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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Dec 26. 2016

떠나는 사람들,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한 시대가 오랜 시간을 달려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세밑이다.

올 한 해의 마지막은 여러모로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2016년은 2017년 한 해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버거운 짐 여러 개를 물려주었다. 금리인상, 경기침체, 국수주의가 바꾸어놓을 내년 한 해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요즘 페이스북에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사람들의 근황이 쉬이 눈에 띈다. 대학원에 가는 사람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무언가를 시작하고, 무언가에서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그 마음은 진심일 것이다.

올 초, 홍콩의 파트너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나의 모든 친애하는 파트너들에게’라도 시작하는 그녀의 메일에는 그런 말들이 쓰여있었다.


“나와 나의 남편은 지난 30년간 패션산업에 종사하여 왔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은 너무도 행복했고 보람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패션계의 동향과, 저희 가족의 인생을 생각할 때, 저와 남편은 우리가 하고 싶었던 다른 일들을 지금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우리는 남은 1년 동안 여러분과의 관계를 책임 있게 정리할 것입니다."


나를 포함한 그녀의 파트너들은 조만간 우리 중 누군가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게 될 거라는 예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메일은 당황스럽다기보다는 담담한 에필로그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지난 세월 감사했고, 앞으로 진심으로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답장을 썼다.

아마 2016년 세밑, 하나의 조직이나 가족을 책임 진 이들의 마음 한 켠에는 저무는 시절을 직감한 불안함,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설렘, 또 한편으론 끝내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혼재하고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를 쓰는 행운


얼마 전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 하우스 마르니(Marni)의 오랜 디렉터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Consuelo Castiglioni)가 올해로 모든 업무에서 은퇴한다고 알렸다. 분명 그녀는 오랜 시간 아낌없이 헌신했고, 그녀의 브랜드는 그녀와 함께 클라이맥스를 지났다. 그녀의 디자인은 사람들 마음에 영원할 것이다. 이제 그녀의 은퇴 앞에는 인간 카스틸리오니로서의 온전한 삶으로 돌아간다는 따뜻한 길이 열려있다.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출처: Three of Fashion

자신의 삶을 던져 한 세대를 풍미하고, 그 성과를 충분히 맛보고,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모습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년 전 만해도 이런 퇴장은 누구나 꿈꿀 수 있는 미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삶에 대한 에필로그를 쓰며 퇴장할 수 있다는 건 사치가 되어간다.


종착역으로 내몰린 사람들


지금 한 시대가 오랜 기차 길을 달려 종착역에 도착하고 있다. 그 기차를 탄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차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그들은 그저 달리기 위해, 나아가기 위해 기차를 탔을 뿐이다. 그러다 그 질주가 멈추고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멈춘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서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누군가는 자신이 내렸던 기차에 다시 오르기도 했다. ‘나는 아직 달릴 수 있다’고 외치는 그는 ‘종착역’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그중의 누군가는 다른 곳에 새로운 철도가 놓이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부지런히 새로운 기차를 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희망과 도전정신, 용기 같은 것은 그들만이 소유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사람들까지 책임지고 싶어 하진 않았다.

리더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리더가 되길 원치 않았고, 리더라고 나서는 이들은 사실 우왕좌왕하는 대중들에 비해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해어화’, 소율의 이야기


1940년대의 서울, 마지막남은 경성 제일의 기생학교 대성권번에서 나고 자란 소율이란 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권번이 전부였고, 그 안에서 그녀는 뛰어난 가수였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최고의 가수였다. 남부러울 것 없었던 소율은 자신이 몸담은 집이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권번’이란 것,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권번의 동료 연희는 권번 안에서는 그다지 뛰어날 것 없는 친구였다. 소율에겐 넘버원이 가져야 할 마땅한 너그러움이 있었고, 기꺼이 자신의 기회를 연희와 나눈다. 그러나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내어 준 기회를 타고, 권번 밖의 세상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연희를 보며 혼란에 휩싸인다.

그녀는 분명 연희보다 나은 존재여야 했다. 사실 권번 밖 세상이 저리 넓은 지도, 권번 밖에서는 연희의 목소리가 그렇게 사랑받는지도 이제사 알게 된 소율은 자신도 권번 밖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저들이 ‘아직 내 노래를 들어보지 않아서 그래’, 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출처 : 나무위키

그러나 그 도전은 그녀에게 참담한 열패감으로 돌아온다. 곱게 다듬어 진 권번식 창법은 거칠게 심금을 울리는 신식 창법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녀의 시대는 그녀가 꽃피기도 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끝나 버린 것이다.

소율의 열패감은 빗나간 욕망이 되어 결국 연희를 죽게 만들고, 한때 권번 최고의 가수였던 그녀는 이제 연희의 카피캣이 되어 살아간다.      


떠난다는 것과 남아 있는다는 것


한 시대가 종착역에 도달했을 때, 처음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곧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잘되었다는 이야기, 잘 안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어쩌면 늦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가는 동안 많은 정보가 들렸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곳에 도착해서도 자리를 얻지 못했지만 어떤 이들은 좋은 자리를 얻었다.

어쩌면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만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리를 구하는지를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이들이 떠나간 뒤에도 어떤 이들은 종착역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부류는 그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두 번째 부류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여기 남아 자신이 그동안 달려온 여정의 가치를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 뒤, 여러 시대가 바뀌는 동안에도 같은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늘날 패션에서는 이들을 ‘명품’이라 부른다.

출처: 루이비통 홈페이지

도전은 변화를 주도하게 만들고, 유연함은 변화에 적응하게 만들며, 신념은 변화를 초월하도록 만들어준다. 도전과 신념은 사실 아무에게나 허락된 재능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평범한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유연함이다. 2017년 한 해, 한 발 천천히 가더라도,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 가질 유연함이 있다면, 이 고단해 보이는 한 해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이 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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