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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Aug 05. 2022

그저 일상

비 내리는 아침의 냄새를 사랑합니다

한여름의 더위와 습도, 열기를 추가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관계와 각각 품어내는 열정이 꿈틀거린다. 그곳에서는 뜨거운 온도만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온도와 그것 이상으로 함께 나오는 습도까지 더해져 가끔은 닫힌 여름 안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여름이 전달하는 젊음을 젊음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현실과 타협의 시간이 길어져서 힘이 들었다. 힘들었던 걸까. 젊음을 열정과 객기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정적인 면모를 바라보는 시선만이 타협한 현실 안에서 쁘게 살아가는 나를 적당히 자극하는 거라 생각했다.


젊음과 열정이 던져준 열기가 여름이 안고 있는 습도를 조절한다. 여름을 완전히 삼 길듯 한없이 오른 기온을 냉방기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내리기도 다. 노련해졌다. 스며들었다고 자연스러움인 것으로 착각하며 이성을 꾸며대기도 했다.




밤새 내린 비로 주변의 사람과 상황까지 습도가 모두 가져갔다. 명확하다고 믿었던 내 기억까지 습도에 양보해 버렸다. 이젠 명확하지 않은 기억이라 아쉬움만이 남는다. 글을 쓰고 비우고 다시 채운다. 무엇에 빠져서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기다림이라는 건 그 속에 벌써 기대 이상의 희망이라는 것이 내재되어 있는데... 글을 쓰고 독서를 하면서도 긴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내면의 또 다른 자기를 찾아간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과정은 계속되어야 했다.


너무나 쉽게 목표에 도달한 순간이었는지도.

모순적이게도 뜻밖의 그런 순간을 기대했었다.


햇살이 긴 습을 뚫고 산뜻함에 다가가려 최선의 노력을 해 본다. 그런데 비와 뒤엉킨 후의 '습'은 긴 호흡으로 주변을 파악하려는 내 숨을 멎게 했다. 멎은듯한 숨으로 지난밤 내린 비와 햇살이 엉킨 습의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는 역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았다. 일상에는 존재하지만 자연의 냄새는 아니었다. 제한 범위가 없는 냄새이긴 하나 슬쩍 스치듯 습을 뚫고 올라온 그 냄새를 사랑한다. 때론 좀 가볍게 가끔은 움직이는 동선의 한계보다 더 무겁게 풍겨져 나오는 그 냄새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랑해 왔다.




그것에는 자연에서의 자유와 자연스러움이 스며있다. 짙은 향과 묵직한 습이 함께 올라와도 거북하거나 부담이 되지 않는다. 겨울을 쉽게 떠나보내고 찾아온 찬기가 남아있는 이른 봄에도, 여름에 온통 빠져있는 그 순간에도, 그리고 낙엽을 태우며 겨울을 기다리던 순간의 농도에서도 '습'의 향은 내 의식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때론 그것으로 여러 감정이 깊어지고 슬픔도 성숙한다. 성숙한 슬픔에서 진정으로 성장한 자아와 마주하며 비 내리는 아침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의식과 피부를 통해 몸속 모든 기관으로 스며드는 '습'과 그 향을 흡수했다.


오늘 다시 비 내리는 아침의 냄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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