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헤엄쳐 나와서는 또 지긋지긋하게 꿈꾸기.
2편 : https://brunch.co.kr/@malbok/56
뛰어보고 싶다고 했던 작년 글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는다. 이제는 안전한 여행을 그만 하고 있는 힘껏 부서져보겠다는 각오였지만 막상 부서지고나니 회복이 더디다. 그나마 다행히 그 마음을 남겨둠으로써 일어설 수 있었다. 뛰어보고 싶다 해 놓고, 뛰다 넘어지면 천천히 회복하겠다 해 놓고 무너진 채 게을리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무너져도 괜찮아!" "와, 나 또 부서졌네?" 하던 지원사업 불합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연이은 불합격 소식에 "와, 나 또 무너졌네...." 로 변질되었다. 한참 구렁텅이에 있을 때는 몰랐다. 불합격 소식이 구렁텅이로 나를 빠트렸다면, 나오려고 할 때 개인적인 일들이 그 구렁텅이로 계속 해서 모래를 퍼붓는 것 같았다.
그래, 모래. 모래성에 그림을 비유했었지. 요즘은 예전에 남긴 글들이 떠오른다. 내가 자연스럽게 사용했던 단어들과 문장들. 한참 혼란스럽던 시기에 썼던 글들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모래성은 그냥 쌓는다고 쌓아지는 게 아니니까. 적당히 물기를 머금고 천천히 하나씩 쌓아올려야 하니까. 그래, 지금 또 무너진 시기구나. 그럼 얼마쯤 남아있지? 스스로 가늠해본다. 다행히 뼈대가 남아 있다. 내 반짝임이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일어설 힘도 생겼다.
그럼 이제 하나씩 열거하며 마주해본다.
1. 다양성 만화 제작 지원사업 실패와 창작 세계관에 대한 미련 털어버리기.
기대하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다. 부족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했다. 간절함도 닿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떨어지고서 심장이 철렁했다가도 "괜찮아! 즐거웠어!" 했던 건 그 시기의 내가 정말 열심히 도전했다는 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 도전의 기록도 남았지만, 도전하던 당시의 마음도 내 안에 남았다. 그래서 후회 없었고, 딱 거기까지. 스토리는 접어두는 게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진행하던 그림책과 만화책과 책에 미련을 버렸다.
포기를 잘 한다고, 시원시원하고 쿨하게 포기! 라고 외쳐보지만 그 말인즉슨 포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마음을 써서 포기하고, 미련이 남아서 세상에 외쳤었다. 그럼에도 미련스레 남아있던 그림책과 만화책, 에세이 기획서와 같은 기록들은 구석 구석 여러 포털들에 남아 나를 쿡쿡 찌른다. 자아를 부여해 "정말 날 지울거야?"하고 올려다보는 그 글들을 바라본다.
아니, 지우지 않을거야. 그치만 지금 함께 하지도 않을 거야. 때가 되면 그 때 다시 걷자.
2. 프리랜서 단체와 함께 하는 워크숍 지원사업 실패와 진행
프리랜서 단체와 워크숍을 기획했었다. 프리랜서들과 고민을 나누고 그 고민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며 마음을 회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서류에는 영 소질이 없어 대부분의 지원사업 서류들은 단체에서 맡아 주셨다. 그리고 나는 말복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기엔 커리어가 부족했다. 웹툰 활동만 해왔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웹툰 활동하는 이름으로도 대단한 커리어가 있지도 않다. 그렇게 지원사업에 떨어졌다.
프리랜서 3년차가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이력이 없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왜 진작 방향을 잡지 못 했을까. 왜 아무 대책 없이 퇴사했지? 질타해보지만 그 당시엔 최선을 다했다. 방향을 잡지 못 했지만 대책을 세워 퇴사했고, 뭐 해 먹을 지 몰랐지만 그래서 인스타툰을 시작했었다. 인스타툰을 시작하며 점차 내 방향을 찾아갔고, 최근에는 길도 찾았었다. 그냥, 그냥 마음이 아프니까 나를 왜곡했다. 나를 탓하고 싶어서.
그 이후 다른 지원사업에 통과하며 작은 예산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함께 만나 회의를 했다. 드디어 말복으로도 만화 분류에 들어가는 계약을 하는구나 싶어 웃을 수 있었다. 힘겨운 와중에도 회의를 하러 가던 날은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 날은 분명 발걸음이 가벼웠다.
