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안의 익어감

삶의 (질량과 부피, 밀도) 요소

by 무 한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물리적 양적인 부유함이 가득 차 있음과는 또 다른 든든함을 담고 있다. 경험의 시행착오에서 오는 익숙함과 함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온다. 나이를 먹는 것의 가장 큰 이점이 원숙함이라 한다면 무기력함이라고 하는 단점이 요즘 나를 많이 힘들게 한다. 오늘도 고민으로 뒤척이다 결국 일어났다. 책꽂이에서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열정 가득하던 어느 해의 순간을 떠올리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본다.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고 무엇보다 귀하다. 정신은 더 맑아지기를 고대하며 당분간은 지금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세 사람의 친구가 길을 걷고 있을 때 그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고 하였던가? 어제 잠시 만난 J언니의 말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다. 어느 산사에서 생활하는 비구니가 잡초를 뽑던 일손을 멈추지 않고 인간과 자신의 맘을 빗대어 말씀하시길 우리 맘엔 수도 없이 많고 끝이 없이 나오는 잡초가 있는데 그걸 제거하면 일시적으로는 깨끗해진 듯 보이지만 어느 날 잠시 소홀히 지나가면 잡초가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올라온다고 했다. 그때의 잡초는 그곳이 자신의 자리인 듯 더 떳떳하고 강하게 버티고 있다고 했다.


시기, 질투, 욕심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다스리고 뽑아내어도 인간의 마음은 거름이 적당한 밭이기에 다시 잡초로 가득해진다. 뽑고 또 뽑아내어 조금 깨끗 해지자 주변을 돌아보며 안도하기에는 삶은 지나치게 긴 여정이며 잠시 소홀해진 틈을 비집고 나온 잡초를 보고 있노라면 삶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목표가 무엇이든 그 목표를 위해 숨 돌릴 여유조차 없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잠시 쉬어가라고 크나큰 시련을 겪게 하였고 원치 않아도 내게 주어진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적당한 거리에서 안정된 꿈을 꾼다. 또한 지금 나에게 닥친 나이를 이제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됨'보다는 '안 됨'과 어울리는 것들이 더 생명력 있게 자리를 하는 것은 아닐까? 잡초가 끊임없이 나오고 자라는 원인을 파악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상황을 대처하던 중에 수양을 목표로 하는 비구니의 맘을 잠시나마 동경해 봤다.


부모님을 뵙고 오는 길에는 습관처럼 삶을 돌아보게 된다. 늙어 간다는 건 시간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지 않을 경이로운 익어감이요. 이중적 잣대에서 본다면 사회 소외계층으로 쓸쓸함을 안고 살아가는 고독함이요. 아마도 그래서 과거는 더 화려했고 건강했고 찬란했다고 누구나 자신의 과거에는 아름답게 존재하곤 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항상 열정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기력함과 생활 곳곳에 두려움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이를 제대로 먹는다는 건 육체 안의 나의 시선과 감정적인 부분에서의 바른 영양섭취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삶은 바른 영양섭취로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흡수하고 흡수된 영양소가 몸 곳곳을 이동해서 제대로 익어감으로 녹아난다.


설거지를 하다가 저녁을 준비하려는 급한 맘에 강낭콩을 넣어 밥을 하려고 쌀과 콩을 함께 씻는다. 열심히 쌀과 콩을 씻으며 위에 둥둥 떠 오른 강낭콩과 바닥에 가라앉은 강낭콩과 쌀을 보며 밀도와 질량과 부피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쌀과 콩처럼 크기, 부피가 다른 두 물체는 질량(무게)이 같은지를 비교해 봤다. 질량이 같을 때는 부피가 더 큰 것은 밀도가 작으므로 물 위로 떠 오른다. 강낭콩 중에 속이 비어 있는 거처럼. 또, 부피가 같은 물질은 질량이 큰 것이 밀도가 크므로 질량이 더 큰 것은 가라앉는다.


삶을 살아갈 때와 글쓰기를 할 때 밀도를 비유해서 생각해보니 진실한 삶과 거기에 따르는 글쓰기가 제대로 보였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쌀을 씻으며 과연 이런 생각을 어디까지 할 수 있었을까? 그러한 호기로움을 삶과 연관 지어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뿌듯해진다. 뿌듯함이 행복으로 이어진다.


매일의 꾸준함으로 단단한 글쓰기의 중요성과 밀도가 같음이 보인다. 쌀을 씻으면서 깨우친 오늘의 교훈이다. 부피가 크다고 한들 단단하지 않은 글쓰기는 허울이라는 지적을 해줬다. 부피가 같은 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그것이 아무리 같아 보여도 단단함이 주는 완벽함에서 다시 한번 꾸준하고 두터운 노력을 강조한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그게 바로 익어감이라고 생각해 봤다. 삶을 살아가면서 고독은 피해 갈 수 없지만 익어감에서 삶 속의 진정한 나를 찾듯 고독은 그 과정에서 내가 즐기고 아껴야 할 인생의 요소일 뿐이다. 익어감에는 많은 것이 속해있다. 삶의 과정의 부분집합 안에 익어감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면 고독은 익어감 안에 들어있는 원소일 뿐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멋지게 즐기자. 삶을 채워 나가는 과정이 더 견고하고 단단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