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고 있다는 증거
방학 특강이 있는 날이면, 12시 이전부터 학원 안에 묘한 기운이 돈다. 그게 생기인지, 긴장인지, 아니면 불안에 가까운 무기력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다만, 그날의 시간은 늘 더 빠르게 흐른다.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자 아이들이 한 명씩, 어슬렁거리듯 교실로 들어온다. 추위 때문인지 두꺼워진 옷 탓인지 아이들의 몸과 움직임은 평소보다 훨씬 둔하다.
12시 정각부터 이렇게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교실이 다 차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아침부터 계속 있던 두통이지만, 이성으로 겨우 눌러 얄팍한 인내를 삼키며 학원으로 향했다. 몸도 머리도 묵직했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붙잡은 건 이후의 일정에 대한 걱정이었다.
‘곧 시작될 수업을 갑작스러운 이유로 빠지겠다고 하면 어쩌지?’
‘태도나 배려 없이 자신의 사정만 내세우면 어쩌지?’
걱정이 늘 그렇듯, 현실보다 먼저 도착했다. 특강 시작 10분 전, 지금 막 일어났다는 연락, 배가 아파 약을 먹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 아무렇지 않게 늦는 아이들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일상은 시작되었다.
출석에 맞춰 수업을 시작하려다 여러 자리가 비어 있는 교실에서 결국 예정된 시간에 수업을 시작했다. 곳곳이 비어 있는 정사각형의 공간은
조금 허전하고, 조금 공허했다. 집중력이 있는 친구든 그렇지 않은 친구든 방학 내내 이 정사각형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불만처럼 느껴진다.
의지와 에너지가 빠져 있는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과연 꿈을 꾸고, 목표를 바라볼 수 있을까. 일상이 계획적인 아이들은 자기 시간도 비교적 잘 관리하며 보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작은 정사각형 안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걸까.
아이들의 숨이 이 공간에 쌓여 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쉬는 숨, 뱉어내는 호흡이 더 이상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나는 그 계산 너머에 숨어 있는 각자의 꿈과 목표, 그 이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사각형의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문제를 풀고 있지만, 실은 각자의 시간과 리듬으로 자신의 세계를 버텨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문제의 정답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머뭇거림과 멈칫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계산 과정의 흔적들이었다.
그 안에는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각자의 꿈과 목표, 혹은 뭔지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섞여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가르치거나 재촉하기보다 잠시 다른 욕심 없이 바라보고 싶어졌다. 정답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 이전에, 자기만의 속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유이자,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