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상류층의 등장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옷장을 공개하던 날, 우리는 여러모로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 그 날은 그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는 첫날이었다. '음, 오늘 무얼 입을까'라는 글과 함께 게재된 그의 옷장 사진에는 딱 두 종류의 똑같인 생긴 옷들만 가득했다. 하나는 회색의 반팔 티셔츠, 또 다른 하나는 긴 팔의 진회색 후드 집업.
사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해 그렇게 너그럽지 않은 나라다. 유럽의 국가들은 남성의 법정 유급 육아휴직을 국가별로 적게는 10일, 많게는 120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 사정에 따라 그 이후에도 4달에서 1년 넘게까지 유연한 파트타임 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는 드물게 현재 남성의 유급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별다른 국가적 차원의 법적 개런티가 없는 실정이다.
이런 통계가 2014년 발표되고 미국이 술렁이기 시작했을 때, 주커버그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2015년, 아이가 태어나면 자신은 육아휴직을 떠나겠노라 페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딸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몇 개월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다"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인 페이스북에서는 직원들에게 최대 4개월의 육아휴직을 제공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편, 주커버그가 육아휴직에서 돌아오던 날 공개된 그의 옷장 사진은 또 다른 의미에서 화제가 되었다. 한 가지 스타일만 입는 IT 천재를 우린 이전에 한 명 보았던 적이 있다. 바로 블랙 터틀넥 니트에 청바지만 고집했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가 iGOD으로 불리던 시절, 사람들은 주커버그의 옷장처럼 똑같은 블랙 터틀 니트가 걸려있을 그의 옷장을 상상해 보곤 했다. 이들은 어째서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는 것일까?
이 두 명의 IT 천재 외에도, 의외로 한 두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는 사회 유명인사들은 늘어만 가는 추세다. 버락 오바마 또한 블루와 그레이 슈트만 입기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기 위한 일종의 홍보 수단으로 같은 컬러나 스타일만 고집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주커버그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왜 같은 스타일의 옷만 입는지 꽤 진지한 논조로 답했다.
"저는 제 생활을 정말 단순화하고 싶어요.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아니라면 가능한 최소한의 시간과 에너지만 쏟도록 말이에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해야 하죠. 아침에 무얼 입을까, 뭘 먹을까 같은 것을 선택하는데 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만약 너무 유치하고 바보 같은데 시간을 쏟고 있다면 제가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아요"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쩌면 우리 시대에 새로운 젠틀맨 계층이 탄생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과거 귀족계급에서 부르주아 계급으로 상류계급의 주인이 바뀌던 그때처럼, 지금 또 새로운 젠틀맨 계급이 새로운 상류층의 주인이 되려는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귀족 사회에서는 남성의 복식이 여성의 복식 못지않게 화려했다. 패션이란 귀족들의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 수단이었고, 모름지기 제대로 된 귀족이라면 그에 맞는 옷차림 정도는 갖출 수 있어야 안목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시민혁명과 프랑스혁명을 통해 전혀 새로운 '멋진 남자'들이 사회 지배층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른바 '비즈니스맨(Businessman)', 즉, 자신의 유능함과 지식으로 부(富)와 부의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는 부르주아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평민 출신에다 미적 감각도 없었다. 어떤 부르주아 청년들은 그래서 내면으로부터 진실한 귀족이 되기 위해 귀족 흉내를 내었다. 하지만 어떤 부르주아 청년들은 도리어 자신들이 가진 미덕을 더 높은 가치로 추켜올렸다. '검소', '절제', '유능함' 같은 것들 말이다. 이들은 귀족과는 다른 검소한 차림을 일부러 고집했다. 별다른 장식 없는 무채색의 옷들과 깨끗한 흰 칼라의 셔츠. 바로 오래 전 청교도 의상이라 불리는 이 옷들이 부르주아 남성 스타일의 시발점이다.
그들의 차림은 어디에서도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 주었다. 때로 그것은 '이 사람은 귀족이 아님'이란 낙인이 되었을 것이며, 때로 그것은 비슷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엮어주는 네트워크의 고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이런 불이익을 감수했고, 결국 몰락해가는 귀족들의 자산을 서서히 흡수하며 새로운 상류층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들의 차림이 바로 오늘날 남성들의 유니폼이 된 남성 양복의 기원이다.
부르주아 시대가 열리고 나서, 과거 귀족들에게 멋진 드레스를 공급하곤 했던 파리의 꾸뛰르들은 한 때 엉뚱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부르주아 남성들 또한 이제 상류층이 되었으니 귀족 남성들 같은 화려한 패션을 입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화려한 남성복 디자인은 새로운 상류층에겐 입을 수 없는 황당한 것으로 보였다. 이미 시대적 패션 철학은 남성들이 간편한 옷차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쪽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여성의 복식이 남편 대신 남편의 부를 과시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남성복에 비해 월등히 화려한 스타일로 변하게 된다.
오늘날 주커버그의 모습은 단단한 철학과 신념, 시대적 소명을 안은 과거 귀족 시대의 지식인 부르주아 청년들을 연상케 한다. 이디스 워튼(EdithWharton)의 소설 '순수의 시대(The Age ofInnocense, 1920)'에 드러난 미국의 상류층의 모습은 1958년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퀴즈 쇼(Quiz Show)'에서는 더 왜곡되고 굳건한 성벽으로 굳어져 있다. 이 영화에서는 평범한 집안의 유능한 젊은이에게 비친 이 성벽이 얼마나 유혹적으로 아름다운지, 또한 반대로 얼마나 부조리한 모순 덩어리인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성벽의 외곽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건 아마 실리콘밸리의 신화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부터가 아닐까 싶다. IT로 신흥재벌이 된 젊은 부자들은 상류층 출신이 아니었고, 심지어 졸업장도 제대로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좋은 집안의 자제들과는 무엇 하나 비슷한 게 없었다. 누군가는 아이비리그 출신도 아니었고, 승마와 골프를 배우지도 못했으며, 유려하고 복잡한 상류층의 말투도 구사하지 못했다. 당시 신문에는 더러 교양 없는 젊은 부자들이 상류층의 주거지로 이전해오면서 아름다운 동네를 망가뜨리는 것을 개탄하는 기사도 실렸다. 아마 이 신흥 부자들 중 일부는 내면으로부터 그런 상류층이 되고자 노력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커버그는 도리어 새로운 철학으로 과거의 모순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의 짧은 포스팅 하나에서, '육아휴직이란 참 좋은 제도가 아닌가' 내지는, '우린 좀 더 단순하게 입어도 되지 않을까' 내지는, '삶을 살아가면서 더 가치로운 것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건 아닐까' 등등의 다양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만약 주커버그 같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상류층의 패션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물론 사람들이 그를 따라 한 종류의 옷만 입게 된다거나, 우리의 미래 패션이 단순 유니폼이 된다거나 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사고방식이 지금의 실용주의와 스마트함을 우선시하는 시대적 철학을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공고하게 만들 정도의 위력은 있어 보인다. 검소함이 미덕인 시대가 왔을 때의 패션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까. 한 번 정도 그런 시대가 도래해서 기록할 만한 사례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