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고 있는 정체되어 있는

공존 모색

by 무 한소


2021년은 출발 이후에 속도를 조금씩 내며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지더니 벌써 9월 속에 흠뻑 빠져 있다. 9월 역시 빠르게 속도를 더하여 우리들의 생활, 시간 속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바이러스와 함께 지낸 지난 1년 반을 넘어선 시간들을 제대로 매듭짓지도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시간을 넘어서려고 한다. 뭔가 확실한 합리적 상황이 요구된다. 그런 결과에 따라 지금의 사회 안에서 우리의 선택은 '위드 코로나'라는 모순적 합성어인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지금 우리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선택한 결정으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위드 코로나'를 노래하며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우리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바이러스로 인해서 처음에는 놀랐고 두려웠으며 당황하고 방황함에 이어 망연자실했다.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극복의 노력과 의지로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현실의 무기력함과 권태로움이 이어졌다. 긴 연애 과정을 겪고 있는 남녀 커플의 사랑 이야기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었다.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후에는 무덤덤해지고 서로에게 무감각해진다. 지구 안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의 꺼져감을 받아들이는 것도 뉴스 속에 등장하는 일상의 아주 사소한 브리핑쯤으로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 누적 집계된 사망자의 통계가 더 이상 눈과 귀를 자극하지 않았다. 그냥 일상의 가벼운 일과처럼 느껴졌다. 두려움으로 인해 처음의 조심스러웠던 대비가 불편할 뿐이다.


종식될 것이라고 믿었던 코로나가 이제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 겪어 나가야 할 일부가 되어 버렸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과학이 더 발달됨에 비례해서 좀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것이고 대비해야 할 것 또한 증가할 것이다. 우리의 신체가 바이러스의 진화나 과학의 발전만큼 빠르게 적응해 나갈까라는 부정적인 맘도 함께했다. 과거부터 바이러스와 인류의 공존은 쭉 이어져 왔으며 관계가 진화하면서 앞으로 공존이라고 여기며 쓰는 단어 역시도 과연 맞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과 연계해서 요즘 관계가 아닌 생각의 단절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생각의 단절은 죽음이라고 단정 지어 본다. 삶과 사유의 가늘고 긴 끈 사이에서 어떠한 생각이라도 덧 입히기 또는 차이나는 생각 등 뇌가 움직이는 순간은 누가 뭐래도 연결된 고리로 즐겁고 행복하며 때로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것은 살아있고 존재하기에 가질 수 있는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혜인 셈이다. 선물!! 그래서 그 선물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맘껏 누리려고 한다. 선물을 받고서 집 창고나 장롱, 다용도실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충분히 활용해서 쓰려고 한다.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가 한계이며 가능한지 쓰고 읽으며 풀고 호기로움이 더해지니 마음을 든든하고 뿌듯하게 해 준다. 그렇게 내게 온 뿌듯함을 아침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듯 내 몸에 전달되는 에너지로 생각하고 그 에너지가 움직이는 방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에 침투되어서 쉽게 '공존'이라는 단어를 써 가며 지금의 상황을 모색, 합리화 하지만 실상은 지치고 무기력함에서 전달되는 에너지를 느낄 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관심이나 두려움이 아닌 생각의 단절이 에너지로 전달된다.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지 정체되어 있는지는 흐름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스며들어서 새로운 변화의 에너지로 발전되는 것이 아닌 스며들어서 우리에게 녹아버린 상태 그대로의 정체를 경험한다. 정체된다는 건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공간 안에서 머물러 있는 현상, 상태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조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시적 정체 상태 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현재 지구가 겪고 있는 아픔이나 내가 겪고 있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도 더 이상의 서두름은 없지만 결코 정체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원거리에서 거시적 측면으로 보면 정체된 상태처럼 보이지만 근거리에서 미시적 측면으로 살펴보면 미세하게 요동치는 움직임이 보인다. 끊임없이 나를 찾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과 마주한다.


바이러스와 인류가 공존하는 것은 나의 생각과 나를 찾아가는 움직임이 비록 정체되어 있는 거처럼 보이지만 움직이고 있고 움직이고 있는 거처럼 보이지만 정체되어 있는 그것과도 같다. 정체되어 있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자기'와 마주하기에서 '자기 찾기'의 과정은 아주 천천히 멈춤과 나아감을 번갈아 하며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마치 움직이고 있는 거처럼 정체되어 있는 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