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에스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의 느낌
생각의 창, 입 그리고 기록의 창, 글
EBS 방송프로그램에 ‘딴지’를 걸 마음은 없다. 훌륭한 교육관을 가졌다는 신념도 없다. 단지 부모, 교육자, 행정가, 사회, 그리고 국가가 바른 생각으로 미래 한국의 교육을 이끌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소도시의 사교육 현장에서 십 오년을 일하며 진절머리를 느끼지만, 손을 놓지 못하는 한 사람의 고성방가(苦聲訪可)임을 미리 밝힌다. 진짜 배움은 무엇인가는 모두가 알면서도 천편일률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한국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위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는 EBS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16. 신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간에 대한 목표를 세운다. 한국의 수백만 학생들도 삶의 목표를 위한 계획을 세우며, 자식 교육에 목매는 부모들도 바빠지는 시간이다. 나는 “장사는 1년을 내다보며, 사업은 10년을 내다보고, 교육은 100년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라고 자주 말한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뛰어난 후손을 남기려 하며, 그 최고의 방법은 교육에 있다.”고 믿는다.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내놓겠는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원한 대학에 진학한 이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배움, 즉 공부의 목표는 대학이 아니며,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나 그런 배움을 끝까지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삶의 한 단계를 밟아가면서 우리는 대학이라는 상아탑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 EBS는 “<왜> 대학에 가는가?”라는 질문으로 한국 교육의 문제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나누었을까?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왜> ‘하부루타’라는 유대인의 교육방식을 끌어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내었을까? 먼저 영상은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의 G20 폐막 기자 회견장이다. 말을 잃은 한국 기자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소리가 사라졌다. 질문이 사라졌다. 질문이란 나로 시작하여 타인을 거쳐 사회현상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우리가 우리의 소리를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교육 현장은 질문과 자신의 소리가 사라진다. 질문을 하는 이는 왕따가 된다. 타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싫어한다. 교수는 많은 질문을 ‘강의가 잘 되지 않았다.’라는 무능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권위에 눌려 말을 읽은 한국인들에게 “말문을 터라.”고 주문하는 새로운? 교육의 방법이 제시된다.
그것이 바로 유대인의 교육법, 하부루타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릴수록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수많은 질문을 달고 산다. 굳이 증명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그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사람은 어릴수록 입이 부드럽다. 유치원은 하루 종일 질문으로 시끄럽다. 초등학교 1, 2학년 교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아이들의 입은 점차 굳어간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단답형 대답에 익숙해지고, 객관식 문제의 답 찾기 놀이를 선호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고등학생은 EBS 지정도서로 공부를 한다. 당연한 현실적 이유로 우리는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생각의 말과 글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 오랫동안 학원을 운영하면서, 고학년들과 중 고등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키면 학원을 그만두는 학생들의 수가 는다. 처음엔 아주 신기한 일이었다. 이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으나, 이는 일제의 평준화 교육과 인재말살정책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 할 촌극이다.
예로부터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우수했다. 옛 서당의 풍경을 그려보면 쉬이 이해가 된다. 자유로이 뛰어놀며 말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문우와 주고받은 편지, 즉 글을 통해 사상의 향유를 누렸다. 당쟁이 당파싸움으로 변질되기 전만 하더라도 언쟁이야 말로 최고의 교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말에 반대를 표하거나,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권위에 도전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한국 공공도서관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는가? <실내정숙>, <타인을 위한 배려>, <조용히> 등 자유로이 입을 열 수 있는 공간이 제약되어 있다. 이렇듯 한국의 교육 문제는 예로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변질된 교육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사상을 말하고 글로 쓰는 것은 경제성장에 저해 요인이었기에 우리는 모두 묵언과 동조로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교육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이 프로그램의 맹점은 바로 한국 교육체계가 잘못되었고, 유대인의 교육체계가 아주 우수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다. 이로 인한 한국 내의 불편한 현실은 다음과 같다. 하부루타와 관련된 도서만 수십 건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며, 교육단체나 개인은 같은 내용을 베껴내기 급급해졌다. 부모의 지갑을 노린 하부루타 교육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다. ‘말하기 공부법’의 우리나라 실험 장면 대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 대학에 가는가?’는 현실에 대한 변화의 방법을 모색하기 보다는 단순히 노벨상 수상자의 숫자로 유대인의 교육이 세계 으뜸임을 강조한다. 본질적인 대학입시체제의 수정, 교육과정의 변화, 시험 평가 방법의 변화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노벨상을 받은 사람만이 인재는 아니다. 마윈,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크, 빌 게이츠, 손정의 등 많은 이들이 세상의 부럼움을 받는 위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일가를 이루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말과 글이 제대로 발현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이 말하고, 쓰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로이 창조해내는 과정이 진정한 교육이다.
교육은 하나의 일관된 판에 찍어 내는 것이 아니다. 개인에 따른 교육의 차이도 전달이 되었으면 한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내면의 무언가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단지 유대인의 교육만이 우수한 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 - 일제 시대 이전의 교육법-과 학습방법에 대한 정보도 뒷받침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 교육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EBS에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