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삶을 놓지 않으면

오롯이 나로써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희망이 되길

by 말복


"아유, 잘 컸다."


제가 10대 시절 내내 어른들께 들었던 말이에요. 동네 어르신도, 학교 선생님도, 친구네 부모님도 모두 저를 보면 지긋지긋하게 말했어요. 모두 미묘한 눈썹을 지으며 칭찬하셨지만, 눈치가 빠른 전 눈치 없는 척 헤실헤실 웃어 보였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여서요. 그 말의 숨겨진 의미를 알았대도 그들이 밉거나 하진 않았어요. 저는 어른을 이해하는데 특출난 어린이였고, 성선설은 믿을지언정 성악설은 믿지 않았거든요. 좋은 의도로 말씀하신 걸 거야 하고 넘겼습니다.


20대가 되어서는 좀 달랐을까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어른들 역시 제게 그런 말을 건넸고, 때로는 저보다 나이가 아주 살짝 많은 지인들도 그런 시선을 건넸어요. 가끔은 또래 혹은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서도 그런 마음을 받았어요. 저는 여전히 그들이 밉지 않아요. 저를 해하려고 한 말이 아닐 거라 믿고, 아니길 바라거든요.




다만 제가 후회하는 게 있다면 그 시기를 보냈던 저를 지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아직도 두고두고 마음이 아파요. 그때의 저는 그런 시선을 보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이해하기 어려워 그들의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기특하다는 말의 기저에는 불쌍함과 안쓰러움이 있었다는 걸 조금 더 큰 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직 미숙한 때에 알아버려 저는 제 삶의 방향을 잃고 말았어요.


이를테면 그런 것들이었어요. 저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는데요. 그들의 시선에 의하면 저는 늘 힘든 상황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이미 딛고 일어섰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그 시선이 없었더라면 딛고 일어설 건덕지가 없었는데도 말이죠. 생각해 보세요. 그냥 밥 먹고 있는데 눈썹을 찡그리며 힘내라고 하는 말을 들으시면 어때요? 똑같이 일하고 퇴근하는데 기특하다고 손을 꼭 잡아주시면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요. 제가 아무리 매일 웃으며 일어나도 반복되는 동정 앞에서 저를 지키긴 쉽지 않았어요. "아, 나 아직 불쌍한 사람인가 보다. 힘듦을 외면하고 있었나 봐."


그 덕에 저는 우울증이 나아질 만하면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고, 약은 단 한 번도 줄어들질 않았어요. 상담을 받다가도 중단했고, 중단하다가도 다시 돌아갔어요. 괜찮아질 만하면 힘듦을 증명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힘들어졌어요. 우울증이 깊어졌죠. 그리고 어느 순간 형체도 없고 끝도 보이지 않는 그 짙은 어둠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어요.




바로 그 시기가 제가 가장 후회하는 시기에요. 제 삶을 지키지 못했던 때입니다. 처음이 쉽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저는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저를 놓기를 반복했어요. 그러다가도 살려달라고 악을 썼고, 그렇게 실려간 응급실에서 잔액이 없을때면 또다시 저를 놓고 싶었어요. 그런데요. 사실 저는 사실은 단 한 번도 저를 놓고 싶지 않았어요. 제 발악은 놓고 싶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냥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봐주기를 바란 마음이었어요.


어떤 말을 해도 기특하게 바라보던 시선들과 어떤 행동을 해도 잘 컸다며 다독여주는 마음들. 그래요, 그 마음들이 다 나쁜 의도였겠나요? 하지만 어린이들은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눈치가 빨라요. 어른들이 눈치 못 채게 할 만큼이요. 제가 힘든 티를 내보니 되려 장하다 하더라고요. "그래, 그렇게 드러내고 살아." 저는 당신들의 말을 듣기 전까진 그저 행복한 사람이었는데요. 뭐, 그래요. 그렇다고 또 제가 그런 시기를 보낸 게 그들 탓만 있겠어요? 그치만 그 영향이 적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를 놓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다행히도 한 중고 서점에서 만난 책이 저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냈어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삶을 놓고 싶은 사람들은 사실 반대로 삶을 놓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야? 나는 힘들어야 하는 사람인데? 나는 매일 괴롭고 죽고 싶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제가 처음이 쉽다 그랬잖아요?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는데, 대부분은 수많은 시도 끝 한순간의 실수로 생을 마감한대요. 그걸 보자마자 제 속에는 스멀스멀 두려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거예요. '아, 나 죽음이 두렵구나.'


그런데 제가 계속 처음이 쉽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어느새 익숙해진 거예요. 이제는 두려운데, 하기 싫은데 마음을 해소할 길이 없는 날이면 눈앞에 그런 선택지만 보였어요. 그래서 또 119를 부르고, 상담 전화를 하고, 응급센터에 연락을 하고…. 지긋지긋한 시기를 보내고 또 보내다 그 당시 연락을 나누던 응급센터 의사 선생님께 연락드렸어요. "돈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가족도 없는데, 정신병원에 입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 살고 싶어요."




