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서 그녀들이 수애를 찾아왔다. 그 걸음에는 가치와 책임이 무겁게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들의 모습은 사명감으로 어깨에 꽤나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앞장선 회장은 밝은 표정이었지만 '시작과 도전'이라는 표제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독서 토론 동아리를 시작해야 하는 다양한 이유를 수를 세어가며 전했다. 그녀들의 능청스럽지만 단단한 열정을 사랑했기에 힘을 모아 주변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뜻에 흔쾌히 동참했다. 물론 그 변화는 적극적 모습은 아니었다. 소극적 변화를 겪어 냈지만 긴 시간 두드리다 보면 큰 목소리를 내거나 적극적인 실천보다 결과물이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런 희망으로 '토닥토닥'이라는 연대에 힘을 모으기로 마음을 굳혔다. 내면에는 개인적 욕구인 힐링이나 위안을 얻으려는 마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수애는 그 시기 내면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이미 하고 있었다. 헤세는 그렇게 그녀의 맘의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수애의 심장이 이미 요동칠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다소 과감히 다가왔다.
동아리 모임이 정상적인 체계와 형태를 가지기 이전에 먼저 만난 몇 명이라도 집중하고 함께 나누기로 한 책은 [데미안]이다. 정식 동아리로 등록되지 않아 아직은 도서관에서 토론을 하기도 애매한 입장이었다. 지금까지 가입한 사람은 기껏해야 3~4명이다. 아직은 설득하고 홍보하는 과정에 있다. 수애는 '토닥토닥'이 지역 동아리 모임의 형태를 갖출 때까지 토론 모임을 카페에서 시작하자고 멤버들에게 제안했다. 그렇게 작고 어설프지만 마음과 열정만은 가득한 첫 토론이 시작되었다.
청소년기에 데미안을 만나 책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긴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사실 그 시기에는 자아를 찾아가는 노력보다는 성적, 등급 올리기에 급급했다. 물론, [데미안] 또한 필독서라는 의무감으로 수애를 찾아왔다.막상 책장을 펼치면서 [데미안]은 수애게 더욱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그대'였다. 발등에 붙은 불을 끄고, 순서를 정해 당장 급한 일을 처리했고 그사이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라졌고 지나버렸다.
흐르는 시간 안에 부딪히고 깨어지는 경험을 함께 하며 책[데미안]을 다시 만났다. 수애와 멤버들은 그 시절 방황했던 이분적인 사고에서 시작된 갈등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그 고민은 그녀를 따라다녔다. 싱클레어는 청소년기, 사춘기의 우리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나'이며 헤세가 펜을 통해서 쓰는 보편적 자신이기도 하다. 수애에게도 '나'라는 자신의 내면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깊고 넓은 경험을 통해 자신을 정면으로 만나는 시간을 회피하지 않기를. 도망가지 않기를. 수애는 그것이 헤세의 진심 어린 당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후 그녀의 학창 시절 매 순간 그곳에 뛰어들어 부딪히고 깨어지는 연습을 했다. 그 속에서 싱클레어를 만나며 달라진 자신을 투영하기도 했다. 아마도 대부분 우리는 싱클레어와 함께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고 청년기를 거쳐 성장해 온 듯하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데미안을 만났다. 수애가 보내온 인생의 긴 여정에서 데미안은 항상 곁에 있었는지도.
싱클레어의 집에는 두 세계가 존재한다. 우리의 내면에 선과 악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하듯. 하나의 세계에는 가족이 있다. 그곳은 부유한 기독교가 기반이 되어 빛과 은총이 있는 곳이다. 다른 세계에는 추악하고 지저분한 일들이 존재했는데 부정적인 그 세계는 싱클레어가 성장할수록 조금씩 소리를 내며 점점 다가온다. 싱클레어는 그것을 악의 세계로 여기고 숨겼다. 어느 날 처음으로 그 세계와 직면했는데 그곳에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 크로머가 등장한다. 그는 싱클레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시련과 맞닿게 했다. 궁지로 몰리고 부딪히고 깨어졌다. 방황하며 두려움이 가득하던 어느 날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다가온다. 크로머와 또 다른 세계, 우리 안의 다른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데미안은 그를 음지, 어둠에서 구하려고 했다. 데미안은 선과 악의 가운데 있는 중도적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구원자의 모습으로.
