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을 묻다

메데이아의 자아 분열

by 말하는 돌
“내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 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격정이 나의 숙고보다 더 강력하니,
격정이야말로 인간들에게 가장 큰 재앙의 원인이로다!

이 짧은 하루 동안만 네 자식들을 잊었다가 나중에 울도록 하라!
네가 아이들을 죽이더라도 아이들은 역시 네 귀염둥이들이 아닌가!
나야말로 불행한 여인이로구나!”
― 『메데이아』, 1078–1080행, 1242–1250행


메데이아는 자신이 저지르려는 끔찍한 행위를 안다. 그러나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이성으로 무장하려 애쓰지만, 감정의 격랑은 그녀를 집어삼킨다. “격정이 숙고보다 강하다”는 고백은 단순히 감정에 휘둘린 한 인간의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파멸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선언이다.


콜키스의 공주이자 마법사였던 그녀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던졌다. 이아손을 위해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하고, 심지어 친동생의 목숨까지 앗았다. 이아손의 영광 뒤에는 언제나 메데이아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코린토스에 도착한 후, 이아손은 권력을 좇아 크레온의 딸과 혼인을 택한다. 한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여인에게, 이 배신은 절망 그 자체였다.


『메데이아』는 이 절망이 복수로 변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독이 스민 예복과 관은 크레온의 딸을 삼키고, 왕 크레온마저 죽음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가장 잔혹한 복수는 끝에 남는다. 메데이아는 자신과 이아손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직접 죽인다. 어머니로서의 손으로, 사랑하는 존재를 없애버림으로써, 그녀는 남편에게 가장 깊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 순간, 메데이아의 정체성은 두 갈래로 찢어진다. 어머니와 여인, 두 자아가 서로를 찢고 잡아먹는다. 그녀의 독백은 이 내적 갈등의 심연을 드러낸다. ‘격정’은 남편을 향한 분노, 사랑이 배신으로 변한 여인의 절규이다. ‘숙고’는 자식을 지키려는 본능, 어머니의 울음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보며 흔들리고, 그들을 향한 애정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나 결국 선택은 ‘어머니’가 아닌 ‘배신당한 여인’의 몫이 된다.


관객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메데이아는 과연 ‘자식을 죽인 어머니’인가, 아니면 ‘사랑을 배신당한 여자의 몸부림’인가? 그녀의 행위는 전통적인 모성의 틀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사랑에 무너진 여인이었고, 그 고통은 모성마저 압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죽이기 전, 그녀는 망설였고, 눈물을 흘렸으며, 복수 뒤에도 통쾌함 대신 절망을 안았다.


메데이아는 모성을 저버린 괴물이 아니라, 사랑에 파괴된 여인이다. 그녀의 선택은 비인간적이지만, 동시에 그 어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고뇌에서 비롯되었다. 사랑은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랑은 그녀를 파멸로 이끌었다. 그리하여 메데이아의 복수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파멸적일 수 있는가를 드러내는 자기 파괴적 외침이 된다.


어머니이자 여인이었던 메데이아는, 끝내 두 자아 사이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그녀는 비극 그 자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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