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시 지원을 받은 후 멤버들은 책임을 더하기라도 하듯 열정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그 역할에는 11월 말까지 20회 이상의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고 참여 멤버들은 단상을 업로드해야 한다. 도서관에서 매번 진행하던 정모때와는 다르게 읽기는 부담이 없고 나눔에서는 더 풍부한 그림책을 선택했다. 수애는 도서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멤버들과 나눌 그림책에 흠뻑 빠져있었다. 고양시의 동아리 지원 이후 기획으로 진행하며 12월 첫 주까지 매주 책을 읽고 단상의 글을 올려야 했다. 의견을 모아 정모 때 읽을 책과 나머지 주에는 부담이 없는 책으로 합의를 보자 멤버들 표정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워졌다. 마침 혼자 읽고 덮기 아쉬워서 책꽂이에 꽂지도 못하고 옆게 두었던 책이 있었다. 토론 모임에서 꼭 함께 읽고 나누고싶어서 권했으며 또 누군가는 그런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모임 해체 문제는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수애는 현재를 살아가며 위로가 필요한 자신과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책 표지 처음과 끝에 그려진 악보와 노래! 수애도 그들과 함께 노래하며 걷는다. 희망차게. 아니, 평범한 걸음으로. 천천히 발맞추며 걷는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과 한 곳을 바라보며 걸었다.지나온 길도 가끔 돌아보았다. 수애가 가장 아팠던 건 과연 그녀는 '도와줘'라는 말을, 소리를 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하며 함께 토론을 하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녀들도, 수애 자신도 그랬다. 진심으로 '도와줘'를 외쳐보지도 속삭이지도 못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그녀는 성인으로 엄마의 몫을, 배우자의 책임을 사회 구성원으로의 의무를 다해왔다. 이제는 조금 지쳤는지 읽고 나누었던 책이 더욱 강하게 와닿았다.
수애는 지난번에 언급한 적 있는 모임의 기틀을 마련할 당시의 처음 순간을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젖었다. 따뜻한 위로가 되리라 믿었고 모임의 가장 처음을 기대했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수애 역시 다른 멤버가 느꼈던 것처럼 책을 읽고 토론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미리 준비하고 토론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받는 자극에 이르기까지 스트레스가 많았다.
"스스로 언제 가장 아름답고 단단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까 끊임없이 되묻게 해 준 그림책이었어요. 삶 속의 나, 나의 삶. 그 작은 것은 함께하는 것들에 의해서 긍정과 부정의 힘을 발현합니다. 과정을 그저 겪어나가며 때론 흥얼거리는 콧노래로 가끔 절규하는 노래도 불러봅니다. 작가는 이제 조금씩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나에게 발걸음을 계속 유지하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걸어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걸어갑니다. 지나온 길의 시간과 자연이 귀하다고 지금의 행복을 담아 한발 더 내디디라고." 수애가 책을 읽고 벅찬 감정을 추스르며 올린 단상이다. 수애는 그녀들과 함께 준비 없이 다시 걸었다.
모임에서 나누고 프로젝트의 의무로 불편한 구석이 많은 후기지만 수애는 여전히 즐겼다. 풍선처럼 부푼 과장된 마음을 글이 아니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들뜬 기분으로 멤버들에게 마무리 멘트를 했다. "매번 그 순간이면 벅차다. 사랑이겠지. 문학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글쓰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으로 드러나는 감정 역시 사랑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
과거의 바람이 현재를 스치며 전합니다. '시. 공간을 초월한 가치'의 책들을.
[엄마 까투리]_권정생
자연과 모성을 바탕으로 그 이상의 삶의 가치와 철학을 담아 그림으로 옮겼다. 책은 묘하게 수애를 건드렸다. 자극했다. 결국, 눈물이 흐른다. 수애는 왜?
토닥토닥 토론 멤버와 수애, 그들은 모두 엄마였기에. 유독 사랑에 자극받고 눈물로 표출하며 슬픔으로 귀결시켰다.
엄마 까투리의 새끼들을 지키려는 모성을 통해 그녀들의 미래로 닿는 끝나지 않은 숭고함이 위대해서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수애가 다시 확신할 수 있는 건 자연과 엄마가 닮았다는 것이다. 사랑과 희생으로 가려져 있지만 이면에는 자연을 파괴하고 생존경쟁에서 혈안이 되어 있는 그녀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모성은 수애를 좀 더 단단하고 두꺼운 벽처럼 옭아매는 무거운 의무로만 짓누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에서나 사회 속에서 그리고 수애 자신도 외쳤다. 모성을 의무로 의무화해서 몇 배의 짐을 실었다. 그러나 수애는 그 순간 떠올랐다. 의무와는 결이 다르다고. 모성은 깊은 곳에서 넘쳐 오르는 다른 모습의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모성애는 토닥토닥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모성애라는 사랑이 의무로 돌아와 도서관에 모인 그녀들을 무겁게 했지만 이야기 후 멤버들의 촉촉한 눈가와 호흡이 그 위대함을 다시 한번 말해주는 듯했다. 멤버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모임 후 도서관 밖으로 나와 맑을 공기와 쾌적한 온도를 전하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중하다. 엄마 까투리가 전한 사랑처럼.
수애는 존재자체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이 바로 모성이라고 생각하자 이내 불편해졌다.
[춤추는 기린 제레미]
수애는 화려한 표지를 넘긴 후 처음 마주한 제레미의 시선에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일상을 겪고 있는 그녀의 시선처럼. 시각화된 세상에서 어두운 면이 감춰진 밝음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경쾌함에 취해 맘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마주한 제레미는 불안한 듯 경계에 서있었다. 경계 안과 밖에서 느껴지는 시선의 차이, 제레미가 온전히 자신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춤을 찾지 못한 건 관계에서의 소통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방황했던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한 제레미는 드디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마음이 담긴 귀뚜라미의 진심 어린 조언과 노력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제레미는 가장 자기 다운 모습으로 소통할 것이다. 그건 결국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다. 수애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들이 그런 것처럼. 수애는 과정 안에서 인간에 대한 성찰과 세계 인식의 과정을 제대로 겪어 나가리라 다짐했다.
수애는 걷는 걸음걸음에 다른 에너지와 호흡을 불어넣었다. 다채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신이 대견했다. 다음 토론에서 만날 그림책에서도 다시 수애 자신을 만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결핍이 많은 듯 보이는 그녀들, 상처가 많은 당신과 다시 마주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