이 아는 구절을 빌려본다. 헤밍웨이의 가르침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남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고귀한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기 자신보다 우수한 자가 결국에는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뛰어난 디자이너는 멘털이 강하다. 이들은 상대평가의 점수에 현혹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목표 달성 여부가 중요하다. 상대 비교를 통해 얻은 99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스스로 90점을 부여할 수 있는지 나의 기준을 중시한다. 기준선을 통해 감정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남과의 경쟁보다 자신과의 경쟁을 쫓는다. 상대성은 성장의 동기부여로만 활용하자. 가치 기준이 분명하다면 비교 평가는 확실한 영양제다. 다만 영양제는 보조일 뿐 성장의 필수에너지가 될 수 없다. 절대성으로 진정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감정선에 가치 기준선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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