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긴 여행

도망치려고 열망했던 그곳에 돌아가다

by 무 한소

과거 자신이 그토록 도망치려고 했던 장소나 벗어나기를 열망했던 집단, 감추고 숨기려고 했던 가족이나 주변. 마침내 도망쳤던 그곳.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왔다. 이건 비단 디디에 에리봉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수애는 이번 봄이 여러 잔인했던 봄 가운데 가장 힘들었다고 긴 시간을 앓고 난 후 생각했다. 감정과 현실이 평행선처럼 연결되어 현실에서도 상실감이 앓고 난 그녀를 반긴다. '대중성'이라는 단어로 찾아온 예의 바른 거절. 이후 수애를 더 깊은 늪에 빠뜨린 상실감. 매 번 겪고 다시 이겨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이번에 찾아온 상실감은 모양도 색감도 경험보다 더 불규칙했다. 수애는 긴 호흡을 스트레스만큼, 아팠던 감정만큼 깊게 아니, 그것보다 훨씬 길게 했다. 사실, 그런 자신을 발견한 순간은 힘들었던 그때만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행복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 양가적으로 과거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오만한 자신을 만났을 때, 비로소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오만한 자신을 발견한 순간 눈물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흘렀다. 진실된 가장 비참한 자신을 만났기 때문일까. 철저하게 가려진 페르소나, 다른 자신의 모습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일까. 수애는 철저하게 위장되어 타자나 하물며 가족에게 조차 그 모습이 자기인 것처럼 말하고 생각하며 긴 시간을 보내왔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조차도 속고, 속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페르소나가 수애 자신인 것처럼. 그 순간 가장 비참하며 우뚝 선 오만한 자신과 만났다. 지금까지 삶의 긴 변화의 과정에서도 자신을 찾아가며 자기 성찰의 과정을 보냈을 때도 수애는 '오만함'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애는 다시 눈물을 쏟아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디디에 에리봉은 자기, 자신의 근원을 찾아 랭스를 35년 만에 돌아갔다. 비록 그 시작이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수애가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의 출발도 아빠의 부고 소식으로 시작되었다. 아빠의 죽음은 그녀를 다시 무기력에 빠지게 했다. 이제는 도망치거나 애써 숨겨야 하는 치부의 일부가 가려진 것처럼 '휴'라는 탄성과 함께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를 상실감이 합쳐져 다리의 힘이 빠졌다. 주저앉았던 걸음에 조금 힘을 주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적정한 때'를 놓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빠가 진심이었든 아니든 늦은 후회로 사과를 했을 때, 그녀는 과연 받아 줄 준비가 되었을까. 수애는 그때의 감정으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눈물이 사라진 무력감은 수애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장례식장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진 속에 머물러 나올 수 없었던 아빠의 자리 앞에서 가장 많이 울었고 가끔 자신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오열했다.


정해진 마지막 3일이라는 시간 안에서 그녀는 이성과 감성, 모두를 생각해야 했다.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까지도. 비움과 채움. 벗어던지듯 도망친 그곳에서 과연 자신을 찾기 위한 자아 성찰의 최소한의 것이 존재했을까? 도서관을 향해 옮겨지는 수애의 발걸음이 부자연스러웠다. 무겁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얼마 전부터 균열을 보였던 토론, 수애는 자신을 찾아가는 긴 여정 속에 토닥토닥이라는 토론 모임을 곁에 두고 있었다. 건강 검진 결과 엄마의 암 소식과 함께 찾아온 우울감과 주변인들의 죽음을 한꺼번에 맞이하며 두텁게 쌓인 흙을 뚫고 땅 위 세상으로 올라오기 힘든 새싹처럼 우울이라는 감정은 그녀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엄마께 다녀온 뒤 마음의 병을 시작으로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감기는 수애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일시적이긴 하나 결국 소리를 잃고 며칠간은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 몸과 맘의 건강은 서로를 향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몸은 얕게 때론 깊게 그녀를 충분히 끙끙 앓게 한 후에야 겨우 일어설 수 있게 했다.


수애의 몸 상태, 감정의 변화와 비슷하게 토론 모임도 멤버들 간의 감정과 형식이 얽혀 묵혀뒀던 염증이 결국 터졌다. 오래전부터의 문제였는지 얼마 전부터 시작된 균열인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수애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아팠다. 그곳은 그녀가 도망치듯 멀리해 온 그 무엇으로부터 가장 안정된 자리라고 생각해 왔는데... 모든 것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처럼 그녀는 아팠다. 마음을 담아 두었던 그곳에서 마음을 해체하고 나와야 했다. 오늘의 걸음에는 앞으로의 방향이 실려있다. 토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새로운 색깔의 토론을 다시 만들어야 할지. 그녀들과 마음이 함께한 시간만큼 복잡했다. 해체되어야 할지... 대안을 찾아야 한다. 모임에 자리한 멤버들 사이에는 어색함, 불편함 등 무거운 에너지가 흘렀다. 그 모든 것에 수애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였는지. 수애는 멤버 한 명 한 명을 떠올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단지 시기적으로 위태로웠던 걸까? 그녀에게는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나오면서 토론으로 많이 행복했다는 자기만족이 있었다. "지금 시점이 어떠한 조직이든 균열이 생길 수 있는 타이밍일까." 수애는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결국 모임을 하기로 결정했었다. 어렵게. 그날 이후 모임이 해체되기 전에는 결코 그녀가 먼저 모임을 나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10년이고 20년이고 버텨줄 거라 믿었던 모임이 이제는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수애는 자신이 모임을 선택했고 그 모임의 가치를 생각하며 해체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좀 더 힘을 실어 걸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도서관을 향해.


