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요즘 워라밸이란 말이 유행이다.
일과 삶의 밸런스, 워라밸(Work Life Balance)은 대체 얼마나 중요한 트렌드인 걸까?
누군가는 정말로 우리 삶에는 워라밸이 필요하다고 공감하겠지만, 누군가에게 워라밸은 공허한 이야기이다. 특히 주요 관심사가 워라밸이 아니라 확실한 미래에 대한 보장 같은 것에 있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10년 뒤, 아니 5년 뒤의 미래가 불안한 이들은 보장된 미래를 얻을 수 있다면 지금의 라이프를 기꺼이 양보하고 싶어한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여길 지도 모르겠다. 심하게는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경쟁에 지나치게 물든 나머지 쓸데없는 조바심 속에 살아가고 있다며 안쓰러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자면 보장된 미래를 위해 지금의 라이프를 양보하는 건 누군가에겐 일면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뉴욕대 교수이자 L2의 창업자인 스캇 갤러웨이는 그의 저서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서 ‘워라밸이란 헛된 신화’란 소제(小題)의 글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경력을 튼튼히 쌓아가는 과정에서 균형이라는 발상은 헛된 신화일 뿐이다…(중략)... 지금 나는 많은 점에서 균형을 누린다. 20대와 30대 때 내게는 균형이라는 것이 없었다. 스물두 살에서 서른네 살까지의 삶에서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일한 것 밖에 없다. 세상은 ‘큰 자’가 아니라 ‘빠른 자’의 것이다.”
그는 스스로도 그런 균형을 갖지 못해 결혼에 실패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이 불가피하다고 못박는 스캇 갤러웨이는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은 동료보다 더 많은 것을 더 적은 시간을 들여 차지하고 싶은가.' 더 많은 성취를 위해서는 스스로의 재능에 집중해야겠지만, 대부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은 ‘끈기’에 의해 좌우된다.
물론 스캇 갤러웨이는 소박한 삶 보다는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는 인물이고, 그렇기에 이런 말을 쉽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성공을 꿈꾸는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이미 젊은 시절의 갤러웨이처럼 살고 있다. 그들은 더 적은 시간을 들여서는 많은 걸 차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미래를 위해 ‘라이프(Life)’를 걸고 ‘워크(Work)’에 매달린다. 한국은 청년창업을 장려하는 나라다. 우리는 어째서 워라밸을 외치면서도 청년들에게 워라밸을 실현할 수 없는 직업을 장려하는 걸까.
어쩌면 지금 한국의 워라밸 트렌드는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서는 라이프를 양보해도 되지만, 타인의 라이프를 희생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인지 워라밸 정책들은 특정한 시간이 되면 컴퓨터가 셧다운 되는 ‘단절’을 해법으로 들고 나온다.
그러나 워라밸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명확하게 X세대, 즉 구세대들의 특징이다.
그 이후 세대인 Y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꼭 성공의 야심에 불타는 젊은이가 아닐지라도 그런 식의 단절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래의 표는 X세대와 Y세대, Z세대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도이다. X세대의 특징으로 적혀있는 키워드에서 우리는 익숙한 단어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Work Life Balance, 즉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이다.
X세대와 달리 Y세대는 같은 자리에 Freedom & Flexibility, 즉 자유와 유연성이라고 적혀있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Y세대, 즉 밀레니얼 세대들이 바라보는 노동에 대한 개념은 X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래 도표는 Odesk와 Millennial Branding에서 2016년 2000명의 Y세대들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업무환경을 조사한 결과다. 이 표에서 우리는 Y세대가 바라는 Freedom & Flexibility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Y세대의 92%가 어디서건 일하길 원했으며(work wherever), 87%는 언제건 일하길 원했고(work whenever), 심지어 64%는 일하면서도 여행하길 원했다. 70%가 낮보다 밤에 일하길 원했으며, 집에서 일하길 선호한다고 응답한 Y세대도 56%에 달했다. 즉, 이들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길 원한다.
