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의 깊이보다 큰 기울기의 소명

정체되지 않은 감정으로 지혜의 숲에서 노닐다

by 무 한소

일흔에는

_지혜의 숲에서 책과 노닐다


가벼운 차림을 하고 꼿꼿하게 앉아 있는 그녀는 적당히 마르고 안경을 살짝 걸쳐 쓰고 나이를, 아니 연세를 짐작할 수 없는 깔끔하고 귀여운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꼭 다문 입은 고집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녀의 의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경 너머 앉아 있는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듯한 눈빛에서 인자하고 따뜻한 마음이 묻어난다.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 카페 같기도 하고 도서관 같기도 하고 서점처럼 보이는 요소들도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곳곳에 책이 있고 질서 있게 4~6인용 테이블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화를 이루는 원형의 테이블들도 보인다. 커피를 내리는 에스프레소기 옆에 카운터가 보이고 카운터와 가까운 곳에 꾸미는 블랙 보드가 있다. 보드 위를 자세히 보니 특강이라고 쓰여있다. 독서 토론이라는 단어도 얼핏 보인다. 잠시, 시선을 돌려 전체를 보려다 카페 정면에서 위쪽으로 옮겨진 시선 끝에 '서 유 당'이라고 쓰인 크고 진한 단어가 있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서 유 당'은 오래전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책과 노니는 집]에 등장하는 책이 가득한 장소다. 종교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잠시나마 사유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는 처한 현실에서 다른 세상으로의 꿈을 꿀 수 있었다. 이후 다시 그 책을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토론에서 만나게 된다. 토론 이후 그녀는 날마다 '책과 노니는 집'과 '서 유 당'을 되뇌며 상상 속의 서유당을 그려왔으며 소명을 찾아 에너지의 방향대로 삶 속에서 실행으로 옮기는 중이다.




잠시 후 좀 전의 꼿꼿한 그 여인이 앉아 있던 장소로 다시 자리를 옮겨가니 그곳은 지혜의 숲 1관을 연상케 하는 듯 천장이 매우 높고 사방이 통창으로 환하게 트여있다. 그리고 주변은 아무래도 좀 조용하고 한적한 듯 느껴진다. 다시 확인하니 일부인 듯 보이지만 부에서 느껴지는 공기와 이루는 습도가 숲과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은 누구누구의 기증, 어느 단체의 기증이라고도 씌어있다. 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 여러 분야에 이르기까지 분류작업을 다 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싶으면서도 뿌듯해진다. 연신 뛰고 있는 심장을 누르며 한편으로는 정말 그녀가 운영하는 것일까?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간절함을 담아 그곳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소명을 위해 결국 그녀가 그와 같은 방향으로 간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옆에 또 다른 문이 보인다. 다른 새로운 공간이 있는 것 같아서 자리를 잠시 그곳으로 옮겨간다. 그 공간은 좀 전과 닮은 듯 보이지만 전체를 다시 보니 그렇지 않다.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보이는 곳은 통창으로 되어있으며 큰 강의를 할 수 있는 오픈된 공간도 보인다. 다섯 여 개쯤의 룸도 보인다. 그녀는 이곳에서 정말 자신의 소명대로 70세를 보내고 있는 걸까? 소명을 다하며 그 과정을 걷고 있는 걸까? 아마도 아까 꼭 다문 입으로 의지와 고집을 전달한 그분을 찾아야 확인이 가능할 거 같다.


그분을 찾아 다시 시선을 움직인다. 이미 자리를 옮겨서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곳과 조금 떨어져 있는 큰 원형의 테이블에 여러분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그분이 신중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하고 웃음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깊이를 보니 토론인 거 같은데 모두의 표정들이 분위기를 대신해 준다. 얼마쯤 나이가 있는 그분들의 토론은 일반적으로 생각한 토론보다 분위기를 더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깊이 때문일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서일까? 그곳에서 함께한 그분들은 모두 각각의 색깔들을 강하게 풍기면서도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외모처럼 그 모습들이 익숙하다. 알고 지낸 지인들처럼 보인다. 가까이에서 보니 알고 있는 작가님들이다. 시간이 흘러 외모가 변했어도 분위기의 색깔은 그대로다. 심장이 요동치며 감정을 앞세우지 않도록 잡아주느라 몹시 힘이 들었다.




70세의 내가 전달하는 얘기를 모두 흡수하려는 듯 그곳에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소리에 집중했다.

“나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그동안 생각해 왔던 내 소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앞으로의 나의 꿈이고 사명이라 생각하고 지켜 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작게나마 이곳에 [책과 노니는 집]을 본 따 제2의 지혜의 숲을 건립한 것이고 나의 소명을 계속하여 쭉 펼쳐 나갈 것입니다. 깨달음과 아름다움을 알기 이전에 삶에서 여러 가지를 체념하고 포기하는 여러 학생, 청년 다시 말해 배움을 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우리의 사랑으로 시작된 지혜를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그 출발은 지식에서 시작하지만 과정에서 지혜를 찾고 배움을 제대로 한다면 사랑의 마음도 전달되고 흡수되리라 믿습니다.”

작가님들께 이곳의 설립 의의와 나의 소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긍정적 취지에 있는 과정들을 함께 겪어나 갈 분들을 설득하는 거처럼 보인다. 물론 지금은 우리들이 시작이고 전국 곳곳에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더 많은 작가님들이 함께 동참해주길 원하는 맘도 내비친다.


더 깊숙이 그녀의 삶을 샅샅이 파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녀의 얼굴에 비친 잔잔한 미소가 어떻게 현재를 살고 있는지 지금의 마음은 어떤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글쓰기와 인연을 시작한 어느 날 자신은 현재를 매일 설레는 아침을 맞이하며 하루가 궁금하다고 했던 그 현재를 70세가 된 지금도 잘 지켜나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