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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구씨 Sep 09. 2019

멋대로 쓰다 #8) 우리 이제 그만 미워하자

    내 나이도 20대의 상현달을 향해 차가고 있다. 취업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러 이리저리 눈길을 돌릴 수록, 내가 몰랐던 세상이 낯선 얼굴들의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다. 모두가 부족한 일자리의 의자뺏기 게임에서 생존하기 위해 방황하는 사람들이다. 가끔 마음이 감성적일 때엔 그들이 사막을 함께 횡단하는 동지처럼 여겨질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내 경쟁자들이다. 같은 기업에 지원하기라도 한다면,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와 몸짓으로 기억되던 그의 가치는 모두 한낱 이력서의 길이로 갈음되어버리고 만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았을까?’ 라고 혼자 두려움에 떨면서.

 

    자본 사회에서 인격이 말살되는 일이야 한두번 보아왔던 일도 아니다. 특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선택받느냐 아니냐란, 승리냐 죽음이냐의 총잡이 결투와도 같은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있다는 사실 말이다. 선착순에다 수량마저 부족한 급수대에 어떻게든 도달하기 위해, 경쟁자들의 속도에 뒤쳐지지 않게 오버페이스로 달리고 있는 마라톤 선수들과 같다. 점점 빠르고 복잡해지는 세상에게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려면 그만큼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잠깐의 게으름에서도 도태되어 말라죽은 자신을 떠올려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미 훌쩍 저만치로 사라져가고들 있으니까. 나만 홀로 여기 남겨진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듯이, 인간이 홀로 남겨졌다는 건 그가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와서 내가 그런 우리들에게 새삼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요새 즐겨 듣는 아티스트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BTS. 세대의 방탄조끼가 되고 싶다는 그들. 친구에게 총을 겨눠야 밥을 벌어먹을까 말까인 스태그플레이션 한국에서, 방탄조끼를 입는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싶어서이다.


    도망치면 시체, 져도 시체라는 어처구니 없는 갈림길에 서서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받는 우리들이다. 그런 우리들이 나 자신을, 세상을 조금 극단적으로 보는 것 정도야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BTS의 음악이 우리를 눈물짓게 하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굴 탓하고 싶지만 탓할 사람이 자기 자신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아니면 자기 자신만큼은 탓하고 싶지 않아 아무 상관없는 무엇에라도 목소릴 높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져도 돼, 너만 다치지 않는다면’ 이라는 당연한 얘기를 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고 있지 않은가?


    상냥함이란 자아의 여유에서부터 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물며 강아지가 이빨을 드러내는 것에서도 그가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싶다. 누구에게도 상냥해질 수 없는 우리들은 그저 타인이 두려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도 세상에게 멱살을 잡혀 숨이 막히고 있기 때문일 뿐, 우리의 잘못은 없다.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

도시의 불, 이 도시의 별
어릴 적 올려본 밤하늘을 난 떠올려
사람이란 불, 사람이란 별로
가득한 바로 이 곳에서
We shinin’

(방탄소년단, 소우주(Mikrokosmos), <MAP OF THE SOUL : PERSONA>) 


    도시를 이루는 불빛들 중에는 너도 있고, 나도 있고, 그들도 있다. 이 사실은 우리를 얼마나 안심시키는지. 생존을 걸고 싸워야 할 미지의 적이었던 ‘너’는, 그냥 나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가진 도시의 불빛 중 하나로 같아진다.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빌딩숲이었던 이 도시가, 그래도 사람 사는 곳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더 크고 위대해질 수 있지만, 그것이 유일한 옵션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심한 나라도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고집을 부리고 싶다면 부리고, 멈춰서서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면 멈춰서면 된다. 나 자신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을 품격있게 사랑할 줄 안다. 다 아는 것들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 우리 그만 미워하자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든, 혹은 세상이든.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가혹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반대로, 당신이 세상을 업신여긴다고 당신 스스로의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 행복할 때 행복하고 괴로울 때 괴롭기로 하자. 나머지는 당신이 어떻게 굴던 그게 정답이니까. 삶은 그냥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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