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다시 부르는 장면

<에펠탑의 신랑 신부> (1939)

by 말하는 돌

마르크 샤갈의 회화에서 결혼은 사랑의 종착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는가를 묻는 장면이다. 사랑이 얼굴의 문제였다면, 결혼은 장면의 문제다. 그러나 이 장면은 현재의 사건이라기보다, 시간이 축적된 이후에 비로소 도달하는 하나의 형식에 가깝다. 〈에펠탑의 신랑 신부〉에서 결혼은 이미 지나간 순간이지만, 그렇기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시간 속에서 재구성된 사랑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1938–1939년경에 제작되었다. 샤갈은 이미 벨라와 오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시간은 사랑이 제도를 통과해 삶이 된 이후의 깊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결혼을 ‘지금 여기’의 사건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응축된 기억의 장면으로 다시 그린다. 이 그림에서 결혼은 미래를 향한 약속이 아니라, 현재를 지탱해온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미지다. 지나갔기 때문에 희미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였기에 오히려 더 단단해진 장면이다.


신랑과 신부는 화면의 중심에 놓여 있지만, 그 중심은 배타적이지 않다. 음악가와 동물, 상징적 인물들이 화면 곳곳에 배치되며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이는 축제의 과잉이라기보다, 사랑이 한 개인의 사건을 넘어 삶 전체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구성에 가깝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사적인 순간이 아니라, 그들이 지나온 시간과 관계, 기억들이 함께 어우러진 장면으로 제시된다.


특히 에펠탑은 이 회고적 성격을 강화한다. 그것은 실제 결혼의 장소라기보다, 샤갈의 기억 속에서 파리를 상징하는 구조물이다. 에펠탑은 근대성과 이동의 표지이면서도, 벨라와 함께했던 삶의 한 시기를 압축하는 배경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 결혼 장면은 특정한 날의 재현이 아니라, 사랑이 머물렀던 시간과 장소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된 기억의 풍경에 가깝다.


색채 또한 풍부하다. 신부의 흰색은 순수와 축복을 암시하지만, 화면을 지배하지 않는다. 붉은 색채는 생기와 애정의 흔적으로 화면 곳곳에 퍼지며, 사랑이 하나의 감정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층위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 색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감정들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결혼이 삶을 정리하는 제도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 새롭게 배열되는 기억의 장면임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샤갈이 결혼을 이상화하지도, 해체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결혼을 완결된 상태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결혼을 기억하고 다시 불러낼 수 있는 형태로 그린다. 사랑은 이미 삶이 되었고, 그 삶은 기억을 통해 현재에 다시 작동한다. 화면이 기울어져 있는 이유는 이 사랑이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고정된 상태가 아닌 살아 있는 시간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림의 인물들은 땅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샤갈 회화에서 반복되는 부유의 도상이 단순한 낭만적 상징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랑이 현실을 떠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에 머물면서도 시간의 무게를 가볍게 견디는 방식이다. 결혼은 정착의 기억이지만, 그 기억은 삶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


〈에펠탑의 신랑 신부〉에서 샤갈이 그린 것은 결혼 그 자체가 아니라, 결혼을 통해 지속되는 사랑의 형식이다. 사랑은 제도를 통과했고, 삶이 되었으며, 이제는 기억 속에서 현재를 지탱하는 이미지로 작동한다. 얼굴이었던 사랑은 장면이 되고, 장면은 기억이 된다. 이 기억은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채, 기울어진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부드럽게 떠 있으며, 사랑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향수의 잔향이 더 향기롭듯이 말이다.

이전 08화손은 놓지 않고, 몸은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