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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Aug 11. 2023

 낯선 모습의 남편이 그곳에 있었다

진실보다 진실한 거짓_ 낯선 모습의 남편을 불렀다.

오전 5시 10분 배신감이 시작되었다... 낯선 모습의 남편이 그곳에 있었다.


주차장 끝 남편의 차에서 누군가 내리는 게 보였다.


숨을 헉헉거리며 겨우 멈춰 선 자리에서 2m도 안 되는 거리였다. 남편 차에만 라이트가 켜져 있었기에 멀리서 남편의 차를 찾는  어렵지는 않았다. 내 시선은 한 곳을 집중하고 있었다. 희미한 형체가 차에서 내리는 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확실해졌다. 남편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잠시 후 내렸다. 


나는 아직 헉헉대는 숨소리를 고르고 있다. 그 시간 남편을 급히 쫓아 나온 건 핸드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며 남편은 전에 없던 건망증이 심해졌다. 50대에 들어선다는 게 이렇게 요란할까 싶었다. 가끔 그의 기억도 바뀐다. 폰을  지니지 않고 출근한 게 여러 번 있었기에 남편이 문 밖에 섰을 때는 한결같이 같은 내용을 확인 체크해야 다. "다 잘 챙겼어요?" 핸드폰, 차키, 지갑, 가끔 미리 준비한 커피까지... 그의 건망증은 우리 부부에게 이제 익숙해졌다. 때로는 많은걸 나에게 의지하는 남편이 부담이 되고 답답하다. 하지만 가끔 가슴 한 곳이 멍하니 아프다. 세월에 시간에 나약해지는 그를 보고 있으그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지났으면 좋겠다는 희망까지 생긴다.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새벽 출근이었지만 그와 정답게 인사를 나눈 후 다시 누울까 공부방으로 몸을 움직일까 갈등하던 중에 충전기에 안전하게 꽂힌 핸드폰을 발견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금 나가면 주차장에서 남편을 바로 만날 수 있으리라. 얌전히 꽂힌 핸드폰을 챙겼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바로 뛰었다. 멀리서 불빛이 켜진 차는 한대뿐이었기에 남편의 차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부지런히 걸었다. 주차장 끝으로 걸어가며 차가 출발하지 않기만을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누군가 차에서 내리는 거 같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좀 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 형체가 점점 더 확실해진다. 주변으로 불빛도 살짝 보인다. 더 가까이 가니 뿜어내는 연기도 다. 겨우 숨을 고르며 멈췄다. 누가 보아도 남편이 확실했기에 그 거리에서 더 다가가지 않았다. 순간 두려움이 감정 전체를 지배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쿵쾅되는 심장을 잠시 잡고서 조용히 남편을 불렀다. "자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담배 피우는 중이에요? 언제부터..?" 화들짝 놀란 남편은 아... 응...? 음... 그러더니 담뱃불을 바로 껐다. 한 모금, 두 모금... 잘 모르겠다. 긴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곳엔 너무나 낯선 남자가 있었다. 15년을 넘게 만나지 못했던 낯선 남자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당황하며 대처하는 모습도.. 왜 갑자기, 그는 낯선 모습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걸까?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당혹스러운 이면에 남편을 향한 깊은 안쓰러움이 남아있다.


17세 딸아이가 아기였을 때, 남편은 선언했다. 담배를 끊고 쾌적한 환경을 가족과 아이에게 선물할 것을 약속했다. 온전히 스스로 한 것이다. 그리고 15년을 넘게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믿고 있었는데... 오늘 그곳에서 낯선 남편의 모습과 마주했다. 잘 모르는 사람처럼. 그곳에 있는 남편은 다른 사람인 거처럼 보였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해명하며 아니라고 하는 그의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할 일을 끝냈다고 생각하고 바로 몸을 돌렸다. 집에 들어와서도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그는 선언 이후 한 번도 오늘같이 낯선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재수 없게 오늘이 딱 한 번이었는데 아내와 마주쳤는지 모른다.

 

이제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낯선 그를 달래야 할지, 좀 더 관찰하며 일관되게 냉담함으로 대해야 할지. 고민 중에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여전히 복잡하다. 마음이 여전히 복잡한 건,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의 모습과 표정이 아닌 낯선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비참함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는 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로 살아간다는 건 힘든 부분이 많다. 고집스럽지만 아내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그를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그를 향한 아련한 마음이 나를 잡는다. 가슴을 울린다.

그의 삶을 생각하면 한 인간의 삶, 우리의 삶이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진실에 가려진 더 진실한 거짓. 가끔 진실한 거짓에 마음을 쏟아야겠다.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그와 내가 사는 세상, 서로 직임의 방향과 색깔은 다르지만 다채로움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오늘도 난!!



글 by무한소

그림 by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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