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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Aug 16. 2023

터졌다. 결국...

외면한 노화가 보내는 신호일까. 결국... 터졌다.


터졌다.


분주했던 그날 아침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통증의 강도는 점점 더했다.


119 구조원들이 도착하고 들것에 실려서 수동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들것에 실려서 가는 중에도 통증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때 이르게 찾아온 무더위와 습도 높은 여름을 타고 가을이 이미 들어와 버린 계절에 있다. 가을은 이미 여름 한가운데 들어왔다. 자기의 영역인 듯 여름을 조금씩 밀어낸다. 여전한 습도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벌써 언제의 일인지 잊힌 기억으로 아주 가끔 통증만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추억으로 기억되는 통증만느껴진다. 어느 해의 여름 날씨도, 나를 그토록 괴롭히지는 못했다. 아니 힘들어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는지 내 허리, 척추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힘들게 하는 횟수도 더 잦아지고 회복에 있어서는 점점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몸의 노화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있었던 걸까?

몸의 노화는 누구나 일관되게 일률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 또는 그동안 가장 혹사한 부분이 노화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제각각 다르게 눈의 노화, 소화기능이 약해지는 장의 노화, 피부의 노화, 관절의 노화등 수도 없는 노화가 곳곳에서 처음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노화의 시작인 첫걸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때론 심한 거부로 더 빠른 노화의 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터졌다.

허리 통증이 시작되었다. 응급실에 실려간 그날은 딸아이의 첫 생일을 두 달가량 남겨 두었을 때였다. 그날의 모든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침 준비로 분주했다. 겨울 방학 때라 수업 시간은 오전부터 짜여 있었다. 잘 울지 않고 무던하던 딸아이가 그날은 유독 칭얼거려서 업고 있었다. 아이를 업는 것에 재능이 없었던 나는 겨우 포대기를 어색하게 두르고 아침을 준비했다. 아이가 많이 칭얼대서 아무래도 병원을 들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수업이 계획되어 있던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업시간을 조절했다. 무사히 통화가 끝나고 전화기를 무심히 책꽂이에 놓으려던 순간 허리에서 뭔가 정상적이지 않는 찌르륵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온몸에 힘이 빠졌. 그 순간에 딸아이는 등에 업혀 있었다. 아이를 안전하게 등에서 내리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포대기를 아이를 받아주는 방패막이로 생각해 천천히 힘을 주며 바닥으로 내렸다. 뭔가 엄마가 평소와는 다름을 인지한 딸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어댄다. 아이를 무사히 내리고 허리에서부터 퍼지는 통증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 것이지만 신체의 어떤 것도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잡고 놓지 않았던 전화기가 다행히 나를 구해 주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움직일 수 없어서 같은 자세로 통증을 호소했다. 남편은 직접 119에 전화를 하겠다고 조금만 참으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통증의 강도는 점점 더 했다. 시간이 길어지며 1분이 1시간쯤으로 여겨졌다. 남편이 먼저 도착했고 자신을 잡을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 시도는 했으나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119 구조원들이 도착하고 들것에 실려서 수동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들것에 실려서 가는 중에도 통증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가장 근거리의 인제대 백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곳에 도착해서는 여러 생각이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온전히 회복에 집중하고 싶은데 병원의 응급실에서 해 주는 처방이라는 건 진통제와 근육 이완제를 링거로 맞게 해 줄 뿐이었다. 오후 4시가 되도록 여러 의사가 들락날락하며 한 번씩 상태를 확인하고 링거를 더 투여하는 게 다였다. 그때까지 차도는 거의 없었다. 긴 기다림 후 오후 5시가 다 되어서도 정상적으로 걷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휠체어에 의지해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남편의 보살핌을 받고서 겨우 차에 올랐다. 허리에 힘을 줄 수 없으니 서있기, 걷기가 전혀 안되었다. 남편은 집에 도착해서 나를 업고서 방까지 옮겼고 눕혀줬다.


