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실패의 연속 (2)

에서 헤엄쳐 나와서는 또 지긋지긋하게 꿈꾸기.

by 말복

1편 : https://brunch.co.kr/@malbok/55





5. 지긋지긋해.


이미 실패했다고 동네방네 떠들며 괜찮다고,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었는데 잦은 도전과 잦은 실패 속에서 무력감이 스멀 스멀 피어올랐다. 사실 괜찮지 않았던걸까? 아니면 다른 게 또 겹쳤을까? 당시에는 시야가 좁아 아무 생각 할 수 없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여러 가지가 겹쳤다.


일을 잘 못 하고 있었다. 내가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있는데, 불가능한 일도 배워가며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노력했다. 열심히 했다. 남들은 1시간이면 할 것 같은데 3시간을 걸려 하면서도 덕분에 배운다고 생각했다. 피해를 주기 싫어서. 믿어준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서. 그러다가도 부족함에 힘들어했고, 다시 일어났었다.


그리고 이 시기와 겹치며 힘겨운 마음보다 분노가 한 번씩 치솟았다.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갑자기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만화에 더 시간을 쏟고 싶었고, 마음을 더 쏟고 싶었다. 힘든 시기에는 푹 쉬면서 창작 고민만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욕심이라는 걸 깨달을때면, 이 감사한 시기에 난 왜 이리 부족하지, 왜 이렇게 자꾸만 화내는 거지. 자책을 했다. 마음을 회복한 지금은 성향에 맞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회복하기 이전에 세이브 원고를 다 까먹었다. 말복툰 그리면서 3월에서 4월즈음에는 좀 잘 맞는 형식과 스토리를 드디어 찾은 것 같다고 느꼈었다. 그래서 세이브 원고가 매 주 몇 개씩 생겨서 바쁘고 힘든 시기에도 마음 놓을 수 있었다. 회복하면 다시 또 금방 쌓였다. 2컷, 4컷, 3페이지 만화 이렇게 간단히만 그렸던 덕도 있겠지만 그냥 이야기가 쉼 없이 나왔다. 손이 쉼 없이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도 안 그려져서 다음 주 어떡하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니 이제 나는 창작도 못 하는 사람이 됐어. 잘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까지 추가되었었다. 뭘 해 먹고 사나 매일 외면했지만 결국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고민해도 답은 없더라. 지금은 어떻게든 그리자. 마음 먹고 다시 그리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 다음은 어쩌지 하는 고민을 한다. 답은 없겠지만서도 답이 없을 땐 성실함과 꾸준함을 목표로 쓰고 그린다.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는 개인사들. 말 못 할 것도 없지만 굳이? 싶어서 먼저 나서서 말하진 않는 이야기들 속에서 괴로웠다. 엄마가 아픈데 수술하니 마니로 가족싸움이 일었었다. 한 줄로 요약하니 문장이 요상하다. 그런데 그랬다. 그 와중에 나는 돈도 별로 없으니 말도 더 못 얹겠고 갑갑했다.


짝꿍과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가장 괴로운 시기였다. 쉬고 싶었다. 어디 가서 쉬고 싶은데 엄마 집 가서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울다가 문득 무서운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우울증에 걸리기 싫어서, 미래를 보며 살고 싶어서 늦은 시간 상담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상담 일정을 다시 잡았다. 상담을 종결했는데도 일 년에 한 번씩은 너무 힘겨울 때 뵙고 온다.




6. 커다란 희망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극에 달한 이후에 내 힘을 더더욱 느꼈다. 정말 정말 힘들어서 그렇게 극에 달했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미래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느꼈다. 나 정말 강하구나. 약한 사람이 아니구나. 나를 한 번 더 믿게 되었다. 이 믿음들이 더 많이 쌓이려면 괴로운 시간들이 그만큼 더 있겠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다 이겨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멀 스멀 마음 속에 희망이 느껴진다.


그래, 잊지 말자. 내 꽃말은 커다란 희망.


그로부터 시간이 또 흐른 지금은 회복을 잘 했는지 쉬는 시간이 길어진 걸 눈치채고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카페에 나와 노트북을 열고 뭐라도 한다. 그리고 그제야 보인다. 쉬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그림 스터디에도 들어가서 매 주 2장 이상씩 그림도 그리고 있다. 그것도 그냥 대충 그리지 않고 어떻게든 일감을 따내려는 그림을 그린다.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그 그림들을 업데이트했다. 똑같은 걸 여러군데 올리는 게 왠지 머쓱해서 (여러 곳에 다 있는 구독자들이 지겨워할까 봐...) 하지 않던 일들을 한다. 일 좀 줍쇼! 라는 마음을 담아서.


다음엔 뭘 할 지 고민도 해본다. 단편만화라도 한 번만 더 도전해볼까. 20페이지도 어려웠다면 10페이지만? 8페이지만? 근데 그럼 그게 인스타툰이네? 도전이라기엔 애매한데.. 책은? 책도 글 쓰는 게 여전히 어려워. 이건 천천히 아카이브하듯 해 볼래. 뉴스레터? 아, 재밌겠다! 시간이 흘러도 늘 내가 관심있어할만한 것이 뭐가 있지? 그림? 그림은 일이 될 것 같고, 책? 책 너무 내 맘대로 보는데. 아 그럼 자유연재로 해도 될 듯? 헉 그러고보니 팟캐스트도 하기로 했는데! 이것도 좀 더 살펴야지! 목도 얼른 치료해야겠다. 병원 예약해야지. 당장은 세이브원고보다 사이드 프로젝트만 일주일에 한 편씩 하는 걸 목표로 하자. 아, 그리고 하고 싶어했던 거 또 뭐가 있더라.




그제야 다시 꿈꾸는 내가 참 우습다. 지긋지긋함은 실패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것이었다. 조금 올라설만하면 지치고, 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회복하면 더 힘들게 지치는 과정에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인간이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마음이 힘든 시기에는 조금만 무례한 사람을 봐도, 이렇게 무례한 사람들이랑 세상을 살아야 해? 매일 매일 애써서 내 마음을 돌보아야 해? 왜? 저 사람들이 무례한데 왜 내가?! 난 그냥 바르고 곧게 살려고 애쓰는건데! 싶어서.


그런데 마음이 회복되고나서 이번엔 또 한 번 큰 변화를 했다. 더 솔직해지는 것. 배려한답시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만 하지 않게 되었다. 숨기지만은 않게 되었다. 날 것의 마음들을 보인다. 포용한다는 말의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하다는 말에 "아냐, 하나도 신경 안 써. 괜찮아." 대신 "알았어, 고마워." 라고 대답을 했다.


짝꿍은 그제야 환히 웃어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날 것의 마음으로 덜 다듬고 제출해보는 브런치스토리 글. 뭐 어때? 이걸로 뭘 할 것도 아닌데. 그냥 기록인데!





주절주절대면서 제가 얼마나 말이 많은 사람인지, 생각이 많은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아요.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니 신기하고,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니 그것도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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