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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Apr 27. 2022

존재함에 대하여

감추어진 존재와 돋보이는 관계

긴 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그의 갇힌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려, 그를 내 사고의 확장 범위 안에 끌어들이지 않으려 침묵한다.


존재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보편적 견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존재함은 역량을 발휘할수록 더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지만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다. 그것은 사람의 성향이나 타고난 환경에 따라 서로가 다르며 때로는 삶 속에서 자신만의 것이라 여겼던 소유권조차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들곤 한다.




리액션과 소리가 커야 존재감이 있는 걸까? 큰 소리로 전달해야만 타자가 인정하 상대나 제삼자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걸까? 과학이나 문명의 발달과는 달리 쳐진듯한 의식의 단계는 발전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발전하는 세계와 속도를 맞춰 우리는 각자 자신의 도덕성이나 배려가 함께 성장하고 의식 또한 발전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물론 비율 좋게 함께 성장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 처음에는 확실했던 명분이 가려지고 가치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우선 감정에 휘둘리면서 시작된다. 감정에 휘둘려 실컷 큰 소리를 뱉어가며  싸우고 있는데 최고의 감정에 다다르고서야 깨닫게 된다. 그들은 왜 싸우고 있는지 그 순간 싸움의 이유와 명분은 이미 사라졌고 목표는 변해버렸다. 그냥 말 그대로 싸움의 당사자들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소음으 벌어진 간격을 사이에 두고 강하게 울려 퍼지고 존재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선거가 있을 때 그리고 대선을 앞둔 토론회에서도 주로 볼 수 있는 광경다. 표현이 거칠어지며 소리도 점점 강해진다. 또한 주변에서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럼,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점점 큰 소리로 떠들 것이며 그것도 급력이나  집중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젠 무력으로 해야만 할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주변에서는 그 누구도 왜 어째서 그 싸움이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때는 그건 중요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에서도 이미 벗어나 버렸다. 그 시간 그들이 함께 나누었던 큰 소리와 동작들은 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해 뱉어낸 소리와 격한 몸동작만으로 기억되는 싸움의 사건 현장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영문을 알지 못하는 행인이라면 늦은 밤 큰 소리가 들리는 현장을 그저 비난하고 벗어나고 싶어 할 것이다. 부정적 사고로 자연스럽게 저장된 그들의 기억에서 조차도 큰 소리와 격한 동작만이 기억될 뿐이다. 내용 자체가 기억나는 싸움은 어디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로 이루어진 관계 어디서나 그 원칙은 성립된다. 나와 타자, 나와 다수의 타자들이 존재하는 곳 어디에서든. 부부간, 부모와 자식 간, 시댁과 나, 처가와 나, 이웃, 얽혀있는 나와 타자...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오해와 갈등은 생길 수도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고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과정 속에는 모범적인 타자나 주변인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득 시간이 흐를수록 누구보다도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며 아직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시대의 보편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놀라운 건 정상적인 거처럼 보이는 그들이  의심스러울 만큼 많다는 것이다.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수용하고 또 설득하고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 과정은 우리를 배움이 가장 맞닿는 곳으로 안내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하는 의식인지 두 사람 각각을 인격으로 인정한다는 증명과도 같은 건지 처음의 시작은 전자에 더 가까울 거라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해 본다. 명료한 증명을 하듯 두 사람은 결국 함께하게 된다.


 15~16세의 소녀가 그녀의 엄마와 다소 진지한 분위기로 대화를 하고 있다. "엄마 걱정 마, 나는 나를 대접해주고 최소한 자신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틀림없이 대화가 되는 사람과 결혼할 계획이니 두고 보라고." 엄마는 웃으시며 그래도 결혼을 꼭 하겠다고 얘기를 하는구나 하며 웃으셨다. 중학교쯤으로 기억한다. 볕이 좋은 봄날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와 공부를 하다 잠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지금의 모순적 상황을 부정하듯 떠오른다. 엄마의 삶이 참으로 고달프게 보였다. 엄마를 위로하는 건 내가 더 단단하다는 것을 보여 드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청소년 시기부터 아빠와는 상반된 가상의 인물을 계획적으로 만들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일찍부터 준비를 했는데 지금의 남편은 과연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으로 잘 만난 걸까?


하지만... 삶은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니면 단단하다고 믿고 있었던 닫힌 범주가 확장되어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의 여유가 생긴 걸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합리적 상황 몰아가기 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결정했고 후회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또한 내 삶의 구멍이 점점 커지지 않게 노력하는 중이다.




누구보다 더 감정적이고 쉽게 휘둘리는 사람을 만났다. 큰 소리와 리액션이 자신을 드러내는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가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먼저 표현하고 애쓰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정의 직선 위에 있는 그를 응원할 것이며 감정에 휘둘리고 내가 먼저 꺾이진 않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변화는 그와 나의 존재의 이유이고 모습이다.


지금의 변화는 관계에서 서로의 존재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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