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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May 22. 2017

도서관은 살아있다.

인문학으로 취창업 수기 공모전

인문학으로 취창업 수기공모전에서 10위권 안에는 든 듯 한데, 더 좋은 결과는 더 나은 분들에게 양보합니다.

저 역시 좋은 기억을 되돌아 볼 수 있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인문학을 통한 취·창업 수기 공모전 신청서                    

■ 작품정보

    

□ 취업 사례     ■ 창업 사례     □ 그 외 인문학과 관련된 주제

    

도서관은 살아있다

■ 인적사항

    

 장진석

연 락 처

 010-4445-0335

이 메 일

 jjs7104@naver.com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남2길 25-7

■ 주의사항

• 작품 응모 지원서와 원고는 파일형식으로 이메일을 통해 접수가 가능합니다.

  (이메일 : inmun_hive@naver.com)

• A4용지 1~4장 / 폰트크기 12 / 바탕체로 작성하며, 파일이름은 ‘성명(작품명).hwp’로   제출합니다. (docx파일도 가능)

• 응모작은 타 공모전에 발표된 적이 없는 자신의 실화로 작성한 순수창작물이어야 하며,   순수 창작물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경우 입상은 취소됩니다.

• 접수된 원고는 일체 반환하지 않으며, 수상작의 저작권은 한국연구재단의 소유로 비상업적인 용도 내에서 사용권을 갖습니다.

• 수상작은 온라인 게시 및 한국연구재단의 간행물에 활용되어 게재될 예정입니다.

상기 본인은 위의 내용에 동의 하였으며 

[인문학을 통한 취·창업 수기공모전]에 응모합니다.

2017.   4  .    11 .

                                         신청자   :   장진석 장진석   ()       

  아직도 책을 잡으면 심장이 뛰는 이유는 문학과 철학이 주는 오묘한 사상과 역사가 주는 진실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만난 세상     

  어린 시절, 시골 농부의 막내아들에겐 전과 한 권도 귀했다. 형들이 쓰던 전과를 물려받은 것이 교과서를 넘어선 유일한 나의 책이었다. 형들의 책장에 꽂힌 몇 권의 이름 모를 책들은 나와 무관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성촌. 큰집 오촌 조카의 책장에는 돈키호테, 정글북, 허생전 등, 멋지고 화려한 책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조카들에겐-물론 나도 조카와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큰 선물이 되지 못했다. 나는 큰집에 가서 조카들을 업어주고, 놀아주면서 책을 한 권씩 빌려와서 읽었다. 중학생이 되고는 형들의 책장이 탐났다. 아니, 그냥 폼을 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못 둑 아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누워 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를 펼쳐 얼굴을 덮고 잠들곤 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렇게 나와 책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리고 오랜 시간 책을 만날 수 없었다. 점수를 위한 교과서를 제외하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간 것도 아니었다. 청춘은 그렇게 현실과 이상의 괴리만 느끼며 흘러갔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문득 봄날의 햇살을 맞으며 품에 안은 아이의 눈에 글자들이 뛰어다녔다. 그랬다. 아이의 눈에서 다시 책을 찾았다.       

책과의 이별     

  이런저런 일로 청춘을 소일하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라는 물음에 도달했다. 소박한 질문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다. 선생님. 하지만 선생을 하기 위한 조건은 먹고 사는 현실과는 동떨어졌다. ‘그래. 학원을 하면 되겠다.’ 라고 마음을 먹고, 다음 날 학원을 계약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다. 그렇게 학원을 시작했다. 학원을 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했다. 스스로의 배움이 부족한 상태에서 학원 운영은 쉽지 않았다. 이것저것 손 댄 일도 많아 집중도 되지 않았다. 매달 선생님들 급여를 채우느라 대리운전에 주차장 알바도 모자라 아내의 급여도 차용했다. 차라리 빼앗다시피 했다. 자존심은 있어 사채를 쓰면서도 선생님들 급여를 미루긴 싫었다. 그렇다 다시 깊은 현실의 늪에 빠졌다. 생각의 늪이 아닌 현실의 늪 속으로. 학원은 문을 닫고, 영어 강사로 취업했다. 조촐한 급여였지만, 쪼개고 아끼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늦은 밤까지 수업을 이어갔다. 피곤한 줄 몰랐다. 아마 아버지란 이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깊은 생각 속으로     

