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연무는 흉내 낼뿐이다. 희뿌옇고 가볍게 낀 비단 안개를. 자신이 뿜어내는 긴 호흡에서 시작된 숨으로 안구가 카메라에 필터를 거친 것처럼 내 시선을 통해 보이는 세상은 온통 뿌옇다. 겨울 서리가 내릴 만큼 급작스럽게 내려간 기온과 입김을 통해 뱉어진 숨이 적당히 타협하며 온도를 맞춘다. 한 해를 마무리하던 찰나 다른 해가 떠올랐다.
흐린 날씨 탓에 새해 떠오르는 해가 방해받았다. 떠오르는 해가 구름에 서너 번 가로막히며 기원과 희망적인 바람을 포기하려 했다. 접히지 않는 마음은 온몸으로 혼란스러운 세월을 흡수하며 부정적 색은 몸 전체로 퍼졌다. 딱 이틀 동안 사력을 다해 앓았다. 새로 뜨는 해와 함께 몸의 기운도 솟아나리라 믿고 있었다. 새로운 해에 맞춰 몸 에너지도 솟구치리라 기대했다.
아침이 고요했다
아침이 고요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다른 세계 안에서
느껴지는 한기.
그런데, 그건 이 세계 안의
공기였다
빛의 속도와 겨루기라도 하듯
시간은 배려가 없다
목요일에 만난 그녀들
목요 안에 만날 그녀들
소리 내어 환영하는 아침 인사가
눈물 나게 따뜻했다
오늘쯤이면 가능할까
상처가 더 깊어질까
오늘 나는
소리 내어 읽고 담고
농도 짙은 호흡으로
무게 실린 숨을 뱉어내리라
벌써 손끝 발끝이 시리다
마음은 낭만으로 무장한 듯
따뜻함이 넘친다
내친김에 마음을 전했다
지는 해에 더 기쁜 작별을 고했고
새로운 해에 의지하며 반갑다고
연무로 뿌연 세상이지만 떠오르던 해가 있는 좋은 아침이다. 사실은, 그 순간을 놓쳐 보지 못했지만 떠올랐던 해와 만날 수 있었던 아침이다. 떡국 한 그릇에 답답했던 목이 뻥 뚫리는 귀한 시간까지 선물로 전한 날이었다. 쓸쓸한 날에 느껴지는 설렘과 따뜻함, 누군가에게 건네는 아침인사가 그렇다.
누군가가 전해온 새해 인사가 그랬다.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에 다가간다.
멀리서 보이는 것처럼,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목요일의 그곳으로 간다. 멀리서 보아야 더 소중한, 지켜야 하는 약속이 존재한 그곳으로.
덧
지난 12월 29일 제주항공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을 마음 깊이 애도합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실 유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