오빠와 함께 놀이를 하고 있던 딸아이가 뒤뚱거리며 걸어온다. 그리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하고 사태를 살피기도 다. 아직 첫 생일도 겪지 않은 딸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허리가 망가져서 이젠 더 이상 이쁜 딸을 업거나 안아줄 수 없음을 설명했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몇 번 가슴 쪽으로 오더니 이내 포기한다. 착하게 더 이상 안아 달라고 보채지도 않았다.

이후 누워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하루면 가뿐히 일어 날것이라는 착각이 마음을 괴롭게 했다. 몸에 대해 스스로 미안해하며 앞으로는 내 몸을 가장 사랑하리라는 뒤늦은 다짐까지 해본다.


백병원 응급실을 다녀온 뒤로 스스로 걸어 다니려는 노력이 있었다. 맘에서는 노력이 벌써 시작되었지만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런 나를 업고 안고 남편은 정형외과며 한의원을 데리고 다녔다.


하나같이 디스크의 문제가 아니라 허리근육의 문제라는 진단을 받았다.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일어설 힘이 생겼다. 화장실에 혼자서 가는 것은 10여 일이 훨씬 지난 다음에야 가능해졌다. 그 영향으로 나는 먹을 것을 거부했고 몸은 갈수록 말라갔다. 남편은 지금 중요한 건 잘 먹고 허리 근육을 키우는 건데 오히려 반대로 하고 있는 나에게 큰소리를 내며 답답해했다.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가족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어느 누구도 건강한 맘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모두를 위해 다시 생각을 바꿔 긍정적으로 마음을 전환하며 음식에 욕심을 내봤다.

모든 것 생각에서 비롯된다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맘먹고 변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스스로 일어섰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임을 시작했다. 무려 20여 일을 누워서 보냈다. 아픔이라는 것 육체, 신체의 불편함을 딛고 정말 많은 생각과 갈등이 오갔다.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정신이 얼마만큼 큰 역할을 하는지. 정신과 육체는 따로 떼어낼 수도 없고 어떤 것이 앞선다고 할 수도 없다. 허리가 아프면서 기본적인 움직임이 힘드니 정신또한 무기력한 상태처럼 에너지가 사라졌다. 그렇게 나약해지는 정신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아들과 딸이었다. 존재만으로도 내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치료는 일상생활과 함께 지속되었다. 운동도 조금씩 해 나갔다. 두려움에 이제는 자세를 함부로 할 수도 신을 맘대로 신을 수도 없다. 그렇게 조심하다가도 조금만 긴장이 풀리면 언제고 다시 복병처럼 허리 상태에 문제가 생긴다. 그 후로는 해마다 계절을 번갈아가며 가벼운 요통을 넘어선 허리통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 횟수는 점점 잦아지고 살짝만 문제가 생겨도 하루 이틀 일어나기 힘들어졌다.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된 시기와 비슷한 시점부터 내 몸은 독소가 빠져나간 듯 피로감이 조금씩 줄었다. 허리 통증 또한 조금 덜 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통증과 피로가 조금 덜해지니 세상을 다 얻은 듯 지금 현재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감사합니다!"

라고 큰 소리로 떠들고 얘기할 만큼 몸의 리듬이 좋아졌다. 글쓰기를 통한 내면의 비움에서 시작된 것일까? 물론, 노화를 느낀다. 사람은 신체에 따라서 또 관리에 따라서 속도는 모두 다르겠지만 누구나 노화와 그 시작인 맴돌기를 반복하고 있다.


젊음에 대한 강한 집념은 오히려 우리를 집착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다. 나이 듦을 거부했다. 노화를 계속해서 거부하며  수용해야 하는 노화의 시작지나쳐왔다. 다시 착각 속에 살아간다. 과거 내가 몸에 범한 수많은 실수처럼. 노화의 시작인 아주 작은 몸의 신호를 가볍게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것을 지 않기. 적정한 때를 놓치지 않기. 자기, 타자 등 여러 함수 관계를 잘 대응시키기.

순간순간 놓치고 지나치는 시행착오는 여전하다. 아픔의 순간을 다시 겪게 될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런데도 가끔 잊고 무심코 지나친다. 스스로 각성하려는 다짐이나 좌표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을 옭아맬 '3기'를 정했다. 통증의 시간을 보낸 후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나만의 '3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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