이렇게 일하길 원한다는 건 하루종일 일만 하겠다는 얘기나 아예 일을 안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또한 이렇게 일하고 싶다는 게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같은 요구도 아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 ‘연결’될 수 있고, 이 연결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 방금 작성된 서울 김대리의 기안을 뉴욕에 출장 중인 박부장이 실시간으로 전자결재할 수 있는 시대란 이야기다.
4차 산업혁명의 다른 이름은 IoT혁명이다. IoT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즉 '초연결사회'의 도래를 의미한다. 어쩌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단절을 통한 워라밸을 시도하게 된 걸까?
단절은 본질적인 자유가 아니다. 영리한 밀레니얼들에게 단절은 도리어 무책임한 발상에 불과하다. 업무가 그대로 남았는데 단절하면 무엇할 것인가. 일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더 바쁘게 채근해서 효율을 높여보라는 주문이라면, 그런 발상부터가 제조업 시대에 나고 자란 X세대의 한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워라밸이란 말이 이렇게나 유행하는 것은 신기할 정도다. 실제로 스캇 갤러웨이가 쓴 책에도 ‘워라밸’이란 말은 직접 나오지 않는다. 그가 Myth of Balance라고 쓴 것을 ‘워라밸이란 헛된 신화’로 번역가가 친절하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워라밸은 트렌드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도 당연한 추세여서 그런 걸 트렌드라고 하지 않는다는 게 맞겠다. 노동시간은 수십 년 전부터 계속 줄어들어왔고, 어쩌면 인류의 노동사에서 워라밸은 변함없는 큰 지향이다. 그러나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굴러갈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들에는 첨예한 시기에서 우위를 주도할 수 있는 다이내믹, 즉 역학적 요소가 없다.
나이 불문하고 누구나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 처음 보는 사람에게 존대어를 쓰는 것, 수돗물을 먹기보단 생수를 사 먹는 것들을 요즘 트렌드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당연한 것들을 트렌드로 정의해서는 사회적으로 기여할 바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트렌드로 삼아야 할 것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문제다. 연결의 문제는 잘하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주목해야 할 역학적 요소다.
물론 누군가가 연결되길 원하는 만큼, 누군가는 또 강렬하게 단절되고 싶을 것이다. 그에게는 칼퇴근이 필요하고, 되도록 ‘나 홀로’ 보다는 전사적으로 칼퇴근이 이뤄질 때 마음이 편할 것이다. 사실상 트렌드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선택이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사회 리더층이 연결의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줄곧 워라밸이란 단어와 단절의 방식에 집중하는 건 슬픈 일이다. 워라밸과 동시에 우리는 4차 산업혁명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컴퓨터가 켜지는 시간부터 셧다운 되는 시간에 기계적으로 국한하여 4차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는지는 정말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틀이나 규제, 정책들이 주도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세계가 있는데 그건 바로 가치의 생산이다. 가치의 분배와 생산의 합법성을 다루는 분야가 아니라면, 틀이나 규제, 정책들을 먼저 만든다고 가치가 따라서 생겨나진 않는다.
생각해보자. 국가를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라고 말하는 것, 지금 불경기이고 회사가 어려우니 자발적으로 야근하라고 말하는 것, 이런 전체주의적 발상은 이제 짜증 나는 시대착오적 주장들이다. 같은 의미에서, 다 같이 똑같은 시간에 함께 칼퇴근을 하는 것, 하나의 워라밸 형태로 통합하는 것도 전체주의적 발상의 연장선이다.
세상은 더 연결되고, 더 개인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누군가에겐 못마땅한 방향이겠지만 사실 앞으로는 더 많은 가치관과의 이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과거의 잣대로 이해하기엔 너무도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경험해보지 못한 토양과 공기로 가득 차 있다. 너무 늦어 당황하기 전에, 우리가 새로이 의지할 새 시대의 가치관들을 함께 발견하고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