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인다는 단단함
주말 저녁, 간만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자주 묻게 된다.
"나는 왜 멈추지 못할까."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일은 언제나 좋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중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일이 그렇다. 내게 일은 항상 그랬다.
하나의 일을 끝내면 잠시 쉬는 대신 다음 일을 찾아 나선다. 어느새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채우고 있다.
기다리던 자유 시간조차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책을 읽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책을 읽었다.
그렇게 흘러가던 소중한 시간이 문득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정말 나의 시간, 내가 누릴 시간은... 그 시간들은 정말 있었던 걸까.
토요일 밤, 나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간만의 자유가 나를 밖으로 불러낸 것 같았다.
꽃샘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었다. 향기와 바람에 기분 좋은 취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학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폰 화면에 ‘○○학원 원장님’이라는 발신자가 떠 있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전화를 받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조여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원장님의 말은 그 불안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지후가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해요. 선생님 수업은 계속 듣고 싶다고 하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돌려가며 하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학원에 와서 펑펑 울고 있어요. 선생님이 지후랑 한번 이야기 좀 나눠 보실 수 있을까요.”
지후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지후에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었다. 그들의 언어는 필터를 거치지 않는다. 마음이 나쁘거나 악의를 품어서 내뱉는 말이 아니다.
그저 지나가듯 내뱉는 소리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어떤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
지후에게 말했다.
네가 힘들다면 당분간 따로 수업을 해도 괜찮다고.
선생님이 조금 힘들더라도 그렇게 나눠서 수업해 보겠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혹시라도 화성에서 온 남자들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나에게 천천히 말해 달라고.
“이제 함께 수업해도 괜찮아요.”라고.
한 달쯤 지났을까.
금성에서 온 여자는 화성에서 온 남자들의 존재를
조금은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지후가 단단해졌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 안쪽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