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은 허기가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게 하던 어느 날 먹고 읽고 보고 듣고 채우고 또 채웠다. 그런데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무엇의 부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를 공허와 스스로 부족하다는 느낌에 빠져들자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돌파구는... 자칫 잘못된 방법으로 욕구를 채워나가는 것은 아닐까?" 수애는 생각했다. 이 모든 근원은 무엇으로 시작되는가? 토론 모임이 있을 그곳 도서관 4층 교양교실의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하며 다시 한번 생각의 끈을 잡았다.
매번 토론 모임을 가지며 수애는 자신은 과거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워졌는지, 그녀가 가진 욕구의 근원은 해결되었는지 지난 시간을 짚었다. 토론 시간을 함께 했던 그녀들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이 수애는 자신의 일부와 견주어 비슷한지 일부인지 전부가 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내면에 감추어진 자신의 욕구를 찾아 나서려고 한다.
[욕구들_캐롤라인 냅]은 그런 위험에 여전히 허덕이고 있고 억압된 그녀들의 욕구와 이 땅의 모든 여성을 위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의 저자는 채워지지 않은 욕구로 끝없이 갈망하고 다시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린 시절 해결되지 못한 두려움과 불안은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 그렇게 이 땅에 태어난 여성의 고통에 대해 얘기한다. '중독', '강박증' 등 다양한 부정적 모습으로 표출되는 고통은 결과에 대한 갈망만이 존재하기 때문일까? 완전한 행복을 가진듯한 미숙한 한 여성이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는 것도 결핍에서 오는 다른 대처이며 그녀만의 해결 방법이다. 수애는 그것만은 자신의 오만한 판단이 아니기를 기대했다. 수애가 불안전하게 느꼈던 정숙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어떤 경험에서 정숙은 모든 것을 해탈한듯한 표정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선뜻 꺼내곤 했다. 수애의 시선이겠지만. 정숙은 자신의 감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간접적 표출을 해왔다.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수애는 그녀가 어떤 결핍으로 좀 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해소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언제 어딘가에서나 결핍은 드러난다. 수애는 감추려는 감정과 마음 더 아래 그것은 숨어 있으며 언제 어떤 방법으로 드러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애가 바라본 토론 모임을 함께 하는 그녀들은 해소되지 않은 그런 결핍에 시달려왔다. 근원에서부터 천천히 자기를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들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갈망의 근원은 모두 동일하며 그들의 죄책감과 수치심 슬픔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이미 깨달은 캐롤라인 냅은 어린 시절부터 불안을 느꼈다. 불안을 씻어내기 위한 자기 질책 자기 파괴를 멈추기 위해 10대 시절부터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것으로도 없앨 수 없었던 두려움과 두려움에 대한 수치심... 그녀는 다시 다른 비상구를 찾았다. 그것은 그녀가 겪었던 거식증이다. 그녀가 찾았다고 착각한 비상구는 시간과 비례해서 그녀를 갉아먹고 있었다. 작가는 그렇게 하루에 사과 한 알과 조그만 치즈 한 조각만 먹으면서 버티는 '굶기'를 했다.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 한건 평생도록 해결할 수 없었던 고립과 애착이었다. 그 대안으로 잘못 만들어진 '중독'까지. 책을 읽어 나가며 작가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수애는 자신이 겪어온 고립과 애착에 대해 떠올리며 지금까지 평생 벗어나지 못한 인정욕구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인정 욕구는 수애외에도 대부분의 여성이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도 반복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욕구를 위해서 애쓰고 있으리라. 어쩌면 토론을 하며 나눔을 하고 있는 지금도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각자 서로에게 인정받기만을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수애에게 그것은 고통의 해소로 이어졌다. 토론 멤버들은 본인의 진정한 욕구를 찾고 해소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여성들은 최소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단지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써왔다. 그녀들은 단순히 자신의 존재 가치가 인정되지 않자 다른 해결점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자신을 더한 고통에 들게 하더라도. 진정한 평온이란 불안해 보이는 환경에서도 자유나 행복을 서서히 느끼고 찾는 게 아닐까.
[욕구들], 수애는 책을 힘들게 읽었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진정한 평온함을 찾았다. 과정에서 괴롭힘으로 수애를 쫓던 묵직함이 차차 해소되었다. 소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느끼는 행복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주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 도서관에 남아있는 몇몇 사람을 바라보며 치열한 경험이 없었으며 안정된 누림의 길에서 머물렀던 누군가는 대부분이 알고 깨달은 것조차도 다른 시간으로 밀어버리고 느꼈으리라. 그리고 앞으로도 그 경험은 있을 수 없다. 내가 가진 것 내에서 하나를 주는 것과 없는 것을 겨우 만들어서 전하는 것은 애초에 시작의 마음과 여유조차 다르다.
근심을 없애고 그녀들을 바라본다. 수애는 마지막까지 착잡했다. 마지막에 찾은 평온함 밑바탕에 깔린 감정, 착잡함이 전체를 휘감았다. 다시 해결되지 않을 질문을 담아본다. 토론 후에도 도서관에서 쉽게 자리를 옮기지 못한 그녀들은 보호받는 사람일까? 보호하고 있는 독립적 주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