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가는 정치와 패션
이번 미국 대선만큼 흥미로웠던 선거가 또 있을까.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로 연일 센세이셔널한 어록을 남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에겐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다. 한 때 모델로도 유명했던 이반카 트럼프. 그녀는 지난달 정치계뿐 아니라, 패션계에서도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바로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공식 대선 후보로 소개할 때 그녀가 입고 있던 핑크색 원피스가 메이시스 온라인 쇼핑몰에서 완판 되었기 때문이다. 이 옷은 어느 브랜드의 옷일까. 바로 그녀 소유의 동명의 패션 브랜드 '이반카 트럼프' 제품이다. 그녀는 전당대회 후 자신의 트위터에 '이반카 스타일, 여기서 구매하세요'란 문구와 함께 자신의 옷을 팔고 있는 메이시스 쇼핑몰 링크를 대놓고 남겼다.
항간에선 트럼프의 마지막 비밀병기라고까지 불렸던 이반카 트럼프였다. 그녀의 미모와 유명세가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을 다시금 세워줄 거라 믿고 있는 사람들이 하던 얘기다. 그러나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어쩌면 거꾸로 '이반카 트럼프'라는 패션 브랜드의 비밀병기가 도널드 트럼프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패션 브랜드로선 별다른 인기를 누리지 못하던 이 브랜드에 단박에 유명세를 몰아다 준 호재가 바로 아버지의 대선이었으니 말이다.
패션의 정치 마케팅은 대부분의 경우 매우 성공적이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미셸 오바마가 즐겨 입는 브랜드로 소개된 '제이슨 우'(Jason Wu)는 그 즉시 전 세계 패션 에디터들이 알아두어야 할 1순위 브랜드로 떠올랐다.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또한 그녀가 입은 옷마다--그녀는 중국 로컬 브랜드만 고집하기로 유명하다--중국 내에서 선풍적인 유행을 일으키는 중이다. 유명하고 매력적인 정치인이 입는 옷이라면, 설사 그 정치인이 비리를 저지르고 연행되는 장면이 대서특필 된다 해도 그 옷은 유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의 패션마케팅은 어떠할까?
과거에 정치와 패션의 연결고리라면 정치인들의 패션, 정치인들의 이미지 마케팅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잘 활용하는 정치인은 꽤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196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당시 대선후보였던 케네디(John F.Kennedy)와 닉슨(Richard M. Nixon)이 벌인 TV토론은 그 좋은 본보기다. 토론이 있기 전 여론은 경험 많은 닉슨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시작되자 그레이 슈트에 연신 식은땀을 흘리는 닉슨의 칙칙한 모습과 선탠 한 구릿빛 피부에 감청색 슈트를 입은 케네디의 건강한 모습은 극명하게 대조되었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케네디가 당선되고, 이때부터 '이미지 메이킹(Image-making)' 은 정치전략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육영수 여사풍 헤어스타일은 그 지지층에게 지나간 시절의 향수를 끊임없이 일깨우며, 아웅산 수치의 꽃장식 또한 그녀의 아버지 아웅산의 전성기--어린 수치의 머리에 직접 꽃을 꽂아주곤 했던--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정치의 패션마케팅은 되려 역풍을 맞기도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정치인과 대중 사이의 정보의 불균형은 거의 사라져, 대중들은 이른바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정치적 홍보 전략에 잘 넘어가지 않을 만큼 똑똑해졌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존 맥케인(John McCain)은 할리우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5500불에 고용했다가 논란이 되었고, 사라 팔린(Sarah Palin) 또한 유명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고 최고급 Valentino 재킷을 입는 등의 시도를 벌였다가 되려 비난을 얻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모두 떨어졌다. 언제부터 대중들은 그들이 더 멋져 보이려 하는 것에 불만을 품게 된 것 일까?
사실 최근 들어 정치는 아예 그 자체로 패션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미모의 딸이 판매에 도움이 될 거란 발상은 패션에서 통할 법한 이야기지만 이젠 정치에서도 그럴듯한 얘기가 되었다. 누군가 유명해지면 과거에 그는 곧 패션 브랜드의 광고모델로 캐스팅되곤 했지만, 요즘은 어느 당에선가 캐스팅하여 총선 후보로 낙점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의복의 심리학(Psychologyof Dress)'을 쓴 엘리자벳 헐록(Elizabeth B Hurlock)은 패션 현상, 즉 유행 현상에 대해 매우 다각도로 심도 있는 정의를 내렸다. 그녀에 의하면 패션이란 현상은 온당하거나 효율적이라 해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요, 때로 험담, 악평, 조소를 동반할 지라도 지속될 수 있는 현상이다. 이것은 사회가 민주적이면서도 부의 분배가 불공평할 때 큰 영향력을 지니며, 한번 어떤 패션이 수용되면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는 괴상할 정도까지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패션에 대한 정의이지만 오늘날의 정치에 대한 정의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우리는 어떤 정치인이 어느 날 불확실한 이유로 트렌드의 정점에 섰다가는, 얼마 안 가서 한물 간 유행이 되어버리는 것을 예사로 보아왔다. 그리고 트럼프나 극우정당들의 사례처럼 어떤 험담과 악평, 조소가 따라붙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커지는 과정을 실제로 보고 있다
정치라는 영역의 본질은 대체 원래 무엇이었던 걸까? 지금 우리는 정치를 꼭 정치인이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경제를 잘 아는 기업가가 정권을 쥐어야 하는지, 오랫동안 행정 경력을 쌓아온 공무원이 정권을 쥐어야 하는지, 아니면 유명한 법조계 전문가나 힙합스타가 정권을 쥐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실제로 미국의 힙합 킹이라 불리는 래퍼 카녜 웨스트(Kanye West)는 자신이 2020년 대선에 출마하겠노라 밝힌 바 있다. 이제 정치는 좀 우습기까지 하다.
정치인의 정체성 자체가 모호해진 지금, 이들이 상황파악은 커녕 스타일리스트까지 고용해 자신을 꾸미는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면, 똑똑해진 대중들이 이 사회의 향방을 염려하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패션 산업에 종사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진정한 패션인이라 부를 때에는 그는 모름지기 명확한 패션 철학을 가진 사람일 때뿐이다. 옷은 이래야 한다는 철학이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는 이래야 한다는 철학이 있는 기업주, 패션 유통은 이래야 한다는 철학이 있는 영업인들이 그들이다.
정치에도 정치 철학이라는 것이 있어서, 진정한 정치인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명확한 정치 철학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정치 철학이라는 것이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말처럼 '정의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자문하는 것이요, 그 정의가 공정한 분배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정치는 아마 패션과 매우 다른 모습이어야 할 것 같다. 왜냐면 패션은 소비자 개개인의 취향과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분야지만, 정치는 그런 욕망들을 넘어 함께 사는 사회를 고민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곧 있을 미국 대선과 내년에 치러질 한국의 대선. 이 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가 더 똑똑해질 때 정치다운 정치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치인들이 더 똑똑해져서, 똑똑한 대중들의 염려와 비난을 좀 알아채던지, 아니면 대중들이 더 똑똑해져서 친박이나 진박이란 단어는 정치적 신념을 대변하기엔 무언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챌 정도가 되면 적어도 정치가 우스워 보이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