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중력

무질서한 자연의 경고

by 무 한소

주말이지만 마음이 안절부절 바쁘다. 주중에 글을 한편도 올리지 못했고 떠오르는 생각의 키워드나 끄적끄적 써둔 글들을 다시 정리해야 하며 수업준비도 있다. 표현은 안절부절이지만 적당히 자연을 둘러보고 습관처럼 변화를 살피고 있다.


새벽 시간에 분 강한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 하늘은 맑음과 함께 떠올라야 하는 태양이 구름 뒤에서 오묘하게 떠 오른 듯 아닌 듯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리고 석양과는 전혀 다른 빛깔로 내 감정에 새롭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현상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가는 순간, 그 빛깔은 완전히 사라지고 먹구름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하늘은 금세 잿빛으로 물들었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곧 많은 비를 뿌릴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을 해야 할 일에 대한 의무감으로 달랬다. 그래서 창문을 닫고 다시 일상에 집중한다.


주변을 정리하고 수업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존경하는 수학자 스피노자가 손등을 톡톡 친다. 어쩔 수 없는 그의 부름을 받아들여 그의 이상에 푹 빠져 있을 때 현실에서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아침 시간의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수업을 가야만 했다.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거처럼 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그 시간만 해도 비는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비였다. 식사 후 남편이 캡슐 커피를 내려서 슬쩍 앞으로 가져다 놓는 게 아닌가. 감사한 맘에 눈빛에 미소를 담아서 사랑스러운 인사를 던져본다. 남편은 은근히 좋았는지 평소에도 자꾸 하라며 이를 보이며 웃었다.


커피와 우산을 챙겨서 서둘러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비가 내리는 양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쏟아지는 비의 양과 그리고 빗줄기의 굵기, 거기다 내리는 속력, 바람에 의해 비가 내리는 기울기까지도 모두 나를 공경스럽게 한다고 생각했다. 핸드폰과 다이어리, 필통은 가방에 넣고 그다음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꽉 붙잡았다. 그리고 우산을 펴서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주어 중심을 잡았다. 어이없지만 차를 타기까지도 시간은 물론이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내가 처한 환경, 순간에 온통 집중을 하려고 다. 준비와 노력은 선택의 문제지만 순간에 집중하는 것은 결코 피해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비록 프레임 안이지만 자유로 나아가는 처음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를 탔다. 시동을 걸고 와이퍼는 규칙적이고 조금 빠른 빠르기로 움직이게 했으며 라디오를 켜고 출발했다. 비 소식이 궁금해서 라디오 소리에 집중하면서 자동차를 천천히 움직이는데 빗소리가 점점 강해졌다. 마치 나에게 자연의 영역에 감히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는 거처럼 점점 거세게 내리쳤다. 와이퍼를 좀 더 빠른 빠르기로 조절해야만 겨우 앞이 보였다. 20년째 운전을 하지만 위험을 감지한 이런 날은 잔뜩 긴장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폭우 수준으로 비가 거세게 쏟아질 때 라디오에서 <비와 당신>이라는 ‘이 무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과거에 다른 가수들이 불렀을 때 보다 오늘의 내 감성을 최고로 끌어올려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했다.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신비한 체험이 시작되었다.


노래에 집중하는 순간 자동차 외부로 보이는 모든 환경이 무중력 상태에서 그 무엇의 움직임도 불규칙적으로 보였고 내가 있는 공간과 철저하게 분리된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흐르는 음악과 전해오는 가사에 지나치게 이입이 되어 있을 때, 자동차 외부에서는 불규칙적으로 비가 내렸고 자동차들이 지나간 길은 물보라가 일었다. 곳곳에 비상등을 켜 둔 자동차들의 세상과는 다르게 나의 세상에서만 중력이 존재하고 질서가 있는 거처럼 느껴졌다. 순간 누리고 있는 편안한 감정까지도 다른 세상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는 ‘비와 당신 사이 거리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당신이 있는 공간에서는 나의 공간에서의 중력이 왜 사라졌을까?', ‘서로의 속력은 어떻게 될까?’, ‘전달하는 나의 마음의 농도는 얼마일까?’, ‘무중력과 중력의 공간에서의 질서는 각각 일정할까?’ 이성이 지배하는 많은 생각 속에서도 감성은 폭발하고 있는지 쏟아지는 눈물은 수열에서의 규칙성이 그대로 드러나듯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는 끝나간다. 노래가 끝나자 자동차 안과 밖의 세상은 다시 서로의 세상을 닮아가고 있었다.


모호한 경험 속에서 중력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지구가 가진 능력, 힘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그 힘을 지구의 능력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감사한 맘을 가져보지도 않았다. 이러한 경험이 다시 나를 일깨워 준다. 질서와 무질서한 세상.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규칙이 나온다. 자유로움도 질서라는 틀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의 경험으로 깨닫게 된 자동차 외부의 무중력의 상태는 우리 모두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자연의 강한 외침 같았다. 중력 안의 세상에서 살게 해 준 지구를 더욱 사랑하게 된 시간이었다. 오늘의 신비한 경험들로 지구가 주는 베풂에 대해 감사의 시간을 가져본다. 지금이 바로 이런 고마운 지구가 울지 않고 위험하지 않게 우리의 사랑과 노력이 다시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