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놓다
"전송!!" 보냈다.
시험과 글을 양손에 쥐고서 어쩔 줄 모르고 무게 재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기분이 묘하다. 방학 내내 처진 어깨,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한층 더 내려간 어깨를 뒤척... 움직이며 매일 같은 시간에 등원하는 학생들도 같은 감정일까. 뭔가 평가받고, 체크받는 그런 기분일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파일을 첨부하고, 제목을 확인하고, 받는 사람을 다시 읽고, 몇 번이고 점검한 후에 마침내 ‘보내기’를 눌렀다. 그럼에도 떨린다. 마지막까지 애썼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 특별한 순간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크고 작은 변화가 무기력한 듯 느껴지는 순간 일상이 자신이 일상이라 우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상과는 다른 A, B, C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사실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일을 전송하기 전의 시간과 다를 것 없이 세상은 조용했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심리적 변화인지 내 심장만 유난히 크게 뛰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임박해서 막 들어온 학생들의 눈빛에 집중해 보았다. 그 아이들의 표정에도 일상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마치 방학이 끝날 것 같지 않았으나 방학이 곧 끝난다. 2월은 유난히 짧게 느껴진다. 2월을 빠르게 걷고 있는 아이들의 방학도 곧 끝난다.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누군가의 배려가 누구에게는 친절로 닿지 않고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쫓기는 누군가에게는 가슴 뛰거나 궁지에 몰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내게 부족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사주 명리에 '금'이라는 단단한 쇠의 끊고 맺음, 정직하고 명료한 결과가 없다 해도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사이사이 부족한 내 문장들이 자꾸 떠올랐다. 후회되는 말과 문장들, 왜 그곳에서 거길 더 밀어붙이지 않았을까. 왜 마지막을 조금 더 날것에 두지 않았을까. 왜 궁지에 몰려야만 조급해지는 걸까.
학생들의 시험기간이 떠올랐다. 그들은 결코 평소 미리미리 애써 정리하지 않는다. 항상 임박해서 몰려서 책임이라는 옷을 입으려 한다. 시험이라는 거, 테스트받는다는 게 그런 걸까. 결국, 궁지에 몰린 후 후회의 감정이 몰려온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사이버의 세상이라는 그곳에서의 편지 또는 메모, 파일은 떠났고 나는 여전히 여기 남았다. 보낸 뒤의 시간은 이상하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심리, 그들은 후회하나 다시 반복된 일상을 보낸다. 결과도 모르면서 이미 평가받는 기분이 든다. 학생들의 기분, 언제 한 번 그들의 입장에서 되짚어 본 적이 있을까. 그들의 마음을 다시 체크해 보려 한다.
그래도 알 것 같다. 보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더 작아졌을지 모른다. 내가 쥐고만 있었던, 붙잡고 있던 시간을 겨우 놓아주었다. 메일을 전송하며 내게 귀속된 시간을 놓아준다. 내가 귀속한 시간을 내려놓는다. 학생들의 시간을 자유라는 공간에 던져놓는다.
수업 후 학생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교실, 그 정막 속 에너지를 쫓아간다. 아이들이 매일 자신의 걸음을 차분히 걸어가듯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높게 그리고 멀리 와 있다. 그런 내 자리에서 작게나마 감사를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