  삶의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삶의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의 눈에 비친 글자를 따라 서점으로 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 영어 선생 눈에는 영어 교재들만 잔뜩 눈에 들어왔다. 온갖 영어 책들을 뒤지고 읽고, 영어 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원서들이 만만치 않았다. 공부를 더 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책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영어 실력이 조금 늘자, 번역에 욕심이 생겼다. 번역 시험을 몇 차례 치루고, 고배를 마셨다. 이유는 자명했다. 우리말 공부가 필요했다. 언어학과 우리말 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로 동화작가로 등단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번역 시험에 도전했다. 바로 합격이었다. 나의 모든 문제점들이 한 순간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책을 집어 들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양서를 고르는 눈은 부족했지만, 열심히 책을 사 모으고 읽어 나갔다. 자기 개발이나 경영, 교육에 관한 책이 중심이었다. 그렇게 학원 영어 선생에서 일명 ‘책돌이’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그 사이 학원은 주인장이 바뀌고 말았다. 어느 순간, 예전의 근원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세상에 즐거운 배움을 전하자. 돈 때문에 배움을 놓치는 이가 없게 하자. 단순한 배움보다 행동하는 배움이 되게 하자.’     

인문학의 세계로     

  다시 조그마한 교습소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진짜 교육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운영하면 가능했기에 큰 부담 없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오전을 소일할 수 있었다. 덕분에 더욱 다양한 책을 만나고, 독서를 하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즐거운 시간들이 계속되었지만, 복병은 있었다. 바로 성적이라는 무서운 암이었다. 교습소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성적이 우선이었다. 나의 의지가 아닌 부모의 의지를 꺾을 자신이 없었다. 상담을 오신 부모들이 내게 훈계를 하고 가셨다. 스스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법. 사회활동이 넓어지고, 독서량이 늘면서 다시 근원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답은 단순했다. 책을 선택하는 폭이 넓어졌다. 문학과 철학과 역사 관련 서적을 기웃거렸다. <니체>를 읽고, <태백산맥>,과 <어린 왕자>를 읽었다. <논어>와 <도덕경>을 읽고, <성학집요>를 읽었다. 다시 어린 시절, 조카들을 업어주고 한 권씩 빌려와서 읽던 그 책 맛이 살아났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모여든 책이 제법 늘었다. 스스로의 역량이 조금 늘었다는 생각이 들자, 책 욕심이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도서관은 살아있다     

  영어 교습소를 접었다. 그리고 창원시에 허가를 받아 작은도서관을 설립했다. 소장한 책 수가 늘자 행복했다. 책 속에 파묻혀 사는 것도 좋았다. 학교 앞 작은도서관이라 책을 읽으러 오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 믿었다. 좋은 독서관련 프로그램으로 지역민을 만날 생각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뿐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었다. 1년을 그렇게 보냈다. 문만 열어 놓은 나만의 공간. 나와 나의 아이들만의 공간. 그래도 책을 읽은 덕분에 다양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겨우 용돈벌이 정도였지만, 아내의 급여 덕에 생활 유지는 가능했다. 1년이 지나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이들이 생겼다. 몇몇의 아이들이지만 책 맛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도 독서와 글쓰기의 맛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작은도서관 덕분에 사회활동도 조금 더 활발해졌다. 인문학 서적을 읽은 것이 강사로 활동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도서관 운영과 강사활동으로 용기를 얻어 2017년에는 창원시 1인창조기업에 입주하여 <말글손 교육문화연구소>를 창업했다. 작은도서관을 기반으로 누구나 공간을 자유로이 이용하며, 책을 통한 배움, 실천을 통한 배움, 정보를 나누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융합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사립 작은도서관에서는 하기 힘든 평생교육진흥원의 지역교육 문화프로그램도 진행했고,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관계기관과 연계하여 진행하고 있다. 지역의 새로운 독서교육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리고 인문학 배움과 실천의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도서관은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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