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라는 이름의 선택

야앵에서 직면한 마음

by 무 한소

"답답하다."


주중 쌓인 긴장감은 주말에도 밀려 있는 수업 탓인지 여전했다. 다만, 주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묘한 자유가 경직된 근육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준다. 그렇다고 온전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도, 긴장도가 완전히 풀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일요일 오전, 수업 사이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학원 원장님의 전화였다.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과한 부정의 감정인지, 당연한 건지. 몇 초간의 갈등 끝에 전화를 받았다. 의논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잠깐이었지만, 그 찰나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생각해 온 교육은 학원과 너무 다른 방향에 있는 건 아닐까.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었다.


요즘 들어, 학원이라는 곳이 얼마나 민감하고
즉각적인 반응과 피드백을 요구하는지 실감한다.
깊고 넓게 보기보다 얕고 즉각적인 반응과 성과가 요구되는 곳.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가 드러나지 않으면 그 방향은 대부분 실패로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이미 부정의 감정이 먼저 앞섰다.


내가 거부하고 불편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관계, 연결, 그리고 내가 지켜온 태도. 통화를 마친 뒤, 잠시지만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수업 사이사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 나를 건드렸다.
그리고 결국, 염려했던 일이 터졌다. 터져 나온 한숨에는 진심으로 답답한 감정이 있었다.


분반.
아이들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그들의 시간을 감싸 안으려 했던 선택이 문제였을까.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그 진실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결국, 나는 적당히 내려놓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마음을 쏟아도 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고. 내가 모든 것을 쥐고 있어야 하고,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제 조금은 벗어나 보기로 했다.


학원은 관리자(원장)와 시스템, 교사, 학생, 학부모... 이곳은 여러 입장이 겹쳐 있는 공간이다.
각자의 말과 마음이 뒤섞여 있는 곳. 그 안에서, 이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비록 최고로 잘한 결정은 아니더라도 최선의 선택은 될 수 있으리라.


만개한 벚꽃을 보며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야앵'... 활짝 핀 미소에 반짝이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간이 담겨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