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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Apr 21. 2022

경계에서의 '자연'

프레임 안과 밖



화창한, 너무나도 화창했던 일요일 오후였다. 이어서 지나치게 상쾌하고 적당히 가벼운 월요일 낮의 흩날리는 벚꽃잎까지... 바깥세상은 노랗고 핑크 핑크 한 꽃으로 장식된 찬란봄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봄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다해가고 있었다. 20여 일이라는 격리기간을 거쳐 의도된 관계의 거리까지 아주 뚜렷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사라진 시간이다. 그렇게 지워져 버린 기억은 철저하게 벌써 봄으로 접어든 계절과 단절되어 버렸다.




프레임을 통해서 보이는 바깥세상은 우리의 생각만큼 눈에 보이는 딱 그만큼의 크기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실제 그곳에 뛰어들어 체험했을 때 자신의 시각과 사고를 의심하게 된다. 프레임 안과 바깥의 거리에서는템포와 걸음 몇 폭이 항상 조금씩 차이나 있었다.


해마다 변화로 찾아오는 뚜렷한 사계절은 늘 그 자리에서 상처받은 감정과 아직 단단하지 못한 의지를 위로하며 감싸 안았다. 하지만 스스로 길들여진 감각은 그것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다. 매일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한다. 그것(새벽)은 당연하게 나를 귀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스스로 치열하게 아침을 정복하려고만 애써왔다. 진정한 자유로움에 열렬히 나를 맞아준 새벽에 대해 감사한 줄도 모르고. 그것을 의무로만 대해 왔었다. 매일 새벽 의무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시간 알람 소리와 주변의 소음에 의지하며 고요하고 맑은 새벽만의 고귀함을 파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누리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 취해야 할 건 단지 진정한 자유로움 그것뿐이었을까? 


존재하고 있는 세상에서의 독립 내가 지켜내고 있는 모든 자리와 계급 그것을 내려놓는다. 그렇다해도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독립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 속에서 무한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 참다운 자유는 내가 자연 안에 녹아있고 스며듦이다. 지금의 경계에서 유기물인 인간 역시도 자연의 부분집합인 것처우리의 마지막은 자연에 스며듦이라고 정리해 본다. 그리고 내가 의존하고 있는 세상을 향해 이제는 자연을 발전시킨다는 명목 아래 더 이상 괴롭히지 않기를 호소한다. 




급히 다가온 봄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던 어느 날, 소중함과 아름다움에 눈물이 흐르듯 자연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자연스러움 자체가 자연인 것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움으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는 제 몫을 다하고 주기 함수 형태의 나선형을 그려낸다. 벚꽃잎은 이후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아 잠시 머뭇거리다 거리에 흩날린다. 그것의 자태는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곱게 느껴졌다. 내려앉을 때의 고운 자태 이후 바닥에 문양을 그려내다 다시 흩날리는 벚꽃잎이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누군가의 감정을 이토록 경이롭게 하고 그 경이로움이 눈물로 희석되어 흐르게도 했다. 자연의 부분집합인 그것들의 움직임에 다시 원주율을 그려넣는다.


딱 그만큼이다. 경계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머리와 사고로 그려내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최선을 다한다. 사실적인 부분에 애쓰고 도덕적인 부분까지 관여하니 당연히 감성적으로 확장되기 어렵다. 하지만 그곳에 뛰어들어 직접 경험한 맛과 향과 촉감은 시각을 더 분명하게 했다. 그 분명함은 생각을 더욱 명료하게 해 준다. 감성은 더 깊고 두께가 단단해진다. 현실에 직면한 감정의 표현들은 봄 꽃만큼이나 다채롭다. 




프레임 바깥으로 보이는 세상은 경계 안의 우리에게 프레임에 갇힌 좁은 세상에서 머무르지 않기를 기대한다. 또한, 언제든 강하게 뛰쳐나갈 수 있게 경계, 그곳으로 불러들였다. 깊은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고 호흡의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후 자연 속 자연스러운 계절의 변화는 무례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게 고귀함을 전해 주었다.


경계에서의 자연은 봄이 자연스럽게 치장하고 다채롭게 꾸며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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