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현실에 닿았는가

by 무 한소

도서관에서 있을 토론 모임을 앞두고 혼란과 함께 밤이 지났다. 모임을 앞두고 수애는 이토록 깊은 혼란과 함께했던 적은 없었다. 물론 관계망에서도 혼란은 풀리지 않은 그물처럼 얽혀있다. 도덕과 윤리를 이상과 함께 강조하지만 정작 모순된 현실의 표본이 토닥토닥 토론 자체이기도 하다. 그 속의 일원인 수애 자신이기도 했다. 휘몰아치는 혼란이 자신의 마음을 읽거나 정리하기 더 힘들게 했다. 토론을 하루 앞두고는 맘이 저려왔다. 맘이 내면에서 소리를 내는지 쓴 울음소리가 들렸다. 수애는 며칠을 혼란 속에서 지냈고 꿈속에서도 다산을 보며 아파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정리할까? 토론에서 다시 만난 다산과 그가 속해 있었던 국가를 수애는 자신의 시선에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러하기엔 그녀들이 함께 할 토론 모임이 과연 주변만을 맴돌지 아니면, 그녀들의 삶을 관통하여 모순적 세상에서 정상인 것 같이 살아가는 수애와 그녀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수애는 믿음과 믿는 일을 뭉뚱그려 하나로 생각했던 지난 시간을 조심스럽게 되짚어 본다. "내게 믿음이란 무엇일까? 종교적 입장에서의 절대자는 신(하나님, 천주님)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믿음은 무엇일까?" 하루, 주어진 오늘이었다. 누려왔던 그 시간의 존재함을 위한 필수조건을 가정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이라 생각하면 수애에게 믿음은 국가이며 지금의 가정이라 할 수 있다. 존재는 자연의 질서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들의 삶에서도 질서가 필요하다. 그 외에 수도 없는 상상의 질서를 나열해 수애는 현실에 닿았다. 토닥토닥 토론에서 믿음을 논하며.




저자는 독자에게 믿음과 믿는 일을 구분 지어 말한다. 믿음은 누구나 가능하다. 믿음은 대상과 사람, 보이지 않은 무형의 가치 등 내면에서 원대하게 품고 끝까지 가져갈 수 있다고 그녀들은 의견을 모았다. 저자는 믿는 일이란 믿음은 당연히 있어야 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고 믿는 일에 대해 책임을 더했다. 믿음이 사라지고 없는 세상에 이타심과 애민의 마음, 사랑으로 젊음의 열정과 희망이 빛나던 그들은 믿는 일을 시작했다. 시작은 했으나 과정은 험했다. 수애는 국문장의 죽음으로 또 다른 먼 곳에서의 삶으로 사라진 그들을 떠올리며 아팠다. 그렇지만, 그들의 각각 다른 자리에서의 노력이 지금 우리에게 변화된 세상을 누리게 해 준 건 아닐까? 하는 미련의 마음이 그녀들을 한꺼번에 불러 모았다. 그들에게 국가는 수애가 생각하는 믿음에 필요한 당연히 주어진 그것과는 무게도 힘도 색깔도 달랐으리라.




