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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l 21. 2022

상실감이 조금씩 커지더니 큰 구멍이 생겼어

얼마나 더 긴 시간 상실감과 싸워야 하는가


시간이 흐른 뒤 애정을 갖고 마음을 준 학생들이 여러 이유에서 곁을 떠났다. 미래나 자신들의 더 큰 꿈을 위해 한 발 내디뎠을 뿐이다. 미래의 꿈을 목표로 움직인다.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이별의 상실감이 이렇게도 큰 것에는 그들이 떠났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애정으로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 먼발치의 사랑은 부모 자식 간뿐만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수업을 했던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결국 자신들의 꿈과 목표를 향해 떠나갈 것이다. 그게 성장, 발전이기에 떠나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의식적인 생각 뒤에 남아 있는 감정... 상실감이 점점 커져서 자리잡지 않기를. 그곳에 침잠된 그 감정에서 되도록이면 빨리 벗어나기를 바란다.

관계에 있어서 사랑을 나누고 주었던 가족이 떠났다. 사별로 때론 이혼이라는 맺음으로...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관계를 이어가기도 하고 맺음을 매듭짓기도 한다. 평생을 함께 할거 같았던 부부나 부모, 자식 간 또는 자녀들 간 그들은 모두 관계에서 이어가기와 맺음을 차근차근 정리한다. 이렇게 정리된 관계에서도 상실감이 따르는 건 그들이 떠나간 자리, 후유증 때문이 아니다.  내가 준 넘치는 사랑 때문이었다. 나에게서 시작되어 나간 사랑에너지로 인해 교차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나눴던 사랑은 균형을 이루지 못했지만 사랑만으로도 에너지는 충만하고 충분했다. 그게 바로 사랑 에너지인데 이토록 큰 사랑이 주는 상실감이라 그것 또한 다시 크게 닿았다. 차분히 사랑을 돌아보자.




목표와 도전에서 무너졌다. 목표치 근처에 가지 못했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려는 나에게 도전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라고 토닥이며 다독였다. 어느 날 도전의 결과물에서 부정적 결과를 통보받은 경우 그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다. 우리는 누구나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좀 더 특별해지고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 그것은 인정 욕구의 일부분일까? 사람은 누구나가 인정 욕구에서 어나지 못한다. 그 감정에 무참히 휘둘린다. 무너짐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얻을 수 없는 결과에 대한 상실감으로 우리는 또다시 아픔을 겪는다. 역시나 부정적 결과 후유증으로 상실감을 겪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도전을 했을 때 온전히 마음을 준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그와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녀와 나는 어디서부터 다른 모습이었을까?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내가 그와  비교를 하며 가진 것, 장점에 대해 빈곤함을 드러내면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내가 그녀와 같은 눈높이를 기준으로 단점과 결핍만을 바라본다면 지옥은 이미 시작되었다. 기준이 같지 않은 상대를 나와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상실감에 허덕이게 된다. 일어설 수 없는 상실감은 나와 내가 속한 세계 전체를 삼켜버린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상실감은 수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갔다가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감정을 잘 다스리고 치료하지 못한 경우 상실감이 찾아왔다 다시 가 버리는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깊어진 상실감이 주는 늪에서 벗어나기란 점점 힘들어진다. 상황을 건강하게 이겨 내려면 감정을 건강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준 사랑의 감정이 너무나 커서라고 변명해 본다. 다가오는 상실감으로 감정의 깊이를 다시 뚫고 일어서기가 정말 힘이 들었다.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면서 생기는 타인과의 비교는 상실감 이후 자신을 무너지게 한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그 세상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속한 세상이 지옥이 아니다. 그는 속하고 나는 속하지 않은 그 세상을 무한히 동경하고 그 시선에 머물러 있는 나의 세계가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반복되는 상실감을 내 앞에 던져놓았다. 지구상에서 그녀가 위치한 좌표는 아이 엄마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의 아내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 누구누구의~~~ 가 아닌 바로 '나'로 존재하는 그 좌표를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누구든 자신의 위치 좌표를  정확히 보아야만,  반복되고 매 순간 찾아오는 상실감을 신만의 방법으로 지혜롭게 견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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