랭스로 되돌아간 저자의 시작점이 아버지의 죽음이었듯 수애가 그토록 도망치려고, 지우려고 했던 그곳으로 되돌아간 것 역시 아빠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지나칠 만큼 당당했던 엄마는 그때그때 당신의 행동이나 결정을 정당하게 표현했다. 엄마의 기억을 시작으로 수애는 자신이 놓인 현실에서 충분히 대접받지 못했고 저울의 잣대나 그것조차 허용이 안되면 항상 밀려나서 다른 집단에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했거나 인정받지 못한 시간 속의 자신도 꺼낼 수 있었다.


기억으로 찾아낸 감정을 비우며 동시에 시작되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사회의 모순과 적당히 타협했던, 어쩜 비굴했던 이전 세대의 아픔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 수애가 바라봤던 부모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수애는 부모님 세대에서의 모순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녀가 궁금했고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결핍이 가득한 그들의 어려움을 대변해 주지 않은 다수에게 소수 집단에 처한 그들이 다시 무게를 더하고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현실에 만연해 있는 이 모순은 수애의 생각을 곤경에 처하게 했다. 저자는 소수자로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나 그것을 벗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럼에도 그 경험 이후 자신이 성찰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디디에 에리봉을 통해 수애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근원을 찾아 걸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진정한 성찰이 시작되었다.


아니 에르노와 부르디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저자는 인간이라면 모두 경험하고 겪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과 결핍의 문제, 존재의 부정 이후 다시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지금 수애가 처해 있는 현실이나 독서토론 동아리의 상황까지 모든 게 맞닿아 있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첫 문장. " 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를 떠올리면 김 춘수의 '꽃'이 생각난다. 저자가 말한 여러, 다양한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랭스는 저자에게 그런 곳이었다. 기억을 통해 근원을 찾지 못했다면 특별한 의미가 없는 곳. 그런 곳이었다. 요즘 건강을 돌아보며 인류가 얼마나 나약한지, 자연 앞에서 인류는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고 수애는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나치게 오만한 자신과 인류를 마주했다. 디디에 에리봉은 랭스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지나 자신을 복원했다. 사회 속, 시간 속, 자아 속, 다양한 자신의 페르소나와 마주하며 자신을 다시 정의하고 받아들였고 자신을 발견했다.


4층 도서관 문을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열었다. 수애가 도착했을 때 아직 그녀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다. 도서관 관계자를 찾아 오픈을 부탁드렸다. 앞장선 관계자를 따라 문을 열고 먼저 환기부터 했다. 수애는 멤버들이 도착하기 전에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마음이 떠난 그들, 모임에 대한 그들의 무심한 태도. 어쩌면 그들을 잡고 싶은 수애의 마지막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찍 와서 토론 모임을 지켰던 준희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준희도 지친 걸까. 아님, 준희가 가장 많이 지쳤을까? 수애는 준희에게 전화를 했다. 한 번의 신호가 닿기도 전에 준희는 바로 대답했다. 도서관 3층인데 올라오겠다고. 수애는 토론을 위한 책상 정리를 했고 기다림 속에 긴 시간 함께 한 멤버들을 떠올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덧 시작 지점에 가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민주와 준희의 모습이 보였다. 준희는 미소를 지으며 수애에게 토론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책에 대해 언급했다. "책이 너무 좋아. 이 책 어떻게 알게 되었어? 알지 못했던 작가인데..." 딱 적절한 때 이렇게 좋은 책을 추천해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민주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책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수애가 가볍지 않은 입을 열었다.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픔을 겪는 시기에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책인데... 수애의 처지와 저자의 시대적 입장은 비록 다를 수 있으나 책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수애는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요즘 수애의 주변 삶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분들이 많다. 이제 수애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음을, 숱한 세월 동안 구축된 경계를 없앨 수 없음을 깨달았다. 디디에 에리봉이 얘기한 것처럼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를 과거에 이어보려고 하면서 우리가 떠난 세계와 화해하는데 전념할 수 있을 뿐이다. 수애가 겪어낸 수도 없고 깊이도 알 수 없는 상실감을 우리는 누구나 겪는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늪에서 헤매며 헤어날 수 없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수애는 다시 생각했다. 토닥토닥 토론도 지금은 그 위기에 빠져있고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단단해지리라. 해체된다고 해도 변화의 과정이기에 겪어내야 한다고 되뇌었다. 디디에 에리봉이 겪어낸 삶의 변화의 과정처럼. 성장의 과정처럼. 슬픔이 그림자처럼 수애를 가렸다.


잠시 후 정숙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온 후 토닥토닥 토론으로 들어오는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무겁게 의견을 나누며 각자의 생각을 정리했다. 가볍지 않은 인사를 나누며 나누었던 생각을 간단히 나눴다. 이후 각자의 입장과 모임의 향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카톡으로 남기자고 기약했다.


시원하지 않은 무거운 걸음으로 모두가 탁하고 농후한 열기 가득한 그곳을 빠져나왔다. 천천히 한 명씩. 그리고 무거운 문이 닫혔다.


며칠 후 방문한 도서관에서 토론 동아리 회원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