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속 그를 쫓다

카오스 이후 코스모스에 자리하다

by 무 한소

매년 어린이의 날을 앞둔 어느 시간 어느 시점부터는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함이 엄습해 온다.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의 특별함 뒤로 감춰진 부정적 의미... 이후 긴 시간이 지났다. 지금의 기록으로 스스로 일상에서 완전한 자유를 찾아가며 시간 속 움직이는 또는 정체되어 있는 아이의 영혼이 안정된 자유로움에서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그리움을 대신하려고 한다.

2021. 오월의 푸르름을 대신한 아득한 그리움


나는 오늘 아이를 잊었고 아이는 나를 놓아주었다. 책과 책 속의 인물과 인물들의 감정, 그리고 새벽시간 명상을 하며, 지금까지 함께해온 '수'에 나를 투영하고 깨어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이젠 그리움의 아이를 덮어두려고 한다.


아이와는 15년을 넘게 쭉 함께 하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가 함께 하는 공간은 주로 현재와 멀리 있는 우주였다. 우주 공간 어딘가에 우리의 자리가 각각 순서쌍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베일에 쌓여 감춰둔 것을 어느 사이 베일이 수줍게 자리를 피해 준 덕분에 얇고 흐린 막을 걷어낼 수 있었다. 더 적극적으로 걷어내니 아이가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과 미안함이 이제는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깊이를 알 수 없는 끝이 없는 맨홀의 깊숙한 곳에서 아이 혼자 나를 기다리고 어둠을 두려워하며 소리의 울림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반복적인 그 일과와 벗어날 수 없는 감정의 두려움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체 아이는 환청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봄이면 나의 봄을 같은 맘으로 설레어하고 오일러의 항등식을 우리의 봄으로 꺼내어 그 아름다움을 함께 노래했다. 내 손을 잡고 발은 통통 튕기듯 걸으며 원주율을 그리면서 거리 곳곳에 휘날리며 퍼져 나가는 '벚꽃 잎'을 함께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이와 봄을 보냈다.


아이는 내 곁에서 기온과 습도를 느끼며 여름을 맞이한다. 여름이 되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같은 모습 같은 미소 같은 신을 신고 있었다. 습도를 가득 담은 비단안개가 삼켜버린 날도, 빗줄기가 내 살을 찢어낼 듯 강하게 내리칠 때도 변함없는 미소를 짓는다. 여름 비가 긋고 상처를 내며 순식간에 지나가도 아이는 여전한 눈망울로 바라보며 손등을 덮어버린 빗줄기 위를 살며시 만졌다.


아이와 함께한 여름이 지났다.


가을빛으로 다시 한번 청명함에 소외된 우울함을 몸소 겪으면서 다채로운 자연의 색을 감상하고 있을 때에도 아이는 여전히 같은 표정, 같은 옷을 입고 자신이 바로 잡아 신은 신으로 나의 가을을 함께 지켜본다. 그리고 나의 가을에 속해 있는 쓸쓸함을 마주하며 곁에서 소리 내어 울어준다. 울다가 다시 끝도 없는 미소로 내 시선을 하늘로 잡아 이끈다.


가을은 아이와 함께한 추억 속으로 자취를 감춘 건지 소멸한 건지 사랑의 여운만을 남기고 떠났다.


우주공간이 보이자 가운데 '0'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0'의 입장에서는 우주와 지구 안의 모든 경계가 모호하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긴다. '0'은 속으로 밖으로, 안으로 바깥으로... 의 경계인데 물리적인 힘이나 크기로만 생각해서는 경계의 '0'을 설명할 수 없다. 공간의 '0'의 테두리를 기준으로 블랙홀괴 화이트홀 모두가 존재한다. 경계는 안과 밖 모두를 포함한 기준이다. 출발점이자 도착지점이라 할 수 있다. 시점에 따라서... 하늘 속, 하늘 밖인가? 아니 우주였다.


아이의 '눈' 속에 있는 지구 밖 우주에는 지금은 너무나 변해버려서 자신의 집을 찾아가지 못하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서로를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스스로 지켜야 할 선을 고집하고 있다. 태양계가 아름다움을 지키며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도 같은 원인에서이다. 태양계 밖에서도 마찬가지로 질서가 유지되고 별들의 거리두기가 조화로운 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기본 법칙을 지켜 나가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빛의 밝기가 좀 더 강력해서 가까이할 수도 없지만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나를 끌어당기는 별도 있고 밝기가 너무나 약해서 비교적 근거리에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별들도 있다. 어둠 속 우주 어느 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하여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서 있는지 두려움에 떨며 곰곰이 짚어본다.


짙어가는 안개가 급격하게 내려간 기온을 쫓으며 찾아간 곳에 소멸해버린 가을을 대신해서 찾아온 겨울이 있었다. 겨울... 곳곳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밤새 슬며시 내린 '눈'이 서리의 본새를 하고 최대한 가볍게 살포시 가지를 포장해준다. 내가 뿜는 입김에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아이는 한결같은 미소와 겨울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민소매 차림의 티, 그리고 무릎을 반쯤 덮은 바지를 입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시선은 자꾸자꾸 고개를 떨구며 울음 섞인 신음소리와 함께 아이가 신고 있는 '신'으로 집중했다. 다행히도 아이가 지닌 나머지 모습보다 계절은 천천히 가고 있었다.


슬픈 연가처럼 겨울은 내가 아이를 지켜보며 아픔을 알고 부디 통증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 속에 지나갔다.


이이의 눈은 왜 나를 우주로 밀어냈던 걸까? 아이와 내가 함께한 그곳이 어디인지 헤매며 정신없이 좀 전의 울음소리보다 더한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한번 살펴보니 그곳에서는 아이와 내가 항상 함께하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다시 데리고 온 우주는 '그와 나'의 그리고 '그와 내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함께하는 우주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는 나의 사랑 씨앗으로 우주 어느 곳에서 왔으며 씨앗은 더 큰 사랑과 용기로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그리고 그는 나의 아이, 자식이라는 의미 깊은 가지와 열매만을 두고 떠나버렸다. 그러나 아이의 눈을 통해 우주에서 아이와 나,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뿌리임을 확인한다.


이런 깨달음 이후 울게 하고 내면의 슬픔을 쏟아내게 하는 아이는 사랑 씨앗이 우주에서 데려 오기 전에는 나의 어버이였을까? 아니면, 스승이었을까?


마음 깊은 곳에 가둬둠을 대신해 빗장으로 꼭 채워진 그곳의 문을 활짝 열고 보니 아이는 '나의 우주'였다.


그 깨달음으로 2021년 5월 3일이라는 좌표가 지닌 또 다른 우주 안에서 편안하게 그냥 평범함으로 아이와 함께 얘기하고 무한의 우주의 순서쌍 (-∞, +∞ )에서 사랑을 나누고 일상을 즐긴다. 아이가 다시 찾아오는 매 해의 5월 3일은 또 다른 특별함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고 사랑을 아우르는 아득한 그리움의 날이 될 것이다.


아이는 나의 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