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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Nov 23. 2016

'나치의 자식들'과 박정희의 딸

답해지지 않은 질문들

카키색 밀리터리 재킷의 의미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CNN에서는 박 대통령의 취임에는 ‘북핵’과 ‘부친’이라는 2개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보도했다. 그날 그녀는 카키색의 밀리터리 재킷을 입었다. 검은 장갑을 끼고 군복형 재킷을 입고 카 퍼레이드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부친 박정희의 군부시절 그림자를 불러오기 위한 연출이었을까.


출처 : 연합뉴스

취임 초기에 이 밀리터리 재킷은 박 대통령의 단골 패션이었다. 특히 군 임관식이나 경찰 임용식 같은 행사에서 밀리터리 재킷을 입고 등장한 박 대통령의 모습은, 무언가 반복적인 암시처럼 다가왔다. 연합뉴스에서는 이를 두고 ‘박 대통령 카키색 재킷, 메시지 있나?’ 기사가 났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의상 담당(?)이었던 최순실의 수준을 고려하면, 사실 의상 속에 어떤 메시지를 심으려는 의도가 존재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당시에 이런 기사는 솔깃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박정희의 그림자는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처럼 깊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는 박근혜 대통령에겐 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녀는 대통령이 되기  당시 MBC에서 진행하던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한  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대통령의   가장 놀라웠던 것은 ‘5.16 쿠데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녀는 ‘“몇십 년 전 역사라 지금도 논란이 있고 다양한 생각이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가 객관적인 판단을 해 나가지 않겠는가”라고 어정쩡한 대답을 했다.  


그녀의 말은 국민들에게  큰 불안을 남겼다. 어쩐 일인지 그녀는 우리 역사에 독재, 고문, 감금 등 이 또 일어나선 안된다는 것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사실 평범한 국민들이 듣고 싶어 했던 건 박정희의 세세한 공과(功過)보다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의견이었다. 그녀의 대답이 국민들에게 안겨준 불안감은 우리가 일본을 바라볼 때 느끼는 불안감, 일본이 두 번 다시 주변국을 침략해선 안된다는 걸 분명히 하지 않기에 느끼는 불안감과 똑같은 것이다.   


얼마 전 계엄령 소문이 돌았을 때, 4-50대 시민들은 실제로 약간 불안해했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들으면 웃을 얘긴지 모르겠지만 격랑의 근대사를 겪어온 한국인들로선 심각한 문제였다.  왜냐면 박 대통령의 그간의 언행으로 볼 때, 그녀는 어쩌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사람, 살아있다면 당장에 계엄령을 선포했을 박정희의 딸, 아버지의 명백한 과오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는 딸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자식들, 히믈러의 


2002 ‘나치의 자식들’이란 책이 발간됐다. 6명의 나치 전범의 자식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짊어지며 살아가는 삶이 과연 어떠한가를 취재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취재 과정에 대해 ‘소름 끼치는 체험 연속이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전범의 자녀들  상당 수가 여러 역사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의 편에 서있기 때문이었다.

출처 : 지마켓 도서

하인리히 히믈러의  구드룬 히믈러는 신(新) 나치 운동에 참가하며 과거의 나치들을 돕고 있다. 그녀에 대해 일찌감치 취재를 했던 저자의 아버지는 (이 책은 저자의 아버지가 취재했던 내용을 아들이 물려받아 취재한, 2대에 걸친 르포다) 그녀에 대해 기억하길,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여 우상시했으며, 인터뷰할 때에도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말을 자주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원하는 사실만 받아들이고, 다른 진실엔 빗장을 걸어 잠그다 보니, 그녀는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아버지를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그때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다면 아주 간단했어.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단다.”


노련한 기자가 엉터리 논리를 무너뜨리는 일은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가혹한 운명을 감당하는 불안정한 소녀에게 아버지의 죄상을 되뇌이는 일은 실로 잔인한 일이다.

지난 대선 , 박근혜 후보에게 부친 박정희에 대한 질문이 쏟아질 , 한국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시 조갑제는 조갑제닷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식이 부모의 과거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천륜(天倫)을 져버리는 짓이다. 적어도 자식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식이 비판하도록 타인이 강요ㆍ유도하는 짓은 참으로 잔인하다. 이는 북괴의 인민(人民) 재판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런 얘기는 박 대통령에게 과연 걸맞은 소리일까?

 

힘없는 한 개인이 아닌 일국의 최고 권력자”


일본 산케이 신문의 카토 다쓰야 지국장은 한국에서 황당한 기소를 당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한 칼럼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무죄로 풀려났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못 박았다


“이 칼럼은 힘없는 한 개인을 주제로 삼은 게 아니다. 일국의 최고 권력자가 중대사고 발생 당일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다룬 것이다.”


그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의문들이 쏟아질 때, 누군가는 박 대통령을 이렇게 보호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굳이 다 까발리는 게 온당한가’


며칠 전 검찰에서 박 대통령이 최순실, 안종범과 공모했다고 밝혔을 때, 또 누군가는 박 대통령을 이렇게 보호했다.   

