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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구씨 Sep 09. 2019

멋대로 쓰다 #9) 오랜 아집과 결별하는 일에 대하여

    디지몬이라는 캐릭터에 푹 빠져살던 열 살 무렵, 변신 장난감 하나만 사달라고 조를라 칠 때마다 아버지가 내게 꼭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어차피 나중에 크고 나면 이깟 작은 것에나 매달렸다고 코웃음칠 게 아니냐.” 중학교에 들어가 막연히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떠벌리고 다녔을 때에도, 고등학교 졸업 무렵 내 마음대로 진로 희망을 철학과라 적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항상 똑같은 소릴 하셨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토록 열중해하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다 하찮고 작은 것들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올 거라고.


    아버지를 많이 싫어했던 나는 당신께서 내심 내가 컴퓨터공학의 길을 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자신이 걸어왔던 바로 그 길 말이다. 그러나 황석영의 자전소설을 읽으며 일탈에 로망을 품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 쉽게 ‘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말았다. 그 결정에는 물론, 내게 너무 엄격했던, 하지만 동시에 애정표현에는 서툴렀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진하게 깔려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아버지의 그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다시 심판받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상한’ 일들을 하면서, ‘천박한’ 생존경쟁에는 슬쩍 발을 뺌과 동시에, 밥벌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 ‘글을 팔아 먹고 산다’는 것에 나는 인생 전부를 걸 수 있을까?


    이건 출판시장에 관한 질문이 아니었다. 꿈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 자신이 누구냐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글을 쓰며 살리라는 로망은 분명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리로 탄생한 값싼 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그것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가슴 속 깊이 품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야간자습을 마친 늦은 저녁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앞에서, 오늘 밤 블루 문이 뜰 것이라며 야단인 친구들의 문자메시지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오늘 하루 읽은 문장 하나, 또 내가 쓴 문장 하나에 흐뭇해하며 올려다 본 밤하늘 위로 커다란 달덩이가 걸려있던 그 모든 풍경들에, 그만 미련이 남아버렸기 때문이다.


    그 풍경들을 떠나보낸 내가 더이상 나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아버린다. 저걸 잃어버린 내게, 과연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를 골라낼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기는 할까? 나는, 그냥 영영 같아져버리는 게 아닐까? 한없이 같아진 다음, 그냥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엉엉 소리내어 운다.


    물론 나도 내 반평생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으면 더 노력했었어야지, 방황할 시간에 네가 믿는 바를 좇아 뛰었어야지. 그래, 어쩌면 나는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까지 글에 미쳐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업을 정하는 것에 이렇게까지 부담감을 겪는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문제들로 과대포장해놓은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이제 벗겨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저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내 오랜 아집과, 그만 헤어져야 할 때가 오고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정답은 없지만 거짓말은 나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심판대에 세워놓았던 아버지의 말들은 그렇게 내게 유죄를 선고한다. “어차피 나중에 크고 나면 이깟 작은 것에나 매달렸다고 코웃음칠 게 아니냐.” 아버지는 결국 반쯤은 옳았다.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전체처럼 보이는 것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팅기는 게, 그렇게까지 자존심을 세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것은 내 소중한 것과 하등 관계가 없었다.


    그랬다, 그러고보면 내게도 소중한 것이 정말로 있긴 있었다. ‘세상을 똑바로 쳐다보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생각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파할 때 작게나마 조언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편히 울게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래, 나를 나로 만들어왔던 것은 글이 아니라, 바로 저 마음들이었다. 언제부터 나는 수단과 목적을 헷갈리기 시작했던 걸까?


    “그때 현실과 타협했어선 안됐어”, 혹은 “내가 뜬구름 잡는 소리에 미련을 두는 건 아닐까”... 훗날 괜히 자존심 세웠다며 웃어넘길지도 모를 일들 때문에 이렇게 우리는 얼마나 많이 후회하는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당신은 당신이 좋은 것을 하고, 당신이 바라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난 이런 어른이 되고 싶어”, 이 한 문장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어른이 된다. 당신의 핵심을 이루는 그 바람의 진짜 모습이, 나처럼 흐트러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도무지 상냥함이라곤 없는 세상이다. 삶이 당신을 온 방향으로 몰아부치겠지만, 부디 당신이 선망했던 미래의 당신 자신의 모습을 손에 꼭 쥐고 놓치지 않길. 그리고 남들에게 조금만 더 따뜻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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