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주의를 인정하는 똘레랑스가 가능한가
프랑스는 지금 부르키니 논쟁으로 뜨겁다. 지난 8월 19일 니스시는 "프랑스와 종교적 장소가 테러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종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의상'을 금지하기로 했다"며 모든 해수욕장에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토록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로 86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은 니스의 이 같은 결정은 공감 가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더구나 이 결정은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가 '부르키니는 여성 노예화의 상징으로 프랑스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라고 입장을 발표한 뒤여서 스무스하게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막상 부르키니 금지령을 실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불편했다. 얼마 전 공개된 니스 해변의 단속 사진은 이 자치령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진에는 '당장 그 옷을 벗거나, 아니면 해변을 떠나라' 라는 명령을 내리는 경찰관의 모습과, 이 명령 앞에 모욕스럽게도 해변에서 부르키니를 벗게 된 무슬림 여성의 모습이 담겨있었고, 이는 프랑스 내에서 부르키니 금지를 반대하는 여론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세계적으로도 이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이제 죽었단 말인가, 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프랑스 국사원에서도 부르키니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역사적으로 어떤 스타일의 복식이 법령이나 관습으로 금지된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여성들이 처음으로 팬츠를 입기 시작한 19세기말 20세기 초, 미국의 한 남부 마을에 처음으로 니커보커(무릎 기장의 짧은 바지)를 입은 소녀들이 나타났을 때, 마을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되었었다. 놀란 마을 사람들이 소녀들에게 돌세례를 퍼부었는가 하면, 경관이 출동하여 '24시간 내에 마을을 떠나라' 며 경고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여성들에게 원피스 수영복이 등장하면서 일어났던 소동들은 이루 다 헤아리기도 어렵다. 원래 최초의 여성들의 수영복은 무릎까지 오는 바지 위에 원피스형의 상의를 입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원피스만 입는 수영복이 등장했으니, 이는 마땅히 입어야 할 바지를 벗어버렸다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해변을 따라 경찰관이 배치되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고, 간혹 이들은 원피스가 너무 짧은 여성들을 단속하기 위해 수영복의 길이를 재곤 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7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과도 유사한 풍경들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이런 단속들은 모두 막을 수 없는 것들을 막으려던 쓸데없는 조치에 불과해 보인다. 왜냐하면, 니커보커나 원피스 수영복이 던진 파문은 결국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 전체주의를 벗어나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행보보다 조금 앞서 나타난 것일 뿐, 결국 여성의 옷이 자유스러운 것이 되고, 신체 노출이 개인의 재량 하에 놓이는 것은 막지 못할 인류의 미래이자 합당한 철학이었다.
하지만 부르키니는 어떨까. 이 패션의 의미가 기존의 단속의 대상이던 급진적인 옷들과 과연 같은 것일까. 솔직히 이런 종류의 단속은 패션사에 유례가 없는 것 같다. 부르키니가 단속되고 있는 이유는 이 옷이 '급진'적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복잡한 의미에서 정반대의 '퇴보'나 역사적 '반동(反動)'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종교개혁 이후 수백 년간 지속된 신-구교간 학살에 종지부를 찍은 낭트칙령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근세 유럽사는 사실 종교로 인해 얼룩진 피의 역사다. 그 오랜 참극 끝에 그들이 도달한 결론, '종교보다 우리가 이룬 사회의 질서가 더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놀라운 합의가 없었다면 오늘날 유럽이 누리는 경제적, 문화적 풍요는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까스로 종교를 넘어선 세속주의에 도달한 이들에게, 누군가 자기 종교색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다닌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스위스의 한 자치주인 바젤 칸톤 주(州)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여교사와 악수를 거부한 무슬림 소년의 부모에게 한화 500만 원가량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 자치주는 지난해 종교적인 이유로 수영, 캠프 활동에 불참한 12세, 14세 무슬림 자매에게 '통합의 원칙'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화를 불허하기도 했다. 이는 스위스 정부의 일관된 취지이기도 해서, 그들은"사회 통합이 종교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선명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러한 스위스의 강경한 입장은 잘못된 것일까?
아마 '테러'라는 비극이 없었다면, 이런 조급한 단속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패션사를 살펴보면 때로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단속되지 않은 사례들도 많다.
프랑스 혁명기 때의 유행은 좋은 사례다. 당시 단두대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이 잘려나가고 있었지만 소녀들은 그 충격적인 장면에 매료되었는지 기묘한 유행에 심취했다. 이들은 사형수들의 머리를 흉내 낸(머리카락으로 인해 목이 잘 안 잘릴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짧게 자른) 부스스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목에는 충격적인 빨간 띠를 두르고, 귀에는 단두대 귀걸이를 한 채 파티에 나타나곤 했다. 이 소녀들이 혁명의 정신에 반대하는지, 그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다그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면 소녀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톨릭의 종교인들은 신부복과 수녀복을 입고, 미국에는 아미쉬 교도들이 빅토리아 시대 의상을 고집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복장을 단속하는 이는 없다. 이들은 분명코 체제에 '합의'된 존재이므로 이 체제에 위협을 가할 이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보수적이 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패션에서는 교복이 그 좋은 사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학생들 개개인의 패션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지만, 우리는 교복시대를 지나 사복 시대를 열었다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교복을 다시 선택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학생들 각자의 경제적 처지가 드러나는 사복보다는 교복이 서로를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합의는 가장 자유로운 국가라 불리는 프랑스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프랑스에선 학생들이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들은 강경하게 학교 급식을 먹도록 권유받으며, 이는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문제없이 지켜진다. 급식제도가 아이들의 건강과 가정의 효율에 이바지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부르키니를 입을 자유'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함께 여러 합의가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각자가 원하는 걸 할 자유 속에 놓이고 싶지만, 때때로 우린 '당신은 합의합니까'란 질문에 대답해야 할 순간에도 놓이게 된다.
무슬림과 유럽인의 어색한 동거는 불안한 뇌관과도 같다. '세속주의'를 몸소 쟁취해온 유럽인들과 '종교주의'를 벗어날 수 없는 무슬림이 함께 살려면 더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유럽인들은 무슬림의 전통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반대로 무슬림들은 유럽을 지탱하는 여러 역사적 합의들을 얼마나 존중할 수 있을까.
동거가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유일한 해법은 자꾸 합의를 도모하는 것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위스 정부는 수영을 거부하는 무슬림 학생들을 위해 그들의 부르키니 착용을 허용하고 있다. 수영 수업에 나와 친구들과 어울리라는 화의적 제스처이다. 사실 이슬람교를 잘 모르는 터라 무슬림이 지켜야 할 종교적 완고함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을 선택했다면, 아울러 그들의 2세가 유럽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자라지 않길 바란다면, 유럽의 체계에 합의해 나가고자 하는 무슬림의 노력들도 지금은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