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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Mar 30. 2017

BNB12, 삼청각에서 별을 쏘다

17-18 F/W 헤라 서울 패션위크 리뷰

2017.3. 29

Photo : 말콤브릿지


패션위크 런웨이 리뷰 : BNB12


어젯밤 BNB12의 쇼가 펼쳐졌던 삼청각에는 이미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달콤한 와플 냄새, 은은한 조명, 가끔 리허설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눗방울들은 BNB12 팬들의 마음을 더욱 조바심과 기대감으로 몰아갔다.


쇼는 40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작은 소란도 있었다. 셀럽들을 위한 프런트 석에 외국인들이 앉아 실랑이가 잠시 있었고, 마지막 셀럽이 도착할 때까지 산속의 밤공기는 시릴 정도로 추웠다.

내 뒤에는 BNB의 팬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나도 모르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쇼가 서울에서 꼭 봐야 할 4대 쇼 중 하나란 이야기, 이런 각도에서 찍어야 사진이 잘 나온다는 이야기, 오늘 쇼 끝나고 옷 파는 거냐고 물어보는 엉뚱하고 발랄한 이야기 덕에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났다.  



드디어 조명이 꺼지고 쇼가 시작되었다.


오프닝 룩은 빨간색 셔츠형 벌룬 드레스였다. 은색 단발의 헤어와 걸을 때마다 신발 위로 비치는 파란색 타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BNB12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시즌에는 미키마우스 등의 디즈니 캐릭터를 수묵화로 재해석한 프린트 장식과 한국 전통의 오방색을 아우를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 오방색들은 색색의 타이즈와 스니커즈, 루피 망고풍으로 굵고 가늘게 짠 니트 머플러 등에 팝 펑크적 느낌으로 녹아들었다.



아주 풍부한 요소가 담겨진 쇼였다. 세퀸 소재의 보일러 슈트, 실버 메탈 재킷을 아우르는 디스코 룩들, 나일론으로 풍성하게 재단된 벌룬 플레어 셔츠 드레스들, 뒤에 앉은 BNB12 걸즈들이  나올 때마다 호들갑을 떨어대던 페이크 퍼 재킷과 슬릿 팬츠들, 아마 그 원형은 한복이었을지 모를, 옐로 발레리나 스커트와 버티컬 퀼트 재킷들은 모두 이 시대의 소녀들이 탐낼 만한 스타일들이었다.



자칫 지나치게 커머셜 한 잇 아이템의 나열이 될 뻔했던 쇼에 아트풀 한 감성을 불어넣은 건 수묵화 캐릭터와 쇼 전체를 지탱하는 미묘한 밸런스였다. 수묵화 캐릭터는 동양적 담채화로 그려진 꽃들과 함께 프린트되었다. 삼청각이란 공간, 수묵화, 디즈니 캐릭터가 빚어내는 하모니는 마치 동양풍으로 패러디한 디즈니의 Fanstasia를 보는 듯했다.


동서양의 미묘한 경계 틈으로 박정상-최정민 듀오는 독특한 스타일링을 하나 더 밀이 넣었다. 모델들은 머리에 Tulle로 된 벌룬을 쓰고 벨벳 초커로 목을 두른 채 걸어 나왔는데 이 스타일은 조선 시대 어느 규방에 드리워졌을 차양처럼 보이다가도 문득 19세기 부르주아들이 모자 위에 두르던 스카프처럼 보이기도 했다. 독창적이고 미묘한 밸런스였다.



쇼가 끝나고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디자이너의 인사에도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으리라 믿으며 기다리는 눈치였다.


피날레가 끝나고 박정상-최정민 듀오는 춤을 추며 스테이지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둘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고, 이미 그 순간, 쇼 시작 전 시달렸던 40분의 추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밤 프런트로우에는 많은 스타들이 앉아있었다. 그러나 쇼의 마지막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어색한 춤을 추는 듀오야 말로 진짜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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