‘대통령은 지금 인격살인에 가까운 유죄 단정을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사람은 대체 누굴까. 검찰이 혐의를 말하는 것만으로 인격이 살해되는 힘없는 개인 일까. 그녀의 스케줄도 물어선 안되고, 잔인한 질문으로부터도 보호해 줘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 놓인 정신이 불안정한 소녀일까.


국민들은 대통령을 돌보기 위해 뽑은 것이 아니다. 만약 그녀가 힘없는 한 개인으로 살아왔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사회의 많은 동정과 관용이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대권에 도전해 당선된 일국의 대통령이다. 그녀는 마땅히 국민 앞에 준비됐어야 한다.  


대선 전 부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그녀는 명확히 대답했어야 했다. 나치의 자식들 중에서도 마틴 보르만 주니어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과오를 동시에 인정한다. 스탈린의 딸 또한 아버지의 과오를 스스럼없이 인정한다. 조갑제의 말처럼 그들이 패륜아라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와 과오, 2가지의 팩트를 동시에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하기 때문이다. 이 성숙한 아들 딸은 심지어 대권 따위엔 관심도 없는 일개 평범한 시민들이다.


발맹 코우트와 프라다 신발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 전범 중 하나였던 괴링의 아내에게 체포 통보가 날아갔을 때, 그녀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서를 내며 거부했다. 그러나 그 신청은 기각되고, 결국 앰뷸런스가 달려와 그녀는 들 것에 실린 채 수용소로 송치됐다. 당시 괴링의 아내는 발맹의 최고급 코우트를 걸치고 있었다.


2016년 가을 최순실이 어느 새벽 비밀리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 검찰은 그녀를 바로 체포하지 않았다. 이것이 논란이 되고 다음날 검찰이 그녀를 연행했을 때, 그녀는 군중에 밀려 신발 한 짝을 흘렸다. 당시 최순실은 프라다의 검정 스니커를 신고 있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가장 불쌍해야 할 순간에도 무심코 드러나는 부(富)의 흔적.

정당하지 않은 부유함이 몸에 배어 심판의 순간에도 이를 감출 수 없는 사람들.

탐욕이란 참으로 뻔뻔해서 결국 길 위에 이렇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만다.   


종북, 종박, 샤머니즘 사회


통진당 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던 종북 세력이 있음에 화들짝 놀랐다. 오늘날 종북을 할 수 있다는 건, 사이비 종교나 이단의 최면에 걸리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곧이어 국민들은 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사회에 대한 상식적인 비판을 하는 순간 자신도 종북으로 몰리는 희한한 경험. 이 또한 상대가 사이비 종교나 이단의 최면에 걸리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희한한 세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정치인들에게도 독특한 종교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닌, ‘박’을 따르는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기이한 일이었지만, 친박, 진박, 진진박 등 경쟁적으로 자신의 독실한 신앙심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국민의 눈을 마주할 때의 수치심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엊그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탄신제가 열렸다. 아울러 구미시는 14억짜리 박정희 기념사업을 확정했다. 평범한 국민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은 기이한 종교적 광기로 보인다. 도대체 상대가 김정은 이건, 박근혜 이건, 박정희 이건 간에, 한 개인을 무조건 신념시 한다는 것이 현대사회에 가능한 일인가. 이 와중에 일어난 최순실 사태는 그 끝판왕이다. 그 정도도 모자라 이제는 ‘우주의 기운’이라니.


‘핏줄의 기운’을 기대한 대가


돌이켜보면, 우리 스스로도 샤머니즘에 취해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나 박 대통령을 몰랐음에도 그녀는 51.6%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다. 대권후보 시절, 지도자로서 불충분한 대답을 했어도, 어딘가 수첩공주란 모호한 결함이 있었어도 사람들은 그녀를 뽑았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주의 기운’을 바라는 것과 ‘핏줄의 기운’을 바라는 것, 이 둘은 다를 바가 없다.


아시아권에서 아직도 2세가 다시 정권을 잡는 사례가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네루의 딸(인디라 간디), 코라손 아키노의 부인(베그니노 아키노), 박정희의 딸(박근혜)은 모두 자신의 능력보다 부친과 남편의 이름으로 표를 얻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지지부진하거나 실패함으로써, 핏줄에게 표를 주는 행위가 얼마나 미개한 일이었는지 증명했다. 얼마 전 집권한 아웅산 수치 역시 부친이자 독립투사였던 아웅산 장군의 그늘 아래 있다. 이제 그녀 또한 아버지가 아닌 수치 자신이 누군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때다.     


알베르 까뮈는 그런 말을 했다.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지 않는 것, 그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한 가지를 던져야 한다. 진작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 즉 ‘역사적으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질문 말이다. 개인의 국정 농단, 이런 일이 또 일어나도 되는가? 그래선 안된다는 게 일국의 지도자로서 명확하다면, 부디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취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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