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旣知)의 고통

박서보의 회화 읽기

by 말하는 돌

짙은 검은색 물감이 화면 전체를 완전히 덮고 있다. 밝은 색채는 단 한 틈도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검은색이 겹겹이 칠해져 있다. 그러나 이 어둠은 조용히 스며든 것도, 깔끔히 정돈된 것도 아니다. 마르기 전 덧칠된 물감의 결, 붓의 끈적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여전히 마르지 않은 듯한 광택이 번들거린다. 보통의 감상자라면, 이 어두운 화면 앞에서 곧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익숙한 어떤 형상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감상자는 매캐한 회색 선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아래에 세로로 두 줄을 이루며 늘어선 제멋대로 일그러진 타원들과 마주한다.


하나, 둘, 셋... 열. 열 개의 타원들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려는 시도조차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조용히 서 있다. 타원들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려는 듯 회색 동그라미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세로의 흐름을 형성하고, 감상자의 시선을 아래로 이끈다. 가까이 다가가면, 타원은 실제로 화면에 뚫린 구멍이며, 그 위를 덮고 있는 것은 일그러진 천 조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천은 바람에 흔들리거나 물에 젖어도, 시간이 지나면 제 모습을 되찾는 유연함을 지녔다. 그러나 이 화면 속 천들은 검은 물감에 흠뻑 젖은 채 부풀었다가 쪼그라들고, 마침내 물감과 함께 굳어버렸다. 마치 몸부림의 흔적만 남긴 채, 다시는 펼쳐질 수 없다는 듯 고정되어 있다.


열 개의 구멍을 지난 후에도 회색 동그라미의 열은 계속된다. 종적으로 이어지는 시선은 화면 맨 아래, 가장 중앙에 뚫린 또 하나의 구멍에서 멈춘다. 유일하게 짝이 없는 이 구멍은 위의 것들과는 형태와 크기 모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래는 둥글고 위는 뾰족하여 물방울을 연상시키며, 크기도 두 배 가까이 크다. 이 역시 검은 물감으로 거칠게 덧칠되어 있고, 주름지고 일그러진 채 굳어 있다. 이 특유의 물방울 형태는 시선을 다시 위로 돌리기보다는 아래로, 깊숙한 심연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화가는 익숙한 재현을 철저히 유보한 채, 해석할 수 없는 요소들만으로 화면을 채워나간다.


타원들의 줄서기가 끝나는 지점의 양옆에는 새로운 형상이 대칭적으로 등장한다. 물에 탄 듯 옅어진 흑갈색의 두 형상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목을 길게 뺀 인간의 측면 두상으로 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척추와 골반처럼 해부학적 형상으로 상상할지도 모른다. 혹은 이 형상의 정체를 더 이상 밝히려 하지 않고, 사유를 멈출 수도 있다. 이 붉은 형상은 단순히 검은 물감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화학약품으로 검은 물감을 벗겨내고 긁어내고 닦아낸 자리에 드러난 것이다. 깊이 스며든 어둠을 애써 벗겨낸 자리에 탄생한 이 붉은 형상은, 어둠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거나, 그 어둠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 붉은 형상 아래에는 듬성듬성한 섬유 조직이 드러난 천이 대칭적으로 화면에 붙어 있다. 그 위에도 두 개씩의 타원이 그려져 있는데, 윗부분에 일렬로 등장했던 타원들과 같은 흐름을 이어간다. 옅게 물든 검붉은 화면은 마치 흰 거즈 위에 스며든 핏자국처럼 느껴진다. 화면은 피를 닦은 거즈가 아니라, 검게 굳은 피딱지를 뜯어낸 자리에 아직 아물지 않은 살이 드러난 듯하다. 화면을 뒤덮은 검은 물감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생명의 상처에서 솟아올라 응고된 피의 색이며, 그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고통이 맥박친다.


화면을 채운 모든 요소를 명확히 언어화할 수는 없지만, 일그러진 구멍들, 굳어버린 천조각, 걷어낸 검은 물감 아래 드러난 붉은 형상, 그리고 화면 전체를 휘감은 어둠은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정조인 ‘괴로움’과 ‘아픔’을 이야기한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떨림이 어둠 속에서 스며 나온다. 박서보가 1960년대 앵포르멜 회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존재의 고통’, 혹은 ‘생명의 근원적 고민’은 결국 이와 같은 감정이 아니었을까. 이 미지의 형상들은 어쩌면 기지(旣知)의 고통, 시대적 상처를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이해한 듯한 감각이 든 그 순간, 마지막 의문이 다시 솟구친다. ‘어째서 이토록 암울한 어둠이 이토록 밝게 빛나는가?’ 뚫린 구멍의 요철, 굳어버린 천조각의 주름, 칠이 매끄럽지 못한 캔버스 위의 요철에서 빛이 반사된다. 정해진 방향 없이, 불규칙하게 흩어진 빛은 순간순간 감상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의도적으로 덧입힌 하얀 물감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사되는, 어둠 속의 고유한 빛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화가는 말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암담한 시대의 고통 속에서,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야 비로소 생명의 기운이 발현된다는 진리를.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검은 화면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깨어나는 새로운 존재이다. 별은 가장 어두운 밤에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 화면도 그러하다. 완전한 암흑을 통과해야만 발견되는 반짝임, 그것이 이 회화가 내게 전하는 마지막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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