수애가 오랜 시간 흠모해 왔던 실학자 다산, 책 제목에서도 그는 전체를 꼿꼿하게 지키고 있다. 덕분에 책을 편안하게 펼쳐볼 수 있었다. 수애는 그의 믿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여러 책을 접하면서 이미 그녀가 알고 있는 그였다면 충분히 그랬으리라고 짐작했다. 표지에 나타나 있는 '재판에서의 민낯'이라 말하는 상황에서의 모습이 담긴 문장은 지금까지의 수애가 아는 세상 안의 다산, 그를 편애하고 사모하는 그녀의 마음에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수애와 그녀들을 지켜주지 않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그들도 존재했고 지금의 수애도 여전히 머물러 있다. 국가란 무엇일까? 어디에 있건 자신을 존재하게 하고 돌아갈 수 있는 테두리를 정해주는 그곳, 그들에게도 국가란 그런 곳이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애착이 더 강했기에 그들은 국가를 바꿔보려는 변화를 시도한다. 이타심에서, 애민의 마음에서. 하지만 국가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치고 올라오는 개혁의 마음을 배척하며 자기 자리에 그냥 놓아두라고 엄포했다. 도서관에 모인 그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이 천주학에 깊이 매료된 것 역시 꿈꾸었던 세상으로 향하는 돌파구는 아니었을까?"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의 평등, 수직적 구조로 되어 있는 세상이 아닌 수평적 구조의 세상을 꿈꾸었던 그들, 이후 크고 작은 변화 속에 이루어낸 세상을 누리고 있는 우리. 수애는 그들의 각각 다른 역할과 자리에서의 노력이 현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리에서 수용과 배척은 자신의 몫이었지만 그녀들은 그 시대를 이해하지 않을 수는 없다.


선미는 다산에게 믿음은 승훈이 지키려고 했던 믿음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어쩌면 본질은 정확하게 딱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선미는 지금의 세상을 말하며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 하나의 그런 국가를 원하고 있었지만 실천에서 국가는 그들을 외면했고 그들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견뎌낸 그들을 말하며 아팠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배교에 대해 비난할 권리는 없다. 그들의 견뎌냄 자체가 의미 있고 그렇게 이뤄낸 국가이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혜린도 덧붙였다. 그들의 각각 다른 자리에서의 노력에 그녀들 모두 감사할 뿐이다. 과정은 달랐지만 믿음의 무게는 모두 같으리라. 수애는 출생과 더불어 관계에 놓이면서 가장 먼저 사랑이라는 감정과 마주했다. 효란 그러한 마음에 아주 조금이라도 닿고자 하는 정성이라고 [다산의 마지막 질문]에서는 언급한다. 효의 마음을 미음 깊이 새기고 있었던 그들에게 그 감정을 우상숭배로 취급하는 그 시기 열려있지 못한 서학에 대하여 고뇌 이후 국가가 등을 돌린 것은 개인적으로는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다고 준희는 말했다. 승훈은 교회를 떠났고 문중에서도 버림을 받았다. 정치, 당쟁의 희생양으로 이용된 그들은 각자 생각하지 못했던 결말을 맞이했다. 오늘 도서관에서 치열하게 나누는 나눔 속에, 버림받은 그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유배라는 배척에 의한 희생만이 있었다.


"다산에게 믿음은 무엇이었을까? 승훈에게 믿음은 무엇이었을까?" 믿음에서는 목사, 현실에서는 재상을 꿈꾸며 무게 재기를 하였을 다산과 유교의 나라에서 완벽하게 천주학을 전파시키지 못하고 효의 사랑을 지킬 수 없음을 아파하며 완벽한 책임감을 다하려고 끝내 배교에서 돌아오지 못한 승훈 그들의 믿음의 무게는 다르지 않았으리라 수애가 백 번 양보한다 해도 저울의 무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비단 믿음의 무게에서는 그들 둘만이 아니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수애는 이 순간을 믿는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존재하게 하는 그녀의 의식과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국가를 믿는다. 그녀들은 역사 속의 그들께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혜린은 토론을 하며 나누는 과정 속에 그들의 믿는 일이 단지 믿음으로서도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시대적 고찰과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의식이 조금 더 확실해졌다. 그녀들은 감히 그들을 이해로는 근접할 수 없겠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그분들이 겪어 온 삶을 따라 움직이니 마치 계획된 상상의 질서로 지금의 현실과 닿게 되었다.

현실에서 모순의 표본인 토닥토닥 토론에서의 책 읽기는 자기를 찾아가는 긴 여정에서 수애와 그녀들을 관철시키고 다시 돌아보고 시작하게 했다. 다산과 승훈 그분들이 지나왔던 긴 여정이 없었다면 그녀들에게 믿음이란 곧 모두의 믿는 일과 함께 나아갈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