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_자신에게 일어나는 작은 변화

변화율은 일정하다(기울기의 균형)

by 무 한소


천칭을 매일 해 나가며 삶과 생활의 밸런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천칭은 일반적인 심 플래너에 감사일기가 추가되어 삶의 밸런스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밸런스란 어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맘 씀'을 하고 더불어 실천에서의 균형을 말한다. 이 밸런스는 몸에서도 명확하게 표현되며 정신이 포함된 맘 씀에서 정확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내부에서 보이는 밸런스이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나타나는 밸런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들이 갖는 조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현재 삶과 생활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나의 '업' 이겠지만 그 '업'을 제외하면 글쓰기와 독서 토론을 중심으로 매일의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글쓰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그 시간의 나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라면, 책 읽기를 좀 더 입체적이고 적극적, 능동적으로 만들어주는 토론은 일상생활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읽고 준비하고 나누고... 참으로 많은 시간을 토론을 하며 소통과 나눔을 했다.


현재 개인의 개성들이 가장 강한 '다(론) 온(독)'과 '오리온' 모임을 예로 들어 보겠다. 다론 온독은 내가 하고 있는 독서 토론 모임의 하나로 45세 초과 65세 미만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간의 나이에서 오는 시각과 사고 범주의 격차를 줄이고자 먼저 공감능력은 회원들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고 있다. 이 모임이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질 수 있었던 밸런스의 하나로는 공감능력을 들 수 있다.


생각의 풍부함 또는 전달하는 스킬보다는 책을 읽고 가치를 나누는 것과 나눔의 자세, 태도가 더 필요했다. 나눔의 태도... 때론, 책을 읽으며 부담스러운 장르라든지 가끔은 유난히도 집중이 안 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책을 100% 읽어내는 완독을 강요하기보다는 과정을 응원한다. 나눔의 과정까지 나갈 수 있는 의지와 실제 모임에서의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조금씩 신뢰를 쌓아 간다는 건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연령, 성별, 직업군 등 스펙트럼이 넓다. 너무나 다양한 각자를 서로의 순간에 끼워 넣으려는 것이 아닌 오히려 서로를 인정하는 부분에서 그 범위가 광대해짐을 느낀다.


토론모임에서 얼마 전에 사건이 있었다. 토론 관련 모임들이 많다 보니 그 멤버들 중 일부가 다른 모임에 중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다온에서 토론 모임을 진행하던 중에 Y가 다온 멤버 중 3명이나 참여하고 있는 오리온 모임(새벽 독서실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다_ 차이점은 시간 이후 단상, 그날의 감정 등 간단한 후기를 남긴다)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게다가 당장이라도 참여하고 싶은 의지를 보인다. 다온 정기모임 이후 오리온 모임에서 그 문제를 두고 멤버들 간의 논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Y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호기심만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대하는 명목이 단지 나의 관점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Y는 우리 오리온 모임에 최 단시간에 초대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 시간 이후로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새벽 모임에도 전혀 참여가 없었다. 그저 눈팅만 하고 나갈 뿐이었다. 그것보다는 사정으로 참여를 못했어도 간단한 전달쯤은 있어야 하는데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모임 리더는 집요하게 반응을 요구했고 다른 멤버들은 각자의 생각들을 단톡방에 간단히 올렸다.


나 역시 소리를 내어 덧붙였다. '함께 함'에 있어서 성향과 적응기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묵묵히' 참여함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되어 조금만 기다려 주자고 제안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서 새벽 모임에 참여하기를 원했을까? 뭔가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무기력함에 대해 새로운 탈출구로 새벽시간을 활용해 보고자 했으나 패턴이 전혀 안 맞았을까?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가진 후 5월이 지나면서 리더는 Y가 스스로 뭔가 결정을 내리기를 강요했었고 결국 Y는 두 달가량의 투명인간으로 지냈던 생활의 막을 내리고 인사 한마디 없이 오리온 모임을 가볍게 퇴장해 버렸다. 우리 모두는 충격에 빠졌지만 이해하려고 했다. 다만 리더의 입장에서는 괘씸한 생각과 Y의 행보를 여러모로 생각하며 단톡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마음을 알리고 있을 때, 그때 마침 채팅창이 뜬다.


