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댁 큰 조카가 열기로 가득한 실내 공기를 바꿔보겠다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순간 조카의 환호성보다 내 시선에 들어온 건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눈이었다. 성근 눈이 내리며 하늘과 땅, 나무가 고급진 하얀 옷을 입었다. 화려함이 아닌 원초적 자연스러움이 고급이란 단어와 절묘하게 맞는 순간이었다. 눈(eye)이 번쩍 새로움을 발견한 순간이 나에게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형님의 생신을 맞이하여 '가족이라는 공간'의 모임이 판교 형님 댁에서 있었다. 형님께 가족의 마음을 소탈하게 전하고 싶었다. 나의 마음을 더 예쁘게 포장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곳에 존재해 있는 가족이라는 가상의 좌표, 공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형님'이라 부르면 내면 깊숙한 곳에 안식하던 감정, 포근이 서둘러 솟아오른다. 두터운 층을 두고 있던 따뜻함이 함께 오르며 편안히 자리했다. 방황하던 내 목표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고 우직하게 앞만 바라본다.
형님하고 부르면 소리의 울림은 성대를 통해 거뜬히 튀어나오며 다시 귀의 달팽이관을 통해 귀를 타고 들어가서 나에게 들려온다. 형님이라는 좌표, 맏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한다. 불편과 책임의 그 자리를 이해한다는 그 말은 섣부름이 들어간 오만함이 아닐까. 그 무게를 즐겁거나 행복으로 지켜온 건 형님의 큰마음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형님이라 부르면 사랑이 더 크게 샘솟아 오르는 느낌이다. 넘치는 그 맘을 떠올리며 형님 하고 다시 불러본다. 가족이라는 공간의 마음을 천천히 떠올리며 내 마음을 꺼냈다.
[가족이라는... 공간]
빛의 속도를 쫓으며
발을 맞춘다, 소리에
내게 닿은
찰나에 머물렀다, 시간에
살아감을 증명하듯
좌표들이 모였다, 공간에
기적이다!
성숙은 익어간다는 것
스며듦은 선명해진다는 것
햇살의 인내와
와인의 숙성으로
저녁을 꺼낼 수 있었다
나는 소멸을 거부한다
삶과 죽음이 닿아 있고
바벨론의 탑 꼭대기에서
더 높을 곳을 욕망하며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듯
실수와 허수의 세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분되지 않고, 맞닿은 서로에게
등을 대고 있을 뿐이다
다른 세계의
언어를, 삶을 알아가고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경청과 소통 안에
자리한 마음을
살피고 다독이며
크게 소리 내어 읽었다
소리의 울림은
심장에 닿아 빛으로
어렴풋한 환영을 그려낸다
형님이라 부르면
소리는 전율로 온몸을 타고
마음 전체로 퍼져 나간다
낭독의 울림, 소리
경청의 마음과 호흡으로
가득 찬 가족이라는 공간은
와인처럼 숙성한 시간을
처음 출발로 옮겨두었다
'가족이라는 좌표 공간'은
그들을 순서쌍으로 담고
평행이동 하며 근원으로 돌아간다
'가족이라는 시간 속의 공간'은
돌고 돌아 운명, 숙명처럼 전해진다.
나는 주어진 운명 속의
가족이라는 공간을
거부하지 않는다
상처와 아픔을 더 깊이 건드리고 잔인하게 드러내며 숨겨뒀던 슬픔을 꺼낸다. 묻어둔 감정을 사랑이란 말로 하나씩 치유한다. 깊은 호흡을 통해 '가족이라는 공간'에 들어갔다 나온다. 오늘도 나는 긍정의 감정도, 자유 의지도 그럼에도 결정되어 있는 하나인 미래를 숙명처럼 수용하고 다시 수없이 많은 과정을 겪고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