제가 원래 한 달 이상 장기 입원을 권고받았었는데도 입원할 돈이 없어서 그렇게 매일 생쇼를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살고 싶다는 걸 받아들이고 마음을 먹고 나서요. 제 발로 동사무소 가서 생활비 신청하고, 병원 가서 이런저런 서류 작성하고, 친구한테 고양이 맡기고 딱 일주일이라도 입원하고 나오니까요. 나 진짜 이제 살아갈 거라고, 다시는 다른 생각 않겠다고 마음먹고서 일주일 딱 버티고 나오니까요.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사실 좀 과장했어요. 드라마틱하게 다른 세상은 아니었고, 이제 좀 다른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았어요. 마음이 막 두근두근한 게 설레더라고요. 나는 힘든 사람이어야만 했던 사람에서, 행복한 준비가 된 사람이 된 거예요.


근데 이제 막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거니까 그게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어렸을 때는 성선설을 믿었는데, 이때부터는 성무선악설을 믿고 있어요. 뭐가 바른 것인지는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선하고 바른 결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힘들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마음이 힘들다는 신호는 무엇인지, 지금 내 상태는 어떤지 등등 그 어떤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그거 하나만 지켰어요. 어떤 아픈 마음도 내 삶을 놓고 싶다는 마음과 같지 않음을 인지하기.




그렇게 또 몇 년을 보냈어요. 그 시기 동안은 아르바이트하면서 디자인도 배워보고, 웹툰 어시도 지원해 보고요. 공장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도 만들어보고, 용기 내어 웹툰 스튜디오에도 들어가 봤어요.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상담소를 찾아 감당하기 힘든 마음들도 마주해보고요. 그 덕에 처음으로 상담 종결도 해보고요. 회사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잘 마무리했어요. 퇴사하면서 지금의 짝꿍도 만나고, 미래의 나를 기대하는 법도 배웠어요. 다시 꿈도 찾아 공모전도 도전해 보고, 또 만화도 더 배워봤고요. 그러다 인스타툰도 시작하고, 지금은 이렇게 글도 쓰고 있어요.


인스타툰을 그리고 연재하면서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던 걸 최대한 드러내지 않았어요. 관련된 자극적인 소재도 쓸려면 얼마든지 많았는데 그런 건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제가 행복한 일상을 연재하는 것 자체가 제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증거였거든요. 짜릿하지 않나요? 일 년 반이나 행복한 일상을 연재했는데 사실은 그게 제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였어요. 저도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행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아픔을 드러내지 않아도 희망을 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반년 정도 연재 후에 <말복의 행복레터>를 시작했었어요. 행복을 전하고 싶어서요. 2개월간 발송한 후 준비가 미숙했음을 받아들이고 시즌1을 종료했지만요. 다시 또 1년 정도 연재 후에 시즌2를 지금 이렇게 브런치로 연재했어요. 제가 행복한 일상을 연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 거잖아요. 그러려면 정말로 드러내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연재해야 했어요. 기특하단 말이 아니라, "말복님 정말 행복한 사람인가보다." "정말 사랑받는 사람인가보다." 같은 말을 듣고 싶었어요. 그래야 증거가 되잖아요. "너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고 대뜸 들이밀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힘들었던 때 그런 걸 싫어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여러분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러려면 운동해야 하고,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이래야 하고, 저런 것도 해야 하고 등등 구구절절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어찌 됐든 저는 기어이 오뚜기처럼 일어나 행복을 전하는 말랑 복숭아, 말복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럼에도 삶을 놓지 않으면 그걸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늘 곁에 있어 드린다는 약속도 빨리 돌아온다는 약속도 할 수 없지만요. 제가 오롯이 저로써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자체가 희망이 되길 바라요. 어느 날 또 시즌3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욕심부려 볼게요. 행복하세요.


말복 드림.




지난 주는 제 꿈을 위해~ 지원사업에 몰두하느라 한 주 휴재를 하고 오늘 이렇게 마지막화로 찾아 뵈어요.

마지막화는 처음부터 기획이 되었었는데도 쓰는데 오래 걸리더라고요.


시즌2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음 주부터는 만화로 연재되었던 행복레터가 차례로 올라올 예정인데요.

가능하다면 리메이크해서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아직 연재중인지라 체력적으로 가능할 지 모르겠어요.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다 올린 후에 다시 또 하나씩 틈틈이 수정해보겠습니다. ㅎㅎㅎ


말복의 행복레터 시즌2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멀지 않은 시기에 시즌3로 찾아올게요. 그때까지 행복하세요.


말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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