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공간이 되다

<예루살렘 하다사 병원 스테인드글라스> (1962)

by 말하는 돌

마르크 샤갈에게 회화는 언제나 화면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 확장의 핵심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이 매체는 강렬하고 신선한 색을 구현하려는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연광과 굴절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이미지가 매 순간 달라지는 조건을 제공했다. 캔버스 위의 색이 고정된 표면이라면, 유리의 색은 시간과 날씨, 계절의 리듬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은 늦게 본격화된다. 1956년, 거의 일흔에 이르러서야 그는 아시 고원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첫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1958년부터 1960년까지는 메츠 대성당의 창을 제작하며 ‘빛이 작품을 어떻게 변모시키는가’라는 문제를 유리 장인 샤를 마르크와 함께 집중적으로 탐색했다. 이 과정에서 샤갈의 회화는 더 이상 ‘그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빛의 사건’으로 이동한다.


그 결정적 도약이 〈예루살렘 하다사 병원 스테인드글라스〉다. 1960년부터 제작을 시작한 이 연작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하다사 메디컬 센터 회당에 설치된 열두 개의 창으로 구성되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주제로 한다. 완성 후 파리와 뉴욕 MoMA에서 전시되었다가 1962년 2월 예루살렘에 영구 설치되었다. 각 창은 높이 약 3.4m, 폭 2.4m에 달하는 규모로, 이전 작업을 넘어서는 공간적 존재감을 획득한다.


그러나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규모나 상징의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서 그림은 더 이상 ‘보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머무는 공간으로 변형된다. 근대 회화는 오랫동안 캔버스라는 경계 안에서 자율성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샤갈은 그 자율성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그는 회화를 다시 공동의 공간으로 되돌린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개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동선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이미지다. 특히 병원이라는 장소는 상징적이다. 이곳은 신앙의 전용 공간도, 미술관도 아니다. 삶과 죽음, 회복과 상실이 동시에 오가는 자리다. 샤갈은 회화를 가장 취약한 장소로 옮김으로써, 예술이 어디에서 작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제기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라는 주제 역시 ‘민족적 영광’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각각의 창은 고유한 색과 상징을 품고 있으나, 그 이야기는 경쟁하거나 위계화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빛은 모든 창을 통과하며, 색은 서로 스며든다. 이는 샤갈이 공동체를 이해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공동체는 동일성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차이를 품은 채, 서로에게 스며드는 방식으로 공존한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매개는 빛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의 빛을 받아 색으로 변환할 뿐이다. 이 ‘통과’의 구조는 샤갈의 후기 윤리와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신의 계시처럼 내부에서 폭발하는 빛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세계를 지나온 빛이 어떻게 굴절되고 변형되어 인간에게 도달하는지를 보여준다. 신성은 초월의 섬광이 아니라, 통과와 굴절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 점에서 하다사 병원의 창들은 그의 성서 연작과도 연결된다. 신은 명령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이야기와 빛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되는 존재로 남는다. 이 창들은 설교하지 않는다. 환자와 방문자, 의료진의 일상 위에 조용히 겹쳐질 뿐이다. 색은 위로를 강요하지 않고, 의미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공간의 리듬을 바꾼다. 하루의 빛이 이동하는 만큼, 분위기와 정동은 미세하게 달라진다. ‘치유’는 메시지가 아니라, 환경으로 조성된다.


따라서 이 작업은 샤갈 회화의 윤리적 태도가 공간으로 확장된 사례다. 그는 비극을 직접 재현하지 않는 대신, 비극 이후에도 인간이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병원은 고통이 가장 밀집된 장소이지만, 동시에 회복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다.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치유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이 전부가 되지 않도록, 색과 빛으로 공간의 숨을 넓힌다.


이 확장이 생애 후반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전쟁과 박해 이후, 이미지는 설명보다 침묵에 가까워졌고, 색은 감각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가 되었다. 그 다음 단계로서 그는 그림을 공간으로 풀어낸다.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책임의 이동이다. 개인의 내면에서 공동의 장소로, 감상의 대상에서 생활의 일부로.

이전 16화신은 물러나고, 이야기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