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라는 말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잡히지 않는다." 생각이 깊어지니 자꾸 복잡해진다.
학원에서의 일상... 학생과 나 사이에는 가르침 외에 뭐가 문제일까. 그들... 학생 서로 간의 관계 문제, 성이 다른 친구에 대한 배려 없는 태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관계로 진행형으로 현재에 남을 문제인가. 그냥 이해의 수준으로 짚고 가야 할까?
그들 간의 관계가 수업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한 문제다. 잘잘못을 가리려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것. 사실, 남학생들 간의 소통은 나 역시 가끔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문득 수업이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공기의 흐름’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각자의 온도와 속도가 다르다. 누군가는 장난처럼 던진 말에 웃고, 누군가는 그 말이 뇌리에 오래 남는다. 같은 문장을 듣고도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수학 문제는 하나지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풀어내고, 누군가는 한 줄을 붙잡고 오래 머문다.
나는 늘 그 차이를 ‘실력’으로만 보려 했던 건 아닐까. 사실 더 어려운 건 문제 풀이가 아니라, 그들 사이의 거리였다. 가까운 듯 멀고, 아무렇지 않은 듯 예민한 그 경계. 나는 그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이해’라는 말은 편하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저절로 조심해지지는 않는다. 다르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배려가 자동으로 생기지도 않는다. 어쩌면 내가 가르쳐야 할 건 공식이 아니라 태도일지도 모른다.
정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인정하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수학에서는 전제가 바뀌면 답도 달라진다. 범위 안에서 유도하는 답이 달라진다.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서로를 ‘같은 존재’로 두는 전제를 내려놓으면, 조금은 다른 답이 나오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그래서 오늘 다시 묻는다.
가르친다는 것은 어디까지이고, 함께 있음은 어디서부터 인지. 배움에서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었던 걸까.
단지, 수학의 문제 풀이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존재가 한 공간에 머물며 다른 시간을 사는 법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