방황하며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낼 때, 우리의 모습에 잠재된 특별히 더 비껴가는 행동이나 감정은 분노나 다른 것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표출되지 않는 감정은 누구보다 내면과 외면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싸워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처한 세상이 온 우주를 가득 메웠다고 생각하고 그 세계가 자신을 가두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곳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 세계만이 전부였다. 싱클레어가 그랬듯 그녀들의 세상도. 정숙의 냉정한 듯 보이는 가늘고 위로 살짝 올라간 듯한 눈꼬리와 차갑게 식어버린 낯빛 동요로 요동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애쓰는 억지의 모습이 수애의 눈에는 보였다..
데미안은 타자에게 답을 찾고 진실을 찾으려고 애쓰는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의 얘기를 들려줬다. 전혀 다른 시점의 진실과 진리를 보여준 데미안의 태도는 우리가 보편적 도덕이라 믿고 따르는 정의가 처음부터 거짓이라면, 처음부터 아니라면이라는 의문이 들게 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프레임 밖으로 나와서 그곳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우리 안의 싱클레어는 혼란에 빠졌다. 모든 진실과 진리는 우리가 알고 생각해 온 것과는 다르다는 데미안의 주장으로 싱클레어의 당연하다고 여겼던 세계 안의 생각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청소년기부터 혼란을 겪어온 수애의 세계처럼. 수애는 그녀의 시선에서 토론 회원들을 바라보면서 감추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이후 싱클레어가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해 부딪히듯 수애의 치열한 노력도 시작된다.
더 이상의 판단이 서지 않을 때 피스토리우스가 조언자로 등장하며 현자의 답을 던진다. 그는 다수가 가는 길은 편하다고. 우리가 가는 길은 힘들지만 우리는 저마다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했다. 수애는 그와 함께 싱클레어를 통해 그토록 궁금해하고 의심을 품었던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아브락사스에 대해 나눈다. 피스토리우스의 등장은 수애에게 다른 세계를 얻은 것과 같았다. 오르간을 통하여 피스토리우스가 연주한 파사칼리아는 수애의 삶의 근간이 되었다. 수애의 세계에 저장되어 있는 보물 중 하나였으니까. 그녀의 삶에서 소중한 가치와 가족, 신념 등을 이루는 유형 또는 무형으로 존재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시간, 숫자, 도형, 색(빛), 소리, 향기, 문장 등. 그것 중 한 가지는 파사칼리아 선율이며 또 하나는 오후 4시이다.
싱클레어의 자아의 중요한 두 세계와 같이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의 세계를 포괄한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통해 아브락사스에 이르게 되고 드디어 에바 부인의 초인류적인 사랑에 다다르고서야 자신을 제대로 보게 된다. "사람은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루어진다"라는 데미안의 말은 싱클레어가 도달하는 곳 바로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모든 것은 자신에게, 그 맘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내 눈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하고 책은 첫머리 서문에서부터 자아를 찾아가는 우리의 의지를 헤세의 경험으로 강하게 끌었고 전한다.
[데미안]은 헤세의 아주 오래전 유년 시절의 처음, 근원으로 돌아가 시작된다. 인간이 자신의 자아, 내면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길고 험하지만 자신만이 해야 할 일이며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부딪히고 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고.그곳엔 나와 자신을 완전히 닮은 자신의 자아가 항상 함께 할 거라고 헤세는 말한다. 데미안의 선과 악을 포괄한 아브락사스의 세상을 통해.
발췌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질문
싱클레어는 자아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부딪히고 깨어진다. 알에서 나오려고 애쓰는 싱클레어를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비친다. 서로를 통해 각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여러분이 깨트리려는 지금의 세계는 무엇인가요? 그 세계를 깨트리고 투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제 딸아이와 함께 다시 만난 데미안은 중년의 수애를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하게하고 변화를 돕는다.감정이 깊은 곳까지 떨어지게 하고 변곡점을 찍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전속력으로 낙하하던 새가 다시 비상하듯. 앞으로의 삶에서 데미안과 몇 번을 더 마주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데미안은 수애의 성장, 내면의 자아를 찾아가는 길, 그녀를 끊임없이 여러 갈래의 길로 인도한다. 내면과 자신이 차츰 가까워질 수 있도록.
지역 동아리에서의 불안전한 첫 모임을 시작했다. 다소 감성적으로... 몇 안 되는 멤버 모두 책과 현실을 철저하게 분리하며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는 사람이었다. 수애는 책과 현실의 분리, 책에서 온전히 받은 감정을 독립하고 별개로 분리한다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노력한다. 이제 곧 시 도서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내공을 쌓을 예정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을 올리고 멤버들의 감상도 기록할 예정이다. 이왕이면 좋은 환경, 힘이 되는 에너지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애의 힐링과 위로가 사랑으로 이어져 연대의 힘까지 닿으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