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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코 Mar 11. 2023

사실은 완벽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았던 모양


햇살이 따사로웠던 주말 오후, 호숫가를 산책하려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산책로로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자마자 요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장면은 어딘가 귀엽기도 하고, 조금 이상하기도 해서 자꾸만 힐끔힐끔 눈길이 갔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주인과 그 옆을 지키는 강아지는 평화로운 공원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아쉽게도 주인의 연주 실력이 그 장면을 조금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기타를 치는 포즈도, 길거리 관객들의 후원을 위해 열어 놓은 기타 가방도 어느 버스킹 뮤지션 못지않았지만 그녀의 연주는 어딘가 어설펐다. 혹시 공원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쯤,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그녀가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연주를 이어갔다.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진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아주 자신감 넘치게 노래를 불렀다. 



내가 아는 버스킹은 거리에서 연습한 아마추어 혹은 이미 업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공연을 하는 것이었을 텐데, 그녀는 아마추어도 아니고, 전문가는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공원 한가운데서 기타 연습을 하고 있는 모양새에 가까웠다. 공원 한 바퀴를 돌고 오니 어느새 그녀의 기타 가방에는 후원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요상하고 귀엽다고 생각해서 눈길이 갔는데, 다시 보니 그녀. 어딘가 범상치 않다..! 그녀의 연주는 여전히 어설펐지만, 그녀에겐 누구나 갖지 못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완벽하지 않은 연주를 마치 연습하는 것 마냥 보여주는 자신감 혹은 대범함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캠페인 구호처럼 외치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지만,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 선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림으로 치면 완성된 작품이 아닌 연필로 그린 스케치도 괜찮은 걸까? 글쎄, 내가 보기엔 영 괜찮지 않아 보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결과물이 120%의 완벽함까지는 아니어도 괜찮지만, 최소한 95% 이상은 해내야 하지 않겠니?라는 속내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항시 가지려고 애써보지만, 결과물의 완성도가 100%가 아닐 뿐이지 어찌 됐든 결과물의 ‘형태’로 만들어낸 것부터가 완벽주의를 추구한 결과임은 반박할 수 없다.


공원에서 본 그녀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완벽한 연주가 아니어도 괜찮아. 내가 공원에 나와서 연주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연습 과정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거야.’ 그러나 이건 그녀에 빙의해 본 내 생각이고, 사실 그녀는 별생각 없이 공원에 나왔을거다.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미국의 개인주의 사회에서 자랐다면, 그저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고 있을 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앞장서서 말하고 다녔지만, 저 장면을 목격한 뒤로는 이전보다 쉽게 뱉기 힘들어졌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그녀의 연주를 보고, 바로 박수가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왜 나와서 연주를 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었다. 그녀가 공원에서 기타 연습을 한 것처럼 나의 습작을 당당하게 꺼내 놓지 못하는 이상, ‘완벽하지 않아도..’라는 말은 당분간 접어 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두는 것도 어쩐지 완벽주의의 표본같이 느껴지는 건 나의 기분 탓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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