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에서도 자연은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구나. 봄이 왔다. 이 시기에는 겨울이 쉽게 물러가기를 꺼리며 봄의 운동방향과 속도를 항상 방해한다. 샘 많은 친구가 마찰력을 대신하며 오는 봄을 공경에 처하게 했다. 어찌나 샘이 많은지 '꽃샘추위'라는 말은 봄과 항상 바짝 붙어 다니는 친구이다. 나 혼자서만 봄을 만끽하고 싶은 욕심으로 타자들과는 조화롭지 않은 하늘거리는 봄옷을 입고 거리에 나선 지 벌써 몇 주째다. 주변에서는 멋 부리다 감기 걸린다며 다들 걱정스럽게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겨울을 밀어 내고 봄을 끌어당기며 혼자 계절을 앞서 달리는 중이다. 그렇게 남들보다 이른 봄맞이에 매 번 헉헉 댔다.
그만큼
봄이 좋다.
봄은 사랑스럽다.
봄은 설레게 한다.
봄의 기운을 받으며 땅을 딛고 고개를 들어 적당한 시선에서 하늘과 눈을 맞춘다. 무엇인가 나의 상상, 생생하게 꿈꾸는 상상이 꼭 이루어지리라 확신하는 그런 기운을 받는다. 생각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돌고 행복감에 또 다른 긍정의 에너지가 생긴다.
아주 작은 희망적 결과라도 그 어떤 상황에서의 선택은 나를 힘들게 한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모색하고 판단하면서도 늘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을 외면한다. 내면 깊이 존재하는 나를 스스로 더 방치하고 무시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포장한다. 내 몸에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붙어버린 '습'이다. 도무지 떼어지지 않는 부동의 '습'을 어느 해 3월 경쾌한 이 봄엔 떼어내려고 한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그것을 과감히 벗어던지려고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 있을 테니.
지난주, 내겐 참으로 소중하신 분들이 봄과 함께 갑자기 이곳에 오셨다. 형님 부부와 지인들. 일산 킨텍스에 건축박람회 관람을 명목으로 오신 거지만 그분들의 기운은 내가 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함께 한건 관람과 관람을 하면서 나눈 생활 얘기가 전부였지만... 이 봄 큰 선물을 받은 거처럼 충만한 행복에 심장이 꿈틀거린다. 형님 부부는 우리 부부에게 선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결혼 1년쯤 되는 해였다. 그때는 내 소유의 차가 없어서 다른 지역을 다녀오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마침 일산에 일을 보러 오신 J께서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하셨고 불편한 맘보다는 대중교통으로 버릴 시간을 좀 덜어보고자 하는 맘이 더 커서 흔쾌히 "좋아요!"를 외쳤다. 그리고 인천으로 가는 동안 J와 나는 동행인이 되었다. 가는 길이 참으로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J께서 "잠시, 하늘 좀 보세요."라고 하시며 "하늘이 가지고 있는 고유색이 참 이쁘죠? 그리고 잠시 후 하늘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라고 물으셨다.
우리 부부의 결혼서약 한두 해 전쯤 J께서는 사업을 시작하셨다. 그때쯤 자리를 잡기 시작해서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하늘을 올려다볼 기회가 없으셨다고 했다. 결혼 후 예기치 않은 여러 일들이 태풍보다 더한 자연재해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때 가족들을 찾아온 태풍은 우리 부부에게 시련의 시작이었던 거처럼 J부부 에게도 걸림돌이었으리라. 몸소 실천하며 갖은 노력으로 바탕을 더 탄탄히 하셨고 다행히도 지금은 사업가로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셨다. 지금부터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관계 맺기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관계 맺기에는 '가좌회'라는 중심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반적이라 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모습들이다. 결혼초에는 그 특별함 자체가 적응이 정말 힘들었으나 지금은 '가좌회'라는 모임이 주는 긍정적이며 넘치는 힘의 에너지를 좋아한다.
