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것들에 만족하는 법
제게는 게임을 하면서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는 게임을 잘 하지 않지만, 모바일 게임은 종종 하는데요. 캐시템을 쓰지 않는 게 제 원칙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예전엔 '현질' 꽤 많이 했었어요. 언제부터 결제를 안 했냐 하면, 성장을 돈으로 사는 세계는 현실로 충분하다고 느낀 후부터인 것 같아요.
현실이 참 차갑더라고요. 돈 있는 사람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빠르게 성장해요. 물론 돈이 다가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있고, 돈이 없어도 성장할 수 있죠. 분명히 인정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누군가는 돈으로 시간을 사고, 기회를 사고, 때로는 실력까지도 살 수 있는 세상이에요. 분하지만 그걸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고, 저는 그저 그 불공평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게임에서만큼은 저도 돈으로 성장을 살 수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천천히 한 단계씩 올라가는 성취를 익히기로 했어요. 게임에서까지 그걸 느끼고 싶지 않더라고요.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건데, 결제해버리면 실제로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지 않고 싶었던 건, 어쩌면 제 나름대로는 돈으로 건너뛸 수 없는 세계를 하나 만들어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인데요. 잘 그리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꼼수를 부렸던 때가 있었어요. 트레이싱하고 거기서 만족해 버린다거나, 기본기를 건너뛰고 편집으로 얼버무린 과제물 제출하기, 더 연습하고 검색하지 않고 온갖 효과로 떡칠하고 잘 그린 부분만 크기를 조정해서 올리기 등. 도덕적으로 위배되는 건 아니지만요. 몇 년이 흘러서 보니 제가 그렇게 꼼수 부리며 그림 그리는 동안 기본기를 갈고 닦았던 친구들은 다 멋지게 성장했더라고요.
그림의 지름길은 결국 기본기를 갈고 닦는 연습뿐이라더니 어느 순간 그 말을 딱 체감했던 거죠. 현실의 성장엔 순서가 있구나. 더 이상 꼼수를 부리지 말아야겠다. 제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마주했던 날엔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아, 나 진짜 그림 못 그리는데 왜 이렇게 꼼수만 부렸지?'
제가 그러는 동안 노력한 친구들도 성장했고, 저도 조금씩 성장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재능도 있고 돈도 있어서 단숨에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들도 노력 없이 이룰 수 없었을 테고, 노력 없이 올라갔댄들 노력 없이 지속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것까지 부정할 정도로 마음이 좁진 않지만 그래도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 기회는 아주 부러워요. 부럽고 또 열등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제가 해야 하는 것은 포기하거나, 열등감에 못난 마음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저를 바라보는 거라 생각했어요. 외부에서 시선을 돌려 저를 향하게 하는 거예요. 어쨌든 인생이라는 건 각자의 속도대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잖아요? 그러려면 열등감에 휩싸일 시간에 힘내서 지금이라도 연습하는 수밖에요. 그 시간에도 성실하게 연습했을 친구들처럼요.
어쩌면 게임에서 현질로 여러 단계를 건너뛰는 순간, 제가 그 '맛'을 다시 알아버릴까 조금 두려운 걸지도 몰라요. 저는 강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의지도 박약하고, 자주 게으르고, 종종 마음도 흔들리는 사람이에요. 게임에 결제를 안 하기 시작한 건, 무의식적으로 저를 지키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 인생은 남이 살아주지 않는걸요. 돈 많고, 성실하고, 의지도 강하고, 굳세게 연습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제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잖아요. 아무리 흔들려도 제 인생은 저의 것인걸요. 제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그러니 게임에 결제하지 않는 건 이미 꼼수의 맛을 알아버린 저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어떤가요? 제법 그럴싸한 변명이 되었을까요?
근데 사실 언젠가부터 게임에 돈 쓰는 게 아까워지기도 했어요...
그냥 그 돈 모아 떡볶이 사먹는 게 훨씬 행복한 떡볶이덕후가 되었을지도...
.. 얼마전에 현질하고 싶었는데 꾹 참으며 한 번 더 마음에 새기기위해 쓴 글일지도....
(수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