3. 리얼 웹툰 잡카데미 탈락, 창의인재동반사업 탈락
웹툰 관련해서 한 번만 더 발악해보자. 나 진짜 만화 포기 못 하겠어. 아깝잖아!!! 하고 지원했던 프로그램들. 지원금 받아 웹툰을 배우거나 만화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들이었다.
리얼 웹툰 잡카데미는 면접까지 갔지만 탈락했다. 탈락을 예상하면서도 경쟁률이 낮아 희망을 가졌다. 한 줄기 라기엔 거짓말이고 한 다발 정도의 희망을 가졌다. 면접 때의 부족함을 상기하면서도 뜻 모를 희망을 한 아름 끌어안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건 말 그대로 희망이었기 때문일 것 같다.
나 진짜 만화로 돈 벌고 싶어. 하는 마음. 면접 때 쓴소리도 받고, 티키타카도 했지만 그럼에도 분명 포트폴리오로 취업이 가능해보인다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 답이 있었다. 쓴소리도 받았고, 티키타카도 했고,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역량을 강화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데뷔를 희망했었지.
창의인재동반사업은 서류에서부터 탈락했다. 10:1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도저히 내 만화가 그렇게 가능성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나보다. 부족한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가능성을 봐주셨으면 했다. 그리고 이제는 받아들인다. 아직은 부족하다. 아직은 이라는 세 글자를 덧붙이며 마지막 자존심을 또 한 겹 씌운다. 배우면 되는 거잖아. 남들은 입시미술한다고 몇 년을 배우고, 관련 학과 가서 또 몇 년을 배우는데 그냥 취미로만 그려왔던 내가 뭐라고. 몇 년 어시 일했다고 될 줄 알았어?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재밌었다.
4. 청년 소모임 리더 지원과 보조강사 거절
그 이후 한동안 뭘 지원하기전에 겁이 덜컥 덜컥 났다. 그러다가도 지원을 할 수 있었던 건, 서류를 쓰면서 서류가 덜 두려워진 탓이다. 그 대신 심사 소식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발표를 기다리며 두려울 걸 알지만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당장 먹고 사는 게 더 무서우니까 청년 소모임 리더에 지원했다.
심사일이 뜨기 전에 보조강사 제안이 왔었다. 프리랜서 단체 회의를 가던 날이었다. 가는 길에 전화하며 메일 주소를 받고, 카페에 먼저 도착해 자료를 넘겼다. 날듯이 기뻤다. 이미 한 번 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나를 믿어준 것 같아 감사했고, 무리한 일정이지만 선뜻 승낙했다. 가릴 처지가 아닌 건 둘째치고 정말로 감사하고 기뻤다. 강사 일은 나와 잘 맞았고, 보조강사는 더더욱 잘 맞았다. 앞으로 계속 비슷한 걸 해나간다면 즐거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프리랜서 단체와의 일도 이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의 방향이 잡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밤, 감기가 시작되었다. 감기라는 게 원래 일주일이면 낫지 않나? 보조강사 기간까지는 2주도 넘게 남아 있었고 그 전까지 최대한 회복해두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점점 몸 상태가 내 예상과 다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 와중에 청년 소모임 심사일이 떴다. 아, 겹친다.
겹쳐도 어떻게 잘 조율하면 모두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테트리스는 충분하다. 다만 몸이 그걸 따라줄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냐, 할 수 있어!!!" 마음 속으로 외쳤지만 현실의 나는 침대에 누워 골골대고 있었다. 둘 다 소화는 무슨, 하나도 소화하기 힘들 것 같은데.. 한 이틀 정도는 새벽 내내 끙끙 앓았다. 열이 올랐다 내려갔다, 열감에 새벽에 깨길 반복했다.
결국 주강사님과 담당자님께 연락을 드렸다. 소모임 심사 결과 떨어지면 두 개 모두 놓치는 거겠지.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불안감과 조급감이 닥쳐왔다. 둘 다 잡아도 모자랄 판에 둘 다 잃게 된다면 정말 힘들겠다. 그래도 어쩌겠어. 최선의 선택이었을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