이번엔 다론 온독에서의 알림 메시지이다. 그 창에서는 Y는 이번에 선정된 도서를 어렵게 구입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탈퇴한다는 간단한 메시지를 남기며 2년간의 긴 시간을 너무나 허무하게 지우듯 그냥 나가 버린다. 그렇게 두 곳의 모임을 가볍게 탈퇴해 버렸다. 우리가 잊은 건 과연 무엇일까? Y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나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었고 불편했을 Y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Y의 태도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태도에 대하여. 존중의 태도에 대해... 자신의 상황이나 입장을 밝히고 탈퇴하는 것의 뒷 마무리가 자신을 위해서도 그곳에 남아 있는 멤버들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도 옳은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리더의 입장은 그냥 놀라거나 아쉬움의 수준을 넘어선 듯 보였다.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고 나간 Y의 태도에서 오는 그런 상처들이 모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 힘들고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아주 사소하고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밸런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입장에서 생각을 해본 계기가 되었다. 내부 못지않게 외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자극들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는 삶을 살아가면서 태도를 잘 익히지 못하고 습득하지 못한 Y와 같은 사람들도 존재하고 또한 모임의 리더와 같이 자신이 선택한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도 한치 후회나 흔들림이 없는 판단으로 독선을 낳는 경우도 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기에 배워 나가는 과정에 있고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기만 하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제대로 들여다보고 돌아봄이 잘 안 되기에 우린 끊임없이 내외적 갈등을 하며 힘들어한다. 내 삶의 균형은 진짜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내가 바라는 나'로 살아 보겠노라 천칭을 시작하며 의지를 다졌다. 반복되는 무기력함에 힘들어하던 내가 그 시작이 '남이 바라는 나'로 살아 가느라, 살아 내느라 힘에 부쳐서 균형과 불균형을 반복하다가 무기력함을 또다시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지금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앎에 대하여... 깨달음이다. 나의 반복적 무기력함이나 그것이 '남이 바라는 나'로 살고 있었음을... 그것은 진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천칭을 시작할 때쯤 심한 무기력함에 빠져 있을 때도 사유의 시간은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나'로 진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밸런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삶의 밸런스를 제대로 찾는다면 내 안의 숨어 있는 가능성도 그 속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천칭은 삶의 기록이다. 매일 매 순간의 기록이기 이전에 감사와 용서로 미리 들여다보고 자신의 맘을 기록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작은 천칭으로 했지만 지금의 천칭은 삶의 루틴이 되었고 매일의 가치와 의미가 달라졌다.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하루가 좀 더 풍성해졌다. 생각과 나눔의 감정까지도... 나는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주는 힘으로 지금의 생각과 감정이 좀 더 깊어지고 그 깊음이 주변을 향한 사랑으로까지 커지고 넓어지길 기대한다. "좀 더 다양해졌군." 매일 시작되는 새벽시간 계획을 기록하고 반성하고 맘 다스리기를 한다. 전 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원인을 찾아보는 천칭! 지금은 나와 변화의 걸음을 함께하고 있다.


처음에는 짧은 기간의 변화에 대해 들여다봤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조금 더 긴 기간의 변화를 들여다봤다. 그때마다 변화된 함숫값도 달라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변화율 다시 말해 기울기는 처음과 시간이 조금 흐른 뒤가 같았다. 천칭을 통한 내면의 변화와 외부에서 오는 변화 또, 생각의 변화와 몸의 변화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밸런스를 이루는 삶이야 말로 바라는대로의 내 삶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 모습은 매일 다양해지고 있다. 변화의 걸음을 함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