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다 중요한 것들

정답을 요구하는 착각

by 무 한소

나의 세계는 요일에 따라 날짜에 따라 다른 시간을 보내며 공간을 이동한다. 학원에 머무른 날이면 특별히 다른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 어느 날보다 변화 없이 무기력한 일상을 보낸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하루가 빠르다.


이제 3월인데... 벌써 시험 대비를 해야 한다니. 숨이 차다. 느슨한 밀도에 깊이를 추가해 즐겁게 공부하길 바라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호흡이 가쁘다.


지난 수업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레벨 별 문제를 뽑는다. 수업 전에 있을 테스트를 위해 만든 문제들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아이들은 이미 1시간을 온전히 투자, 집중하여 문제를 풀었으리라. 즉시 전달받은 결과는 이해하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 도대체 레벨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이들 별 레벨을 가장 잘 파악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수업 전 그 결과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심장과 머리를 괴롭혔다. 심장은 평소의 1.5배는 빠르게 뛰었고, 뇌는 평소 느낄 수도 없었던 통증이 지휘를 하듯 진동적으로 아프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벌써 큰일을 치른 듯 상기된 얼굴 또는 이미 지쳐서 무기력한 다채로운 표정으로 경계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통해 구분된 경계가 보인다. 자유에서 구속된 구역인 것처럼 그들이 들어온 통로가 답답하게 보였다.


수업 시간 교과서와 쌍둥이 문제, 유사 문제를 레벨을 조절해 가며 뽑아서 지난 단원을 복습하고자 했다. 몇몇 친구들이 부탁, 아니 강하게 제안했다. "선생님 저 문제 푸는 동안에는 (무선) 이어폰을 이용해서 음악을 들어도 될까요?" "선생님, 저는 문제 풀려면 꼭 음악을 들어야 해요. 약속 지킬게요. 제발요. 음악 듣게 해 주세요." 처음에는 전혀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정한 규칙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까지 가두고 있었다. 결국, 꼭 약속을 지킬 것을 단호하게 전했다.


그러다, 마침내 사건이 벌어졌다. 대부분 친구들은 약속을 지켰으나 그러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불편한 내면을 참아가며 감추고 있었다. 내면을 숨긴다는 게 힘들었다. 아이를 불렀다. 불리는 것 자체가 이미 아이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지금 뭘 잘못했으며 무슨 노력을 해야 하고 함께 수업을 하는 친구들이나 교사인 내게 지켜야 할 약속과 예의에 대해 다시 반복적으로 전해야 했다.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분명 잘못된 일이었지만, 그 아이의 태도보다 먼저 떠오른 건
‘왜 지키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왜 나를 힘들게 가두고 있었을까’였다. 그 질문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통제하려 하고 있었을까. 수업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집중을 요구했고 그 집중의 방식까지 내가 정해버리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문제를 푸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버티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서, 집에서, 그리고 이곳 학원에서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문제를 풀고, 틀리고, 다시 풀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숨 쉴 틈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의 수업에서 과연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조금이라도 즐겁게 했던 사람은. 그리고 가장 많이 버틴 사람은 누구였을까. 나는 여전히 그 답을 잘 모른다. 다만,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시간만큼이나 자신을 잃지 않고 지킬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건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역할일지도 모른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