우리 가족은 해마다 여름휴가와 겨울 해돋이를 보러 동행했다. 모임은 결혼을 하면서 의무감처럼 우리와 함께 했었다. 때로는 결혼 생활에서의 큰 부담이었지만 간절하게 맘의 위로나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때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여행길 자체도 즐거웠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오글거리거나 익숙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대부분 여행 계획과 기획은 주체자이신 J께서 하셨다. 각 자리에서 사회를 도맡아 하시며 매 순간 즐거움을 끌어당겼다. '가좌회'의 가족들은 행복을 알고 행복이 정체되지 않게 나눔을 한다. 다음에 소개할 게임에 답이 있다. 한자리에 모였을 때는 주로 게임을 많이 하는데... 상품 또한 소소한 즐거움이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칭찬 릴레이'다
집안 어른들을 포함해서 참석자 전원이 돌아가며 평소 칭찬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칭찬과 고마움, 감사를 전하는 시간인데 가족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나 역시 처음 들었던 칭찬은 잊을 수가 없다. 어색했던 시댁과 그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결혼 초기에 외숙모님께서 해 주신 그 칭찬이 얼마나 감사하고 힘이 되었는지. 감춰진 갈등이나 상처의 순간들이 있었다면 서로에 대한 긍정적 감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시댁 외사촌까지 함께 모였으므로 모임의 규모가 꽤나 컸다. 앞서 잠시 언급했는데 모임의 명칭은 '가죄회'라고 칭하며 모든 분들이 모임 참석에 대단히 열정적이다.
가을 여행과 체육대회가 연간 행사 중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체육대회는 일부 기업에서나 있을 만큼 큰 규모로 진행이 되는데... 음식은 각 가정에서 맡아서 준비해오시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배려를 해 주신 덕분에 과일을 준비하거나 맘의 준비로 다른 봉사를 할 기회를 주신다. 준비체조부터 시작되고 경기는 청, 백(가족별) 대항으로 신발 양궁, 오리발 릴레이, 2인 3각, 큰 윷놀이, 사탕 or 과자 따먹기, 족구, 종이컵 이어쌓기, 줄다리기, 제기차기, 단체 줄넘기 등등... 무궁무진하다. 체육대회야 말로 아이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훌륭한 전통으로 기억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마무리되고 다시 체육대회가 개최되길 꿈꾸어본다.
명절에는 직계가족들만 모이나 아이들과 함께하니 그 인원도 만만치 않다. '설날'에는 가족들 간의 덕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살아온 삶의 대한 키워드와 앞으로 살아갈 삶을 주제로 서로에 대한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버님을 시작으로 나에 이르기까지 그 소중한 시간을 통해서 일 년을 돌아보며 긍정적인 키워드를 기억해내고 그것을 주제로 얘기하기도 하고 덕담으로 이어진다. 덕담을 깊이 나눈 후 잠시 쉬어가기 후에 게임이 진행된다. 게임별 상품이 걸려있으므로 그 각오 또한 절대 소극적일 수 없다. 맘의 각오는 경기에 임하는 국가 대표보다 더하다. 몸으로 말해요, 스피드 퀴즈, 지는 가위바위보, 369게임, 007 빵, 투호, 병뚜껑 멀리 보내기 등등...
이쯤 되면 J가 정말 궁금해지리라...
그 생각과 배려와 나눔이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지만 마음이 더 따뜻한 분이시다. 과거에 하늘을 보며 나눴던 대화에서 보여준 감성적 모습은 지나온 현실적 시간과 함께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것은 오랫동안 지켜온 대표의 이성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대체된다. 카리스마를 살짝 덮고 있는 재치와 순발력이 가끔 그를 더 빛내 주기도 했다.
그런 J도 마음의 움직임에는 반비례하고 실천의지에서 다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이 있었다. 사람은 긍정, 부정의 에너지 외에도 탄생과 함께 부여받은 능력이 있다. 자기 원형으로 때로는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가끔 외부의 영향으로 약해지기도 한다. 물론 학습과 노력으로 그것 또한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총량은 같다고 본다. J의 경우 가정에서는 사랑이 가득하지만 경험의 부족으로 실천 방법을 찾으며 방황하셨다. 물론 그 모습 또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함께 발전해 갔다. 지금은 가족들에게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을 분산시켜 나눔의 균형을 찾으셨고 열심히 실천하는 중이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사랑에 어떤 것이 큰 사랑이며 어떤 것이 작은 사랑일까? 대의를 목표로 한다고 큰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정에서의 사랑을 실천한다고 해서 작은 사랑이라 할 수도 없다. 그 누군가에게는 작은 사랑이 그것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사랑이 되기도 하니까. 앞의 사례에서 사람이 지니고 있는 능력 총량은 유지된다는 능력 총량의 법칙, 그리고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은 크기 비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큰'과 '작은'은 우리의 뇌가 인식할 수 있게 이해를 돕고자 하는 수식어일 뿐이다.
가끔은 가족들의 열정을 쫓아가기에는 지나치게 정적인 내 몸이 힘들어하고 흔들림을 두려워하는 영혼이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 년을 하루같이 지내려고 한다. 서로의 사랑으로 달리기를 즐기며 다음 주자를 따뜻하게 밀어줄 수 있는 칭찬 릴레이를 하고 있는 하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