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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Oct 01. 2019

둘이 있어 외로운 것보다  
혼자 외로운 게 더 낫다

힐링으로서의 글쓰기

브런치 독자들에게 규칙적인 원고 업데이트를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원고를 올리고 난 후, 텀이 길어지면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것이 스멀거린다. 원고를 올려야 할 텐데... 나 스스로 일주일에 1회는 꼭 올린다라는 자기 다짐을 했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단위가 얼마나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지... 바쁜 일상과 익숙하디 익숙한 생활이라는 쳇바퀴가 뭐 그리 읽을만한 이야기 소재들을 제공할 것인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에 거주할 당시 내가 못 견뎌했던 것은 캘리포니아의 사시사철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늘 햇빛이 쨍한 바로 그것이었다. 거의 일 년 365일을 햇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산다는 게 생각보다 사람을 굉장히 건조하게 만든다.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눈부신 햇살을 차창 밖으로 느끼며 운전을 할 때 나는 시간을 잊는다. 오늘은 며칠이고 무슨 요일이었지? 늘 습관적으로 밥을 먹고 차를 운전해 회사를 향한다. 달리는 거리도 똑같고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일정하다. 내 생활은 이렇게 따분했다. 이 따분함을 잊기 위해서라도 ‘뭔가 활동적인 일들을 찾아봐야지’ 하면서도 생각에만 그치기 일쑤지 뭔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는 일은 그리 많지 못했다.


한동안 게으른 익숙함에 빠져 있을 때였다. 오랜 대학 친구가 아들내미 둘을 이끌고 마침내 미국에 건너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로스앤젤레스의 우리 집에도 들러서 하룻밤을 묵고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놀러 갔었던 바로 그 친구네다.


이 친구 가족의 미국 이주는 내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IMF 직전, 일본으로 이주를 확~ 해버리더니 이젠 미국 이주도 아주 전격적이었다. 지난번 방문 시 일본보다 미국이 더 낫다는 판단으로 미국 이주를 결심하고 남편이 부지런히 미국 회사 이곳저곳에 지원서를 접수한 것이었다.


남편이 장기간의 해외출장으로 늘 집을 비우므로 굳이 일본에 사는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친구의 말이었지만 삶의 터전을 그것도 해외로만, 생활의 근거지를 이렇게 자주 바꿀 만큼 배짱을 갖고 있지 못한 나로서는 그 가족의 행동은 경외, 그 자체였다.


오늘 그 친구 가족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혼이라는 형태가 아니더라도 엄마, 혹은 아빠 혼자만이 아이의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친구의 남편은 일 년에 약 10개월은 장기 해외출장을 가곤 했기 때문에 그 친구는 늘 말 많은 아들 두 놈을 혼자 키우며 살아왔다.


일본으로 직장을 옮긴 이후에는 말이 부부고 가족이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다며 내게 푸념하곤 했다. 그리고는 혼자 사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게 ‘너나 나나 다 똑같아. 남편이랑 산다고 뭐 다른 줄 아냐? 둘이 있으면서 외로운 것보다 차라리 혼자라서 외로운 건 이해나 가지… 어차피 혼자 아이 키우고 혼자 살아가는 거야. 대신 너는 자유롭잖아. 하고 싶은 거 할 수도 있고 말이야. 난 공부도 하고 싶고 결혼해서 못했던 거 죄다 할 수 있는 네가 솔직히 부럽다’ 고 말이다.


이야기의 방점은 마지막이다. ‘자유로운 너의 생활을 발전적으로 바꿔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

그 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를 당시의 나는 엄두 내지 못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했으니까.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 키워야 했으니까. 이제 내 인생의 큰 책임과 부채의식이었던 아이의 성장과 독립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그래서 난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열심히 고민의 한가운데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길을 찾고 있다.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 모두 한결같이 ‘네가 편한 거야’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친구들이 나의 내밀한 외로움과 가슴 밑바닥까지 시려오는 그 고독함을 알면 그렇게 말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았던 LA의 라크라센타 지역에는 아이들만 이끌고 자식 공부시키겠다고 혼자 미국에 건너온 열혈엄마(?)들이 꽤 많았다. 이들의 남편들은 한국에서 직장을 그대로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서 처자식들 생활비를 부쳐주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몇 명의 아줌마들도 이렇게 아이들만 이끌고 이곳에 건너와 아이 학교 보내고 이곳 생활에 어렵게 어렵게 적응하고 있었다.


가끔 이런 아줌마들 집에 놀러 갈 일이 있는데(물론 대화의 주제는 아이들 교육문제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같다. 같이 살 때는 좀 떨어져서 살면 소원이 없겠다 싶더니 막상 떨어지고 나니 그래도 남편이란 존재가 집안에서 하는 일 없는 것 같아도 많은 부분 빈자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휴가라도 받아서 남편이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다시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니…


같이 살아도 힘들고 떨어져 살아도 힘드니, 부부란 존재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와 나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요즘의 난 다소 행복하다. 행복을 느끼는 이유를 정리해봤다.


첫째, 내 또래의 한국 여성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행복의 정의와는 완전 다른 길이지만 50대 중반을 넘어서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겠다는 나의 마음가짐이 대견해서 일단 행복하다.


둘째, 생각해보니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제대로 예체능 교육 한번 받아보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직접 번 돈으로 드로잉 클래스를 등록해서 삐뚤삐뚤 선긋기부터 사람 그리기까지 기초부터 배우러 다니는 시간이 일단 행복하다.

8주 과정의 드로잉 클래스 기초반을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수준의 드로잉이지만 어렸을 적 배우지 못했던 걸 배운다는 뿌듯함이 더 만족감을 준다.


셋째, 어떤 목적을 갖고 시작한 글쓰기가 아니었지만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또 요즘 새롭게 접한 그라폴리오에 사진을 올리면서 나에게 내재된 창작인으로서의 자질을(자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타진해보는 지금 이 순간이 일단 행복하다.


넷째, 먹고 싶을 때 먹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누군가의 간섭과 참견이 없는 이 생활이 비로소 내가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서 일단 행복하다.


 '둘이 있어 외로운 것보다 혼자서 외로운 게 더 낫다' 고 흔히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혼자다. 타인에게 기대지 고 나의 몸과 마음의 위안을 나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질 수 있는 것, 내가 요즘 다소 행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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