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난달의 이야기예요. 유난히 따듯한 2024년 12월 겨울의 어느 날, 오랜 친구를 만났습니다. 20대 초반에 등록금 마련을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 화장품 가게 아르바이트를 1년가량 했었는데요. 그날 만난 친구는 그 1년을 함께 울고 웃었던 M 양입니다. 그때 만난 인연이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오래된 친구가 그렇듯 저희도 자주 만나던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복학 후 졸업, 졸업 후 취업까지 쉴 틈 없이 달렸고요. 그 후로는 이직을 전전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도 전전했어요. 아마 친구도 숨이 가쁘게 달렸을 거예요. 왜 아마냐고요? 퇴사 후 저희는 20대 중반에 한 번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서 겨우 만났고, 그 후 30살이 되어 한 번 만났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다시 한번 만났으니 사실상 연락이 이어진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제 와서 그 시절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주로 과거를 묻어두고 지금을 이야기합니다.
그 사이 어느덧 친구는 꽃집이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고, 저는 그림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친구가 일하는 꽃집으로 도넛을 사 들고 방문했어요. 같이 나와 팔짱을 끼고 카페로 발맞춰 걸었습니다. 네 키가 이렇게 작았던가? 깔깔. 죽을래? 깔깔….
카페에 앉아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느꼈어요. 아, 편하다. 너무 편해서였을까요? 저는 자연스레 최근의 제 고민도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하고 편안하게 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더군요. 가만 들어주던 친구가 빤히 쳐다보다가 질문을 건네었어요.
"너는 지금 네가 단단한 사람인 것 같아, 아니면 단단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어요. 단단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제가 단단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친구는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려주었습니다. 아직도 그 곧은 시선이 떠올라요. 제가 생각하는 M 양은 그 시선만큼이나 단단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단단하다는 게 뭐지? 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모호히 대답했어요.
"나는 단단해지는 중인 사람인 것 같아."
예전보다는 마음이 많이 철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여전히 불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도 예전보다 그 불안을 잘 다스릴 줄 아는 것 같아서 한 대답이었어요.
그러자 친구는 자신이 생각하는 단단함은 조금 다르다고 답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너처럼 슬픔 앞에 무너지지 않고, 힘듦도 잘 이겨내는 게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데 나는 달라. 무너지지 않고, 잘 이겨내는 게 단단한 사람이 아니야. 무너지고, 지금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믿고 묵묵히 나아갈 줄 아는 사람. 난 그게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내가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는 지금도 봐 봐. 새벽에도 생각이 깊어지면 밤을 꼬박 새워. 이 길이 힘들다는 것도 알고, 지금도 진짜 많이 고민하고 또 힘들어해. 그런데 왜 버틸 수 있는 줄 알아? 나는 이 시기가 지나갈 거라는 걸 알거든. 언젠간 괜찮아질 거거든. 그래서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고 나아갈 수 있어. 불안한 마음이 언젠가 사그라든다는 걸 아니까."
그 말을 듣는 내내 온몸에 전율이 일었어요. 그 말을 하는 친구의 표정이며 제스처며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지는 게 없었어요. 똑 부러지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눈에서 강단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복이 너는 네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일지도 몰라."
아,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맞아요. 저는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에요. 바람을 맞아 휘청이고 넘어지더라도 결국 일어서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에요. 그게 언제가 되었든 간에요.
제게 이 순간 그 깨달음이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거예요. 몇 달 전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1년 정도 상담을 받으며 마음이 많이 평온해지던 어느 날이었어요. 제 이야기를 듣던 상담 선생님이 물었어요. "지금 어떠세요?" 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질문을 하는 눈빛을 보며 순간 깨달았거든요.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상담을 종료할 때가 되었군요…." 마지막 상담을 하며 제가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상담 선생님과 그동안 땅을 고르게 잘 다졌다면, 이제 다음 계단을 오르는 건 제 몫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계단을 오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들은 한마디로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저는 늘 언제 또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질까 두려웠었거든요. 근데 그 말 한마디에 이제 웬만해서는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머지않아 그해 마지막 모임에서 만난 한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너는 세상에 우뚝 서 있는 인프피 같아." 이제 저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네요. 2024년 4월, 제 내면을 돌봐주신 선생님도 말씀하셨고요. 12월 중순에는 오래된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12월 말, 처음 만난 친구에게서도 듣게 된 거예요. 각기 하는 말은 달랐지만, 그들의 말 속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넓은 광야 한 가운데, 앙상한 가지를 펼치고 있지만 두꺼운 나무 기둥으로 단단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그게 나구나.
이제야 알겠어요. 단단하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힘이에요.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언젠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과 이 감정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는 것. 그게 단단함이었어요.
그래서 이 편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하고 두 달 만에 시즌1을 마무리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언젠가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확신을 갖고 행복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럼, 그 때는 언제일까? 고민할 때면 다음 편지는 머나먼 미래가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오늘 편지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고요? 아니요, 행복은 하하호호 웃고 즐거운 상태인 게 아니에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혹은 그러한 상태.
국어사전에 명시된 행복의 뜻이에요. 저는 이제 제 삶에 충분한 만족을 느껴요. 단단해졌으니까요.
단단하다는 거, 사실 별거 없어요. 흔들리고 휘청이더라도 언젠가 그 시기가 지나간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어떤가요? 조금 오만한가요? ㅎㅎ
스스로의 상태를 물었을 때,
단단함에 정도가 있다고 하면 또 한참을 고민할 것 같긴 한데요.
단단함과 단단하지 않음 중에 선택하라면 그래도 단단함을 선택할 것 같아요.
말랑 복숭아를 좋아하고,
말랑한 행복을 전하고 싶은 저는 말복이라고 필명을 지었는데
단단함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 재밌기도 